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610
평양에서 만난 홍석현과 이재용
[기자수첩] 각자 다른 ‘평양행’ 속사정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8년 09월 19일 수요일
이번 평양정상회담에서 언론계가 눈여겨볼 인사가 있다면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다.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인 홍 회장은 원로자문단 자격으로 특별수행원 52명에 포함됐다.
홍 회장은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북한에 가서 미국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 북으로부터 답을 얻은 뒤 그걸 기초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는가 하면 지난 12일 한국외대 특강에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국가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흡수통일·적화통일 이야기는 다 잊어야 한다. 평화를 만들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 주장하며 대북·외교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날 특강에서 “지난 1년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창의적 노력과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문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출마설이 돌았던 홍 회장은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현재, 적어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문재인정부와 발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장관’ 군번은 지났다는 홍 회장이 평양행을 앞두고 꿈꾼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적절한 시점에서의 ‘등판’일수도 있고, 또는 누군가와의 ‘화해’일수도 있다.
▲ 지난 9월18일 오전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평양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방북길에 오른 모습.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홍석현은 사실상 삼성으로부터 해고됐다.”
경제인 자격으로 특별수행원에 합류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번 평양행이 달갑지 않았을 텐데 그 중 홍 회장과 함께 방북길에 오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홍석현 회장이 지난해 3월 중앙일보·JTBC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 삼성 사정에 밝은 한 기자는 당시 상황을 “해고”라는 표현으로 진단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을 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 회장이 해고당했다는 의미였다.
앞서 이재용 부회장은 법정에서 2016년 2월15일 대통령 박근혜씨와 독대 자리에서 박씨가 JTBC를 두고 ‘이적단체’라는 표현까지 쓰며 흥분했다고 증언했다. 이 부회장은 박씨로부터 “홍석현 회장이 외삼촌이지 않느냐. 중앙일보 자회사 뉴스 프로그램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이날 독대의 목적은 손석희 사장 교체 요구였는데 비단 박씨만의 요구사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삼성비판보도를 앞장서온 JTBC가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홍 회장은 결과적으로 손 사장을 건드리지 않았다.
국정농단 국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앞장서서 비판 보도했던 JTBC가 ‘외삼촌이 세운 회사’라는 점에서 삼성家의 당황스러움과 분노는 상당했는데, 이재용 부회장이 2017년 2월5일 구속 수감되며 이 감정은 정점을 찍었을 것이다. 그 뒤 홍석현 회장은 쫓겨나듯 삼성생명일보 집무실을 떠나야 했고 삼성의 광고 지원은 급감했다. 중앙일보가 있던 삼성생명빌딩은 중앙일보 로고까지 떼버렸다. 그 후 홍 회장은 그해 4월16일 유튜브를 통해 JTBC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며 ‘커밍아웃’했다. 홍 회장은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외압을 받아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다. 시대착오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 이 부회장은 구속 353일 뒤인 지난 2월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받고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두 사람이 공식행사에 함께 동행 하는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 평양행이 처음이다. 삼성家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백두산행보다 홍 회장과 이 부회장이 함께 방북 길에 오른 사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 지난 9월18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평양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방북길에 오른 모습.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 부회장의 평양행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감옥에 들어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는 백두산 정상에라도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의도치 않았던 홍 회장과의 공개만남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이 부회장에게 달렸다. 두 사람 모두 어색한 공기를 털어내려 손석희 사장을 점잖게 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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