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분신 사망... "오늘로 데모는 끝이다"
밀양 외산면 보라마을 송전선로 설치 마찰... 이치우씨 분신
12.01.17 20:34 ㅣ최종 업데이트 12.01.18 09:47 윤성효 (cjnews)
"오늘로 데모는 끝이다. 나는 죽는다."
765kV 초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며 분신했던 이치우(74)씨가 남긴 '유언'이다. 이씨는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16일 오후 6시10분께 분신 사망했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4년전부터 송전선로 설치 사업을 벌이면서, 마을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 한전은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철탑 161기를 세워 영남지역에 공급하기로 하고, 대형 철탑을 짓고 있는 중이다.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다. 주민들이 이불을 덮어 놓았으며, 부인이 시신을 부여 잡고 울고 있다. ⓒ 박종수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다. 빈소는 분신 장소에 차려졌다. ⓒ 윤성효
그동안 밀양시 산외면을 비롯한 4개면 주민들은 대책위를 만들어 활동해 왔다. 한전 측은 용역을 고용해 공사를 강행했고, 주민들은 몸으로 막기도 했다. 이날 한전 측은 이치우씨 동생의 논에 장비를 들여 놓고 공사를 시작하려했다.
주민과 한전(용역) 간 마찰은 16일 이른 아침부터 벌어졌다. 이씨는 한전 측이 장비를 들여 놓자 철거할 것을 요구하며 "오늘로 데모는 끝이다, 나는 죽는다"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이씨는 마을회관 쪽에서 휘발유를 몸에 끼얹고 와서, 마을 다리 입구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몸에 불이 붙으면서 이씨는 이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주민들은 분신 현장에 시신을 놓고 빈소를 차렸다.
이치우씨는 97살의 어머니와 부인, 딸 넷,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17일 오후 빈소에 나온 노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간 노모는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며 울음을 쏟아냈다.
새벽부터 마찰 ... 지식경제부 장관한테 휴대폰 메시지 알려
마을 주민 배경남(약산사 주지)씨는 "분신 당시를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어제 어르신이 어떻게 하셨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과 용역 간의 마찰은 새벽부터 있었다는 것.
배씨는 16일 오전 5시께 집에 있다가 긴급 전화 연락을 받았다. 박산마을 이장이 '비상'이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배씨는 "전화로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일어나서 옷을 입고 급히 마을로 내려왔다"면서 "그때만 해도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119 구급차가 와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60~70대다. 당시 용역 50여 명이 배치되어 공사를 방해하는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던 것이다. 배경남씨는 "용역들이 어르신들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면서 "그 상황을 보니 기가 찼다"고 전했다.
배씨는 이날 이치우씨를 몇 차례 마주쳤다. 그는 "그 어르신한테서 어제만 해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부터는 안 온다'는 말을 세 번이나 들었다"면서 "그런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다. 마을 주민 배경남(약산사 주지)씨가 이날 저녁 마을의 상황을 알리는 내용을 담아 지식경제부 장관한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윤성효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다. 마을 주민 배경남(약산사 주지)씨가 분신 사건 직후 지식경제부 장관한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윤성효
이치우씨는 논에서 굴착기을 철수시키라고 했지만, 끝내 한전 측은 말을 듣지 않았다. 배경남씨는 "장비를 빼내지 않으니까 어르신은 '굴착기를 빼내지 않으면 오늘 누가 죽어도 죽는다'고 했다"면서 "장비를 철수하지 않으니까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장관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았던 배경남씨는 16일 마을에서 벌어진 상황을 문자메시지로 알렸다. 용역과 주민들이 마찰을 빚는 사황을 보고하듯이 알린 것. 그리고 이날 오후 8시 26분께 그는 "결국. 철탑 현장에서 분신자살했군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배씨는 "그 앞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분신했다는 내용을 알리고 나니 곧바로 장관한테서 전화가 왔더라. 그래서 장관과 잠시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김응국 위원장은 "오늘이 참 길다"면서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함께 힘을 모아 나가자"고 호소했다. 마을 한 주민은 "한전은 거짓말만 하고 있다. 학자들도 한전에 넘어갔다. 토론회 때 한전 편을 드는 학자가 있어 따졌더니, 제자들을 한전에 취직시키기 위해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더라"고 말했다.
장례위 "요구조건 해결돼야 시민장 치를 것"
마을주민과 대책위는 한전 측에 요구사항을 제시하면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보라마을 고부웅 이장과 김응국 대책위 위원장이 공동장례위원장, 우일식 집행위원장이 맡아 장례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들은 17일 오후 마을 회관에서 대책회의를 가졌다.
우 집행위원장은 "개인문제로 집안에서, 사고가 나서 돌아가신 게 아니다.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동네가 잘못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다가 돌아가신 것"이라며 "고인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고, 값지게 해야 한다"면서 "문제가 해결된 뒤 시민장(葬)으로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는데, 17일 오후 장례위원회 김응국 공동위원장이 장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다. 사진은 마을 전경으로, 다리 오른쪽 끝에서 분신이 일어났다. ⓒ 윤성효
장례위는 유가족들이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시신을 병원 영안실에 모시기로 했다. 장례위는 밀양시청과 마을 입구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장례위는 한전 측에 "3개월간 송전선로 공사 중단, 지식경제부 장관과 한전 사장의 사과",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벌어진 일이기에 장례 관련 비용을 한전 측에서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
우일식 집행위원장은 "한전이 소통을 하지 않고,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다보니 분신까지 일어났다"고 말했다. 고인의 동생 이상우(72)씨는 "우리 형제는 마을에서 토박이로 살아왔다. 형은 마을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책임감이 강했다"면서 "다리를 다쳐 어제 마을회관에 누워 있다가 형의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조해진 의원 "참담하다" ... 밀양시의회 '결의문' 채택
17일 오후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 의원은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빈다. 지난 4년간 한전은 공사를 강행했고, 주민들은 몸으로 막았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걱정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눈앞에서 그런 일이 생기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밀양시의회 의원들도 나왔다. 손진곤 의장은 "주민들이 흩어지지 말고 유가족이나 장례위원들과 같이 힘을 모아 나가자"면서 "개인보다는 전체 뜻을 모아 함께 하자"고 말했다. 밀양시의회는 18일 본회의를 열어 송전선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는데, 17일 오후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윤성효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는데, 17일 오후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이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윤성효
경찰 "화재에 의한 사망"... 한전 "공사 잠정 중단"
경찰은 '화재에 의한 사망'으로 보고 있다.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현장 감식을 벌이기도 했다. 밀양경찰서 관계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화재에 의한 사망이다. 계속해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신 사망사건 뒤 한전 측은 공사를 중단했다. 이날 현장에는 한전과 시공사 직원은 물론 용역들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안타깝다.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 "공사는 잠정 중단했다. 향후 대응책은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이 많이 지지부진하다. 갈등을 풀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송전선로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고, 제3자를 통해 보상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면서 "협의하다가 결렬되기도 했고, 중간에 공사를 중단할 때도 있었다"고 밝혔다.
'공사 중단'과 '장례비 부담' 등 요구에 대해, 그는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공사 재개 여부에 대해, 그는 "신고리원전의 전력 공급을 앞두고 있다. 빨리해야하고 시급하다. 공사 재개 시기는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다. 17일 오후 장례위원회 김응국 공동위원장(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밀양시의회 손진곤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 윤성효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는데, 17일 오후 마을 주민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모여 앉아 있다. ⓒ 윤성효
▲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765㎸ 고압 송전선로 설치에 반대하던 이치우(74)씨가 16일 오후 8시10분경 분신 사망했다. 사진은 다리 난간에 걸려 있는 펼침막.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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