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500
또 기무사 문건, 이번에는 대선 개입
<시사IN>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 7월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참고자료’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기무사는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왔다.
김동인·주진우 기자 astoria@sisain.co.kr 2018년 08월 15일 수요일 제569호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례가 확인됐다. <시사IN>은 기무사가 지난 7월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참고자료’ 문건을 입수했다. 군에서 통상 참고자료는 상급자에게 대면보고를 할 때 함께 제출하는 문건을 의미한다. 총 7쪽으로 구성된 참고자료는 기무사가 자신들의 과거 정치 개입 사실을 직접 정리한 문건이다. 이 문건은 국방부 장관을 거쳐 청와대까지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자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정치 개입)는 이명박 정부 시절 기무사가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례다. 2부(선거 개입)는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에서 기무사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어떻게 지원했는지 밝히고 있다.
1부 ‘MB 정부 시절 정치 개입’은 7월2일 군 사이버 사건 조사 TF(이하 조사TF)가 발표한 최종 조사 결과 내용과 유사하다. 당시 조사TF가 공개하지 않았던 상세한 증거와 구체적인 수치가 기재되어 있다. <그림 2>를 살펴보자. 기무사가 보수 안보 단체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돈을 얼마나 썼고, 어떻게 내부 인력을 동원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참고자료에 따르면, 기무사는 이명박 정권 동안 170여 개 보수 안보 단체를 관리·지원했다. 보수 안보 단체들은 주요 사회 갈등 국면에서 ‘종북 좌파 척결’을 내걸고 각종 집회를 열었다. 참고자료에서 기무사는 자신들이 지원한 보수 안보 단체의 대표적인 활동으로 ‘2009년 민주당·MBC 규탄대회’와 ‘2010년 한상렬 목사 규탄집회’를 예시로 들었다. ‘2009년 민주당·MBC 규탄대회’는 2009년 8월13일에 열린 보수 단체의 ‘(미디어법 통과를 막기 위한) 민주당 장외투쟁 반대 집회’를 의미한다. 2010년 방북한 한상렬 목사에 대한 반대 집회도 보수 안보 단체가 주도해 이뤄졌다.
금전적 혜택을 어떻게 제공했는지도 참고자료에 나와 있다. 단체의 이익을 보장해주거나, 직접 현금을 지급했다. 경제적 지원을 위해 기무사가 직접 특수활동비를 풀거나, 부처·지방자치단체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참고자료에는 기무사가 보수 단체 관계자에게 지급한 수당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2013년 보훈 단체의 사이버 활동(댓글)에 2000만원을, 일부 보훈 단체 인사들의 기고료로 1020만원을 지원했다고 적혀 있다. 예비역 단체 10곳의 홈페이지 관리자(10명)에게 각각 월 20만원씩 지급하기도 했다.
극우 뉴스 제작에 기무사 대원 동원
내부 인력을 활용한 ‘콘텐츠 제공’도 했다. 기무사는 재향군인회가 운영하는 뉴스 사이트(konas.net)에 2009년 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2주에 한 번꼴로 온라인 웹진(코나스 플러스)을 만들어 제공했다. 기사를 쓰고 편집하는 일에는, 원래 군 보안 업무에 투입되어야 할 기무사 보안처 대원들이 동원됐다. <그림 5>와 같이 격주 단위로 각종 군사 및 북한 관련 기사를 작성하고 웹진 페이지에 올리거나 재향군인회 회원들에게 이메일 뉴스레터를 보냈다. ‘좌파·종북 세력의 SNS 활용 실태’ ‘진보의 가면 쓴 종북 집단 솎아내야’처럼 정치적으로 편향된 글뿐만 아니라 ‘세종시, 살기 좋은 명품 도시’ ‘兵(병) 복무 기간 24개월은 되어야’와 같이 정부 정책을 홍보하거나 군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글이 선별됐다. 국방부 조사TF와 함께 기무사의 정치 개입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7월18일 ‘코나스 플러스’ 제작을 지시한 배득식 당시 기무사령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그동안 언론과 군 검찰 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1부 내용과 달리,
2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 담겨 있다. 18대 대선을 5개월 앞둔 2012년 7월27일, 기무사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기획문서를 작성해 배포했다(<그림 4> 참조). 기무사는 이 문건에서 예비역으로 구성된 외부 단체를 박 후보를 돕는 후원조직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제작된 기획문서에는 ‘야당(민주당) 캠프 참여자 식별’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기무사가 당시 민주당 내 주요 관계자를 사찰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림 5> 기무사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제작한 재향군인회 웹진 ‘코나스 플러스’. 기사 작성과 편집, 제작에 기무사 보안처 대원들이 동원되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하던 ‘정치 개입’은 선거용으로 재편됐다. 댓글 공작이 뒤따랐다. 군 검찰 조사로 드러난 기무사 댓글 부대 ‘스파르타’는 2012년 대선에서도 활약했다. 참고자료에서 기무사는 과거 조직적인 댓글·트윗 활동을 ‘현 대통령님(문재인) 트윗에 대한 부정 댓글 활동’이라 명명하며 구체적인 사례를 명시했다. ‘문재인·유시민 조변석개 말 바꾸기, 저들의 과거를 보라’ ‘문재인은 오직 반미 반FTA 미군철수 반제주해군기지만을 외친다. 북한 김정은도 그렇게 외친다’ ‘문재인, 네 주군 노무현의 죽음을 생각해서라도 옳은 편에 서다오’ 같은 트윗이 예시로 거론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관리하던 보수 안보 단체도 선거 모드로 전환했다. 18대 대선 기간에 기무사는 총 176개 단체를 관리하며, 예비역 장성의 동태를 수시로 살펴봤다. <그림 3>에 명시된 것처럼, 기무사는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정책 싱크탱크인 ‘담쟁이포럼’에 참석한 송영무 현 국방부 장관을 사찰했다고 인정했다. 당시 ‘담쟁이포럼’에는 송 장관을 비롯해 예비역 장성 총 4명이 참여했는데, 기무사는 이들 모두를 ‘통합 사찰’했다고 보고했다. 군 출신의 야당 대선 캠프행을 원천 차단하려 한 것이다.
문서 마지막 부분에는 ‘기무사 차원의 (박근혜 캠프) 지원 방안’이 구체적으로 작성되어 있다. 그간 관리하던 보수 안보 단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이들 단체의 행사(안보 세미나, 안보 관광 등)에 기무사가 적극 협조하는 식이다. <그림 1>처럼, 지역별 보수 안보 단체의 ‘안보 관광’에 기무사가 적극 개입·지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 1> 기무사는 2012년 18대 대선에서 보수 안보 단체 관리에 힘썼다. 기무사가 만든 ‘참고자료’ 문건에 등장하는 ‘안보 관광’ 사례.
‘기무사 대통령령·기무사령 폐기’ 통할까
이번 참고자료 문건은 기무사 스스로 자신들의 정치 개입을 명문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참고자료에 나오는 각종 정치 개입 사례는 모두 외부 조직, 돈, 보안 인력을 잘못 동원하면서 벌어졌다. 지역별 기무부대(60단위 기무부대)가 지역의 보수 안보 단체를 직접 관리했고, 보안·방첩 활동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를 유용했으며, 군 정보 유출을 막는 데 투입되어야 할 보안 인력을 댓글이나 극우 뉴스 제작에 활용한 결과다.
기무사 개혁을 두고 특수활동비의 투명화, 보안 기능 분리 등이 언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8월2일 기무사 개혁안을 논의해온 ‘기무사 개혁 TF(위원장 장영달)’는 최종 개혁안을 발표하며 ‘병력 30% 감축(4200명→3000명 수준), 기무사 설치 관련 대통령령과 기무사령 폐기’를 꺼내들었다. 사실상 해체 후 새로운 조직으로 전환하자는 뜻이다. 이번 개혁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지역별 60단위 기무부대는 사실상 사라진다. 기무사가 수행하던 보안·방첩·수사·정보 업무 분리는 정부가 추후 원점에서 재설계하게 된다. 특활비 오·남용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보안 인력이 정치 개입에 동원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도입할지는 모두 정부의 새로운 설계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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