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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하수(薩賀水) = 설하수(薛賀水)
 
 
살하수(薩賀水)
한국사DB > 삼국사기 > 잡지 제6 > 삼국유명미상지분 > 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위치가 상세치 않은 곳
 
註) 727 살하수(薩賀水): 
『신당서』 권220 열전145 동이 고려 건봉 3년 2월조에 나오며, 본서 권22 고구려본기10 보장왕 27년 2월조에는 설하수(薛賀水)로 기술되어있다. 정확한 위치는 미상이다. 다만 당의 이적(李勣)이 설인귀를 보내 부여성을 공격하자, 남건(男建)이 부여성을 구하고자 지원군을 보내 살하수에서 당군과 싸웠고, 고구려군을 격파한 이적이 압록강 북쪽의 대행성(大行城)으로 진격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압록강 북쪽의 요동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살하수 
[고구려사 123] 무너지는 고구려 (4) 마지막 나당연합 - 매경  
 
고구려군이 부여성을 구원하려다가 일어난 살하수 전투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이세적은 살하수 전투에서 승리하고 곧바로 대행성(大行城)으로 진격하여 함락시켰다. 대행성의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박작성과 더불어 압록상 하구의 요충성임은 분명하다. 즉 살하수와 압록강 하구 대행성으로 이어지는 이세적 당군의 진격로를 보면, 살하수의 위치 역시 압록강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보인다. '신당서' 고려전에는 '살하수(薩賀水)'로 기록되어 있다. 살하수는 살수대첩으로 유명한 살수와도 이름이 통하는데, 살수는 지금의 청천강으로 비정되니까 압록강 이북의 살하수가 살수일 수는 없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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