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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성
욕이성(辱夷城) : 고구려 성. 현재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당군의 진격로를 고려하면 압록강 하류에서 평양에 이르는 경로 중에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본서 권37 잡지6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조에도 기재된 것으로 보아 본서의 찬자도 그 위치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DB > 삼국사기 >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 보장왕(寶藏王) > 평양성이 함락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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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을 …… 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본서 권제6 신라본기제6 문무왕 7년 10월 2일조에는 당군 이적이 평양성 북쪽 200리 되는 곳에 이르러, 이동혜(尒同兮) 촌주 대나마 강심(江深)을 시켜 거란 기병 80여 명을 인솔하고 아진함성(阿珍含城)을 지나 한성(漢城)에 이르러 편지로 출병일을 독촉하였다고 전한다. 당군의 이적(李勣)은 요동을 지나 압록강을 건넌 후 남하하여 평양성으로 접근해왔다. 이적의 행군 경로는 대행성-압록책-평양성 순이었다. 구체적인 행로는 전하지 않지만 대체로 신성(新城)-요동성(遼東城)-오골성(烏骨城)-대행성(大行城) 루트였던 것으로 짐작된다(노태돈, 2009, 215쪽). 이적은 압록책을 깨뜨리고 200여 리를 남하하여 욕이성(辱夷城)을 점령하였는데, 욕이성은 지금의 안주(安州)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池內宏, 1928). 안주성은 고구려 시기부터 줄곧 청천강 일대를 수비하는 서북지역 중심성의 하나로 기능해 왔다. 북쪽으로 의주를 거쳐 요동으로 통하고, 동쪽으로 개천·순천을 거쳐 함경남도와 강원도로 통하며, 남쪽으로 평양을 거쳐 황해도로 통하고, 서쪽으로 청천강을 거쳐 서해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였다(서일범, 1999, 125~126쪽).
〈참고문헌〉
노태돈, 2009, 『삼국통일전쟁사』, 서울대학교출판부
서일범, 1999, 「북한 내의 고구려 성 분포와 연구현황」, 『고구려발해연구』 8
池內宏, 1928, 「唐の高宗の高句麗討滅の役と卑列道·多谷道·海谷道の稱」, 『東洋學報』 17-1
한국사DB > 삼국사기 > 권 제7신라본기 제7 > 문무왕(文武王) > 문무왕 답서: 신라와 당이 고구려 원정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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