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08_0050_0060_0030_0010_0040

 

라. 후기 성곽(후기 평양성 = 장안성)
우리역사넷 >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Ⅳ. 문학과 예술 > 6. 건축 > 3) 성곽 > (1) 고구려 성곽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平原王 28년(586) 장안성(長安城)으로 천도했다고 하는 도성은 현재 평양 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평양성(平壤城)으로 지목하는 데는 학계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후기 평양성 즉, 장안성의 둘레는 23㎞, 면적은 1,185,000㎡의 석축 성곽이며, 북성(北城)·내성(內城)·중성(中城)·외성(外城)으로 구획되고 있다. 이 도성의 특징은 나성(羅城)에 해당하는 외성의 존재와 방조제(坊條制)의 격자망식 성시(格字網式 城市)를 이룩했었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왕궁지(王宮址)가 만수대 남쪽 양지바른 지대라고 하는 주장과 내성의 중앙지대에 있는 만수대의 건물터라고 하는 주장, 그리고 산성내 영명사(靈明寺) 부근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또한 성벽 축조의 구조상 내외성은 동일시기의 것으로 보고 성을 3구분하는 견해도 있으며, 방조제의 실시는 후기 평양성 이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그림 3>).455)
 
* 방조제(坊條制)=조방제(條坊制)=방리제(坊里制): 고대 국가에서 왕경이나 지방의 거점지역을 통치의 목적 아래 일정한 영역으로 나눈 도시구획 형태의 하나, 동서와 남북의 도로를 구획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
 
* 성시(城市) : 성으로 둘러싸인 시가
 
 
 
455) 王宮址가 만수대 남쪽 양지바른 지대라고 하는 주장은 최희림이, 내성의 중앙지대에 있는 만수대의 건물터라고 하는 주장은 채희국이, 그리고 산성내 靈明寺 부근이라는 주장은 關野貞의 견해이다. 또한 성벽 축조의 구조상 내외성은 동일 시기의 것으로 보고 성을 3구분하는 견해, 방조제의 실시는 후기 평양성 이전 것으로 보는 견해는 杉山信三·小笠原好彦(앞의 책, 32쪽)의 경우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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