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4058.html
[단독] 에스더, 박근혜 국정원에 ‘우파 청년’ 양성자금 요청
등록 :2018-10-02 05:00 수정 :2018-10-02 07:45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④보수의 새 아이콘 에스더
대선 때 ‘인터넷 사역’ 집중 활동
박근혜 당선 뒤 “43억 예산 필요”
국정원 간부에 사업안 직접 보내
우파 청년들 육성 사업안 짜
극우와 기독교가 만나는 곳에 ‘가짜뉴스 공장’이 있었다. <한겨레>는 <한겨레21>과 함께 두달 남짓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세력을 추적했다.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유튜브 채널 100여개, 카카오톡 채팅방 50여개를 전수조사하고 연결망 분석 기법을 통해 생산자와 전달자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가짜뉴스를 연구해온 전문가 10여명의 도움을 받으며, 가짜뉴스 생산·유통에 직접 참여했던 관계자들을 만났다. 가짜뉴스의 뿌리와 극우 기독교 세력의 현주소를 해부하는 탐사기획은 4회에 걸쳐 이어진다.
‘가짜뉴스 공장’으로 드러난 에스더기도운동이 박근혜 정부 시절 ‘우파단체 활동가’를 양성하겠다며 국가정보원에 43억여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 영역별 청년 전문가를 집중 훈련해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보수 싱크탱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돕는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확인된 에스더가 대선이 끝난 뒤 본격적인 우파 활동을 전개하려 한다며 국정원에 수십억원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1일 <한겨레>가 입수한 에스더 내부 자료를 보면, 에스더는 2012년 대선 전인 2011년 11월 ‘통일운동가 훈련학교 자유통일아카데미(가칭)’ 사업 기획안을 작성했다. ‘35세 이하 청년 40명을 한 기수로 석달간 월 80만원을 주며 집중훈련시켜 정상적으로 수료한 사람은 월 120만원을 주는 각 영역별 전문 간사’로 키워내겠다는 ‘3년짜리 학사 과정’ 기획안이다. 이용희 에스더 대표(가천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가 감수했다고 적혀 있다. 자유통일아카데미 사업의 구체적 목표는 △시민단체 창설자·대표 양성 △인터넷(미디어) 뉴스·방송 창설자 및 논객·기자 양성 △캠퍼스 운동가 양성 등이다.
이 문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2012년 훈련 과정이다. ‘4월11일 총선을 위해 분야별 필드(field) 사역’(3월 중순~4월 중순), ‘8·15 광장기도회를 위한 분야별 필드 사역’(4월 말~8월 말), ‘12월19일 대선을 위한 분야별 필드 사역’으로 이뤄져 있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있던 해였다. <한겨레>는 에스더 내부에서 인터넷 여론 작업을 ‘인터넷 사역’이라고 부르며, 2012년 대선에서 실제 ‘대선 사역’을 실행했다고 확인 보도한 바 있다.
대선 사역을 통해 온·오프라인에서 역량을 확인한 에스더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자유통일아카데미 사업 기획안을 국정원에 보냈다. 이용희 대표는 2013년 11월, 에스더 핵심간사 ㄴ씨에게 국정원 간부 이아무개(3급·부이사관)씨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기획안을 발송하라고 지시했다. 발송된 문건에는 자유통일아카데미 사업의 훈련 과정과 함께 예산 계획 및 미래 비전 ‘벤치마킹 사례’가 자세히 적혀 있다. 에스더는 향후 5년간 자유통일아카데미 사업을 추진하며 총 43억3천만원의 예산(연 9억원 안팎) 후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체 예산 가운데 10%는 ‘교회 및 개인회원 후원 요청, 시민단체 정부지원금 요청’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마련하겠지만, 90%는 후원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계획안이었다.
미래 비전과 관련해서는 자유통일아카데미를 향후 한국판 ‘헤리티지 재단’이나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보수 싱크탱크 모델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헤리티지 재단’은 미국의 보수적 외교안보 정책 여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 ‘마쓰시타 정경숙’은 다수의 정치인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스더는 이 기획안을 국정원 쪽에 전달한 뒤 며칠 지나 연간 예산을 9억원에서 3억원으로 줄인 기획안을 다시 만들어 국정원 쪽에 보냈다. 누군가의 지시로 예산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에스더는 보수단체를 명의로 한 대중집회의 실제 기획자였다. 에스더가 2012년 3월,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 매수’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집회를 하던 모습(위). 에스더 전 활동가 제공
국정원이 이 기획안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사업은 자유통일아카데미에서 ‘청년비전 통일한국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꿔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한국아카데미는 2014년 2월 1기를 시작으로 2017년 8월까지 총 9기 교육생을 배출했다. 국정원 보고 이후 사업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재조정된 점이 눈에 띈다. 애초 국정원에 보고됐던 사업 방향과는 달리 이후 진행된 통일한국아카데미는 인터넷 여론과 관련된 수업에 커리큘럼이 집중됐다. 에스더는 청년들을 모집해 ‘인터넷 선교’ ‘한국 사회와 미디어’ ‘인터넷 뉴스와 포털’ ‘에스엔에스(SNS)의 전략적 활용’ ‘인터넷 사역 실제 사례 보고’ 등의 수업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전 에스더 활동가 ㄱ씨는 “청년을 끌어들여 우파의 하부를 조직하고 여론전을 벌이는 사업이 에스더의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수십억원짜리 예산이 드는 기획안을 만들어 전달할 정도라면 에스더와 이 국정원 간부 사이에 평소 일정한 신뢰 관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교수와 에스더 핵심 사업을 논의했던 ㅎ 목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교수와 국정원 간부 이씨) 두 분을 제가 소개했다. 서로 친한 걸 알고 있다”며 “제가 기독교 쪽 지원 창구는 이 대표여야 한다고 회사(국정원)에 말했다”고 전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국정원에 사업 제안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럴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사업 제안 이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방식의 일처리”라고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요란하게 국정원 적폐청산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은 건드리지조차 못한 것 같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의 국정원 문제는 많이 드러났지만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무얼 했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검찰 수사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희 대표는 “국정원 직원이랑 인사하고 그랬을 수 있지만, 국정원 직원 안 만난 지 벌써 오래됐다”며 “(국정원과) 연결하려 하지 말라. 국정원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 이씨는 여러 차례 취재 사실을 알리고 통화를 요구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조실장이 막 바뀌어 국정원 조직에 변화가 있는 때여서 구체적인 확인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김완 박준용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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