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6232202005


금강에 10년 만에 돌아온 ‘흰수마자’…강의 자연성 회복 ‘신호탄’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입력 : 2019.06.23 22:02 수정 : 2019.06.23 22:06 


4대강 보 개방 이후 ‘수생태계 변화조사’ 모니터링팀 동행 취재

공주보 인근 피라미 등 유수성 어종 늘고 배스 등 정수성 어종 감소 확인

금강 주변 모래톱·수변 공간 크게 늘어나자 동식물 활발한 움직임 포


지난 4월 공주대 연구팀이 세종보 인근에서 잡은 흰수마자 4마리의 모습. 흰 수염이 8가닥 나 있으며, 수염 때문에 흰수마자라고 불린다.  환경부 제공

지난 4월 공주대 연구팀이 세종보 인근에서 잡은 흰수마자 4마리의 모습. 흰 수염이 8가닥 나 있으며, 수염 때문에 흰수마자라고 불린다. 환경부 제공


“흰수마자가 엄청 귀여운 물고기도 아니고 일반 시민들은 시큰둥했잖아요. 근데 연구자들 사이에선 화제였어요. ‘누가 새로 과제하려고 강물에다 풀어놓은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정도였다니까요. 금강 본류에서 사라진 지 10년도 넘은 애가 갑자기 출현했으니 다들 깜짝 놀란 거죠.”


최근 4대강 보 개방 이후 처음으로 금강 세종보 하류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민물고기인 ‘흰수마자’가 발견돼 학계가 시끌벅적하다. 지난 4월4일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처음 1마리를 발견했고, 다음날 공주대 연구진이 추가로 4마리를 확인했다. 보를 열고 물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퇴적물이 씻겨 내려가고, 강바닥에 모래가 드러나면서 흰수마자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흰수마자의 귀환은 강의 자연성 회복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7일 ‘4대강 보 개방에 따른 수생태계 변화조사’ 모니터링팀과 함께 찾은 금강에선 보 개방 이후 생겨난 다양한 변화들이 확인됐다. 수문이 활짝 열린 세종보에서 힘차게 쏟아지던 물살은 문이 닫힌 하류 백제보에서 머뭇거리며 잔잔한 물결로 변했다. 그럼에도 꾸준한 강물의 흐름은 의미 있는 변화들을 하나둘 만들어내고 있었다. 


■ 보 개방 후 속속 돌아오는 물고기들 


“아직 물 흐름이 느린 곳에 사는 정수성 어종이 많지만, 지난 3년 동안 물살이 있는 곳에 사는 유수성 어종이 늘어나는 추세가 확연합니다.” 


최지웅 생물모니터링센터 대표가 가슴까지 닿는 장화를 입더니 함께 온 연구원들과 차량 뒤편에서 고무보트를 끌어내렸다. 모니터링팀은 환경부의 의뢰를 받아 정기적으로 금강의 수생태계를 조사하고 있다. 이날 첫 조사 지점은 공주보 사업소 바로 아래의 백제보 상류. 공주보도 세종보처럼 수문이 모두 열려 있지만, 더 아래 있는 백제보의 영향으로 물이 어느 정도 차 있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보 수문 개방 지시 이후 2017년 6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보 개방 수생태계 조사는 매달 보와 인접한 지점에서 강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살펴본다. 먼저 물살을 가르며 보트가 강 한복판으로 나아갔다. 정치망을 설치했다가 이틀 뒤 거둬들여 강 복판에 어떤 물고기들이 사는지 살펴본다. 물가에서는 투망과 족대를 이용해 얕은 물에 사는 물고기들을 잡는다. 최 대표가 수풀이 우거진 물가로 걸어들어갔다. 커다란 새가 흰 날개를 펼치듯 투망이 활짝 펴졌다가 물에 잠겼다. 그물을 끌어내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고기들이 파닥였다. 몸통에 청록빛 혼인색을 띤 큼직한 수컷 피라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피라미가 1마리에 몰개 4마리…. 망둥어처럼 생긴 놈은 밀어입니다.” 


윤지우 연구원은 족대를 들고 물가를 헤쳤다. 그물을 뜨자 물고기 수십마리가 버글거렸다. 최 대표 설명에 따르면, 강가의 수풀은 ‘물고기 학교’다. “스쿨링(Schooling)이라고 작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다니면서 포식자를 피하는 겁니다. 치어들이 한군데 모여 있는 거죠.” 돌마자와 참마자가 잔뜩 잡혔고, 검은 줄이 선명한 녀석은 새끼 배스라고 했다. “치리 1, 피라미 2, 몰개 18, 돌마자 28, 참마자 3, 밀어 8, 납자루 3, 갈문망둑 2, 참붕어 2, 붕어 1….” 잡은 물고기들을 놓아주면서 윤 연구원이 어류기록장에 물고기의 종과 숫자를 적어내려갔다. 


2008~2018년 금강 수생태계 변화 조사 결과를 보면, 보 개방 뒤 어류 종수가 늘고 풍부도 지수(군집 내 종 다양성)도 높아지고 있다. 공주보 구간은 평균적으로 보 개방 전 어류 종수가 7.8, 풍부도는 1.6이었다가 보 개방 후에는 각각 8.7, 2.0으로 늘었다. 월별로는 2017년 6월 5종에서 2018년 9월 13종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월별 조사에선 15종 정도 확인된다고 한다.


눈에 띄는 점은 공주보 개방 전 정수종과 유수종의 비율이 각각 62.4%, 10.9%에서 개방 후 44.2%, 19.2%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금강 수계에선 피라미·돌마자·흰수마자 같은 유수성 어종이 늘고, 몰개·붕어·잉어·배스 등 정수성 어종은 줄어든 것으로 관찰됐다. 하지만 여전히 강바닥을 파내고 콘크리트 보로 물을 막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민물고기인 흰수마자가 발견된 금강 세종보 주변 모습(위 사진). 지난 17일 ‘4대강 보 개방에 따른 수생태계 변화조사’ 모니터링팀이 어종을 확인하기 위해 강에 정치망을 설치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민물고기인 흰수마자가 발견된 금강 세종보 주변 모습(위 사진). 지난 17일 ‘4대강 보 개방에 따른 수생태계 변화조사’ 모니터링팀이 어종을 확인하기 위해 강에 정치망을 설치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 강 주변 생태계도 ‘회복 신호’ 


하류 쪽인 백제보가 가까워질수록 강물이 많아졌다. 김동환 국립생태원 연구원이 물가에서 주먹만 한 돌을 집더니 뒤집었다. 돌 위로 작은 물달팽이가 기어가고, 달팽이알이 붙어 있었다. 그 옆으로 실밥처럼 생긴 무언가가 꿈틀댔다. 최악의 오염지표종으로 꼽히는 붉은깔따구다.


4대강 사업 이후 ‘녹조라떼’와 함께 큰빗이끼벌레, 실지렁이, 붉은깔따구 등이 창궐해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금강도 이를 피해가진 못한 것이다. 


“붉은깔따구는 억울할 거예요. 환경이 맞아서 사는 것뿐이거든요. 생물이 빨갛다는 건 몸에 산소를 옮기는 헤모글로빈이 있다는 건데요. 유기물들이 산소를 소모하는 오염된 곳에서도 버틸 수 있습니다. 원래 유기물이 많은 하류에는 붉은깔따구가 있을 수도 있는데 4대강 사업 이후 상류나 중류에도 녹조가 끼고 붉은깔따구가 나오니까 논란이 된 거죠.” 


수변의 갈대는 머리에 흙을 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물이 찼던 흔적이다. “생물들이 돌아오는 데도 순서가 있어요. 모래톱이 드러나면 날아다니는 새들이 발견하고 먼저 찾아와요. 동물들도 물가를 찾게 되고요. 민물고기들은 하류로 무작정 가면 바다를 만나 죽으니까 거슬러 헤엄치는 성질이 있는데, 보문이 열리고 새로 생긴 흐름을 따라 지천에서 하나둘 찾아오는 것 같아요. 여기에 하루살이도 돌아오면 좋을 텐데 아직 안 보이네요.” 날벌레가 자연성 회복과 무슨 상관일까. “강에는 여울도 있고, 구석에는 웅덩이도 있고, 물이 흘러가는 흐름까지 다양한 형태들이 있어야 역동적인 생태계가 됩니다. 이동성이 적은 벌레들까지 돌아오면 환경이 보다 풍부해졌다는 의미인 거죠.”


지난해 11월 금강 완전 개방 모니터링 결과에선 강물의 체류시간은 최대 76.5%까지 줄어들고, 유속은 최대 222%까지 빨라져 물 흐름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위가 낮아지면서 모래톱과 수변공간이 크게 늘었다. 물가에는 식물들이 뿌리내리면서 자연 천이가 일어났고, 다양한 물새류와 표범장지뱀, 맹꽁이, 삵, 수달 등 멸종위기 육상동물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 흰수마자 귀환은 자연성 회복을 의미 


공주보 상류인 세종보는 보 개방 이후 변화가 가장 큰 곳이다. 세종보의 막힘없이 흐르는 투명한 물 위로 햇빛이 쏟아지자 실금이 아른거렸다. 물이 저만치 물러난 모래톱 위로는 삵이 남긴 ‘고양이 발바닥 모양’에 양 굽이 갈라진 고라니 발자국, 세 갈래로 찍힌 왜가리 발자국과 물갈퀴 모양의 오리 발자국까지 다양한 흔적이 여기저기 이어졌다. 


김동환 연구원이 흰수마자가 발견된 지점을 가리켰다. 세종시 아파트단지와도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다. “흰수마자는 사는 조건이 까다로워요. 흔히 금모래라고 하는 고운 모래가 깔려 있고, 물살이 있는 깨끗한 곳에만 있거든요. 전형적인 한국의 강에만 살 수 있는 물고기인 거죠.”


흰수마자는 4대강 사업과 내성천 개발 등으로 현재는 적은 수만 관찰되고 있다.


“한반도 생물은 수만년 전 빙하기 때 고립돼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들이 꽤 있어요. 흰수마자 말고도 금강 지천인 미호천에만 사는 미호종개, 임실에 사는 임실납자루, 거제의 남방동사리처럼 특정 지역에만 사는 놈들은 그 지역에서 멸종되면 전 세계적으로도 멸종된다고 보면 됩니다.”


강물은 흐를 뿐인데 강을 둘러싼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보 개방 이후 세종보에선 일부 주민들이 물이 그득한 ‘리버뷰’가 사라졌다며 반발한 일이 있다. 공주보에선 농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크지만, 정작 실제 물 부족 민원이 접수되진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지천이나 상류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 보 개방과는 큰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 부족 우려가 제기된 곳에는 관정까지 새로 팠지만, 지역 정치권에선 이슈화를 계속하고 있다. 오히려 실제 물 부족 현상이 있던 백제보의 경우 환경부와 협의해 물 대책을 마련하며 추가 개방을 준비하고 있다. 


흰수마자가 돌아오고, 강의 자연성이 회복되는 것은 사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쉬이 와닿지 않는 문제다. 


김동환 연구원은 자꾸 강의 자연이 파괴되면 ‘민물고기 매운탕’도 못 먹게 될 거라며 웃었다. “쏘가리는 날도래나 하루살이를 먹고 살아요. 우리가 볼 때는 그냥 벌레지만, 생태계에선 중요한 축을 맡고 있는 거죠. 종 다양성은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저기 찢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생태계가 파괴되다보면 인간도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결국 근본적인 가치를 어디다 두는지 관점의 차이이지만, 진짜 ‘자연스러운 강’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죠.”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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