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49192.html?_fr=mt1
국제시장 박씨 “한국당, 시장·의원 다 해먹고 책임 안져”
등록 :2018-06-15 05:00 수정 :2018-06-15 07:12
[현장 민심을 듣다-부산·울산·경남]
“문 대통령 향해 반대 위한 반대뿐 홍준표 대표 막말 너무 듣기 싫어”
“산업도시 울산 명성 간데없어 내가 찍어준 사람들은 뭘 했나”
“창원 빨갱이 많다는 홍준표 말에 내 손으로 몰아내야겠다고 생각”
“대통령 인기 때문에 한국당이 졌다 아이가.” “차라리 잘됐는 기라. 한국당이 정신 차리겠제.”
14일 저녁 부산시청 광장 한편에서 장기를 두던 사람들의 화제가 지방선거로 옮겨갔다. 마스크를 쓴 50대와 훈수를 두던 70대가 입씨름을 벌였다. 50대가 “임기가 1년이 지났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70%를 넘어서고 있어요. 그래서 부산에서 민주당이 이겼어요.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잘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70대가 “지지도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번에 한국당이 텃밭인 부산·울산·경남에서 참패했지만 2년 뒤 총선에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되받았다.
부산시청 근처에서 만난 김아무개(47·부산 연제구)씨는 “민주당의 압승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아예 한국당이 일어서지 못하도록 기초단체장과 시의원 모두를 민주당이 싹쓸이하기를 바랐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까지는 한국당 계열 정당만 찍다가 지난 대선과 이번에 모두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번 지방선거에서 1번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데 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홍준표 대표의 막말도 너무 듣기 싫었다”고 말했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헌화하고 있다. 오거돈 캠프 제공
이번 선거에서 서병수 한국당 후보가 주장한 새 정부의 경제 실패 책임론도 먹히지 않았다. 부산 중구 국제시장 상인 박아무개(57)씨는 “현 정권이 들어서고 이제 갓 1년이 넘었는데 야당은 경제의 어려움을 현 정권 책임으로 몰았다. 그런데 부산에서 20년 넘게 시장, 구청장, 국회의원을 한 사람들은 모두 한국당 쪽이다. 당연히 그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도 1번을 찍었다.
한국당이 지난 30년 동안 부산·울산·경남에서 누려온 기득권과 지역주의가 이번에 무너졌다는 견해가 있다.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는 “30여년 동안 특정 정당에 기회를 줬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번에 부산시민들이 그걸 심판했다. 4년 전 오거돈 후보가 1.3%포인트 차로 석패했고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에서 5명이 당선된 것이 신호탄이었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이제 더이상 부산·울산·경남을 한국당 텃밭이라고 보기 힘들다. 대구·경북도 다음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가 무너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에 허아무개(46)씨는 “한번의 승리로 한국당이 다져온 30년의 조직이 무너졌다고 보지 않는다. 진짜 승부는 2년 뒤 국회의원 선거”라며 신중론을 폈다. 실제로 2년 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의 국회의원 당선자 18명 가운데 13명이 새누리당 소속이었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 등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오거돈 캠프 제공
지난 4년 동안 한국당 서병수 시장의 시 행정이 평가받았다는 설명도 있었다. 직장인 강아무개(37)씨는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도 낡은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서병수 후보가 엘시티 비리 의혹과 관련해 입길에 오르는 등 야당의 행태가 보기 싫었다. 그래서 민주당 후보들에게 표를 줬다”고 말했다.
부산시민들은 대체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반도 평화 흐름을 주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부산에서 민주당이 선거혁명을 일으킨 원동력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공무원 김아무개(45)씨는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힘을 실어줬다고 생각한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거친 언행과 자주 비교가 되니까 문 대통령에게 더 힘을 실어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당 부산시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것에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병수 캠프 관계자는 “홍준표 대표의 거친 입이 오만함으로 비쳤다.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홍 대표가 부산 광복동에서 중대 발표를 한다고 해서 사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죄의 절을 하는 데 그쳤다”고 아쉬워했다.
이성문 민주당 연제구청장 당선자(유세차량 왼쪽 셋째)와 김해영 국회의원(도로 앞쪽)이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이성문 캠프 제공
민주당 소속 첫 시장을 당선시킨 울산에서도 오랜 기득권 세력을 심판했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정일선(59·울산 울주군 범서읍)씨는 “4년 전 지방선거 때만 해도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이번엔 1번이 민주당으로 바뀐 줄 알지만 그래도 (1번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산업도시 울산의 명성은 간데없는데 내가 믿고 찍어준 사람들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뒀다간 울산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울산의 변화를 갈망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회사원 이동원(49·울산 중구)씨는 “조선업 등 지역 주력산업 쇠퇴에 따른 고용위기와 취업난 등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변화에 대한 기대가 표로 분출된 것 같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로 무조건 1번을 찍는 경향도 있었다”고 말했다.
주부 이선옥(52·울산 남구)씨는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유세 과정을 지켜보면서 진정성이 별로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남북관계나 여러가지 경제·복지 정책에서 지금까지 별로 한 일도 없으면서 정부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말꼬리 잡고 딴죽걸기만 했지 무슨 대안을 내놓았느냐. 정부도 바뀌면서 많이 달라졌는데 시장이나 구청장도 바뀌면 뭐라도 새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직전에 경남도지사를 지낸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 대한 반감도 많았다. 창원시에서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알려진 마산합포구에 사는 한수자(78)씨는 “지금까지 여러번 투표를 했지만 민주당 후보를 찍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기 어려운 것이 문재인 대통령 탓은 아니지 않으냐. 그런데 홍준표 대표가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까 참 보기 안 좋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 당에 찍어줬다”고 말했다.
창원대 2학년생 김아무개(20)씨는 “솔직히 정치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투표할 생각도 별로 없었다. 도지사 후보 외에는 우리 지역에 누가 나왔는지도 몰랐다. 공약은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기호 1번을 찍었다”고 했다. 생각을 바꿔 투표한 이유에 대해 그는 “얼마 전 홍준표 대표가 창원에 와서 ‘원래 창원에는 빨갱이가 많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까지 경남도지사를 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손으로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산 울산 경남/김광수 김영동 신동명 최상원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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