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0127113710551


로토루아 시의원 "한국 지방의원들 1년에 30번 만난다"..왜?

조지현 입력 2019.01.27. 11:37 수정 2019.01.27. 11:37 


■ 기사·인터넷 검색 정보 짜깁기한 연수보고서

■ 뉴질랜드 로토루아 시 의원 "한국 지방의원들 1년에 30번 만난다" 

■ 관광성 연수일정…사전 심사는 의원 '셀프'로


현지 시의원 면담 질의응답까지 베낀 보고서


서울 강서구의회 의원 11명이 지난해 10월, 뉴질랜드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그 뒤 제출한 보고서를 분석해봤더니 현지 시의원과 면담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시의원과 묻고 답한 내용을 적은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뉴질랜드 시의원의 답이 무려 17년 전 한국 신문기사와 똑같습니다.

강서구의회에 물어봤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연수에 함께 갔던 의회사무국 직원이 작성했는데 당시 시의원을 만난 "장소가 워낙 넓어서 답변 내용이 잘 안 들려 정확히 기록을 못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당시 질의응답을 했던 장소가 얼마나 넓었는지는 아래의 사진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지방의원들이 "1년에 30번"씩 찾아가는 뉴질랜드 시의원?


그런데 강서구의회 의원들이 만났다는 뉴질랜드 로토루아시의 마크굴드 의원. 어딘가 낯이 익습니다. 올해 또 뉴질랜드를 다녀온 관악구의회 보고서와 2017년 강릉시의회와 이천시의회 등 다양한 지방의회 국외연수 보고서에 등장하는데요.


마크굴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1년에 한국의원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느냐고 물었더니 24번에서 30번 정도 만난다고 답했습니다.


한국 지방의원들은 도대체 뭘 배우려고 이렇게 많이 로토루아시를 찾는 걸까요?


마크굴드 의원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의원들이 간혹 본인들과 상관없는 질문들을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원들이) 우리 의회가 건강문제에 관여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우리는 전혀 안 합니다. 실업, 질병, 연금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데 우리는 그런 부분은 담당하지 않습니다."


로토루아시는 오클랜드에서 200km 떨어진 인구 7만 명의 작은 마을입니다. 원주민인 마오리인의 역사와 문화 중심지이자 세계적인 온천 휴양지입니다.


한국의 지방의원들이 너도나도 마크굴드 의원을 찾아가는 이유,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유명 관광지를 가면서 시의원 면담을 끼워 넣어 그럴듯하게 포장한 꼴인 거죠. 마크굴드 의원도 한국 지방의원들이 관광지에 와서 왜 실업이나 연금 같은 뉴질랜드 정부가 하는 일을 물어보는지 조금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일본·미국 기사를 가져다 독일 보고서에?


독일과 체코를 다녀온 중구의회의 보고서에서도 신문기사 등 인터넷상에 올라온 정보를 그대로 가져다 쓴 부분이 쉽게 눈에 띕니다. 시사점과 총평을 한다면서 일본과 미국 사례를 든 기사를 그대로 붙이고 독일로 이름만 바꿨습니다. 체코 교육시스템에 대한 총평은 사실 독일 교육시스템에 대한 교육부 블로그 글 그대로입니다.

중구의회 보고서 역시 의회 사무국 직원이 의원들의 의견을 전달받아 정리했다는데요. 해당 직원은 기사 내용이 일본, 미국, 독일 등 다른 나라의 사례이기는 했지만, 실제 그곳에서 들은 내용과 정말 똑같아서 가져온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원래는 보고서를 더 짧게 썼어도 됐는데 더 잘 쓰려다 보니 기사를 좀 인용하게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5~6줄 의견마저 인터넷 기사 긁어와


성북구의회는 의회 사무국 직원들이 대필하는 걸 개선해 보겠다며 이번에는 의원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의견을 적었는데요. 그런데 이 짧은 의견마저 여기저기 인터넷 기사를 긁어왔습니다.



대부분의 구의회는 공무국외여행 규정에 보고서 작성 시에는 "관련 통계․법령․참고문헌 등 구체적인 근거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규정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KBS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지난해 서울 구의회 연수 보고서를 분석해봤더니 대부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국외연수를 다녀온 구의회는 19곳, 그 가운데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5곳을 제외하고 14곳의 보고서를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결과, 표절 없는 보고서는 영등포구의회 한 곳뿐이었습니다.


허술한 보고서는 연수 계획단계부터 예견된 일


보고서가 이렇게 허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연수 일정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터키를 다녀온 노원구의회. 복지와 도시재생 분야를 살펴보겠다고 했는데 복지시설 방문 같은 공식 일정은 셋뿐이었습니다. 열흘 일정의 대부분이 블루모스크 등 유명 관광지 방문입니다.

노원구의회 국외연수 일정표

노원구의회 국외연수 일정표


유럽 3개국을 다녀온 성북구의회는 계획서에서는 바티칸에서 박물관을 통한 지역개발을 배우고, 파리의 도시개발 계획을 체험하겠다더니 연수보고서에서는 문화탐방, 즉 관광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북구의회 연수계획표

성북구의회 연수계획표

성북구의회 연수일정

성북구의회 연수일정


국외 연수를 다녀온 한 의원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주중에도 날짜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관광을) 했다"고 답합니다. 일정이 너무 촘촘해서 어쩔 수 없이 관광을 좀 넣었다는 겁니다.


'셀프심사'에 있으나 마나 한 사전 심사제도


사전 심사제도 역시 있으나 마나입니다. 지난해 해외출장을 다녀온 서울지역 19개 구의회 중 16곳이 의원들 스스로 심사를 했습니다. 이른바 '셀프심사'입니다.


셀프심사가 아니어도 심사가 제대로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셀프심사를 조례로 금지한 성북구의회의 심사회의록을 보면 한 의원이 "저도 내년이면 가야 할 형편"이라며 일정이 적정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구의회 심사회의가 10여 분 만에 끝나는 걸 보면 심사에서 연수의 목적이나 일정을 제대로 검토할 리 없습니다.


연수 계획서, 심사회의록 등 투명하게 공개해야!


서울 25개 구의회는 모두 연수보고서는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계획서는 16곳은 아예 공개조차 하지 않습니다. 심사회의록은 11곳이 공개하지 않습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는 지방의회의 국외연수가 "감시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원래 국외연수 과정을 감시해야 할 심사위원회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하다 보니 아무도 감시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지방의회의 국외연수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조지현 기자 (cho2008@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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