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5133
비리국(卑離國)
김정학 1995년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54소국(小國) 중 하나이다.
《삼국지 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우리 나라 고대 삼한의 여러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나라 이름은 우리말의 나라 이름을 당시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라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삼한소국의 위치 비정에 참고가 된다.
한조에 열거된 소국의 이름에는 ‘비리(卑離)’가 붙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내비리국(內卑離國)’·‘벽비리국(辟卑離國)’·‘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등이 그것이다. ‘비리’는 옛 지명 어미에 흔히 붙어 있는 백제의 ‘부리(夫里)’, 신라의 ‘벌(伐)’·‘불(弗)’·‘불[火]’ 등과 같은 뜻이다. 즉, 평야를 뜻하는 ‘벌’에서 유래된 말로서, 읍락 또는 나라라는 뜻으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비리국은 위에서 예로 든 여러 비리국들처럼 ‘비리’ 앞에 특정한 나라 이름을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붙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무슨 비리’라는 특정한 나라를 가리키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혹은 일정한 지역의 ‘비리’ 중 근본이 되는 ‘비리’이기에 특정한 이름을 붙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신라의 6부 이름에 양부(梁部)·사량부(沙梁部)·점량부(漸梁部) 등이 있는데, 이 중 근본이 되는 것만 양부라고 한 예와 마찬가지이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한조의 기록순서로 보아 지금의 충청남도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오늘날의 지명에 비정하기는 어렵다. 이 소국은 마한연맹체의 일원으로서 맹주국과 여러 가지 형태의 결속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토착적인 세력기반을 그대로 간직한 채, 3세기 이후까지 개별적인 성장을 지속하다가 백제에 복속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삼국지(三國志)
한국고대사의 연구 (이병도, 박영사, 1976)
삼한사회형성과정연구 (이현혜, 일조각, 1984)
「마한제국의 위치시론」 ( 천관우 ,『동양학』 9,1979)
Analytic Dictionary of Chinese and Sino-Japanese ( Karlgren ,K.B.J.,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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