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0731090019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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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우리 땅' 함박도에 북한군 주둔"?..빌미 준 정부

신선민 입력 2019.07.31. 09:00 수정 2019.07.31. 09:00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 ‘함박도’


최근 유튜브나 포털 블로그 글에 자주 등장하는 섬이 있습니다. 이름은 함박도. 서해상에 위치하고 있고, 면적 19,971㎡(축구장 3개 크기)의 작은 무인 섬입니다. 위치는 북위 37°40'40", 동경 126°01'42",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중 가장 작은 섬인 우도와는 8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썰물 때는 우도와 갯벌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이 섬이 어떻게 거론되나 봤더니,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라는 남한 행정 주소가 부여된 엄연한 '우리 땅'인데 "현재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래는 유튜브에 '함박도'를 검색한 결과의 일부입니다.


*대한민국 함박도에 북한군 주둔 확인됐다

*큰일 났다!!! 한국 영토에 북한군 주둔!!!

*(충격)대한민국 주소지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 함박도에 무슨 일이?

*우리 땅 함박도에 북한군 주둔, 문재인 정경두 어찌할까?

*국방부는, 함박도를 북한군에 할양했는가?

함박도 등기부 등본 일부

함박도 등기부 등본 일부


일단 등기부 등본을 떼 보니 함박도에 우리 주소가 부여된 것은 맞습니다. 소유자는 대한민국 산림청, 국유지입니다. 국방부에 확인해보니 함박도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황당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따져봤습니다.


■ 함박도는 ‘우리 땅’일까?


그런데 북한과 "내 땅, 네 땅"을 따지는 것이 이론상으론 의미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휴전'이라는 비정상적 상황, 국방상 경계는 존재합니다. NLL(서해북방한계선)입니다. 그리고 일부 유튜브 주장의 핵심이 "북한군이 NLL을 넘어와 주둔 중"이라는 주장이기 때문에 NLL을 기준으로 따져봤습니다.


① 함박도는 NLL 이북인가, 이남인가? 


NLL은 1953년 정전 직후 클라크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한 해상경계선입니다. 클라크 사령관이 해상 경계 설정을 위해 서해 상에 좌표를 여럿 찍었고, NLL은 이 좌표들을 연결한 선입니다.


NLL과 함박도의 위치를 지도에 직접 찍어봤습니다. 2011년 발행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자료에 1953년 NLL 설정 당시 9개 좌표가 나와 있습니다. 지도에 찍어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함박도는 NLL 위쪽에 있습니다.(아래 지도)


NLL(1953년 설정 좌표)과 함박도

NLL(1953년 설정 좌표)과 함박도


국방부에 NLL의 정확한 좌표를 요구했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설명한 뒤에야 일단 함박도와 최단거리에 있는 NLL의 좌표 일부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지도에 구현해본 결과, 이 지도에서도 함박도는 NLL의 북쪽에 있습니다.(아래 지도)

NLL(최단 거리 좌표)과 함박도

NLL(최단 거리 좌표)과 함박도


정전협정 이후 NLL 좌표가 바뀐 적은 없을까? 국방부와 담당 해군 측은 "NLL은 처음 설정된 이후 단 한 번도 변동된 적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② 정전협정 때 함박도 위치는?

NLL은 1953년 정전협정 당시 남북의 영토 구분을 근거로 설정된 선입니다. 아래 자료는 미국 국립기록물보관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전협정 직후 작성된 '첨부지도 제3도'입니다.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가-나 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하기한 다섯 도서 군들을 제외한 기타 모든 섬들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의 군사 통제하에 둔다"라고 돼 있습니다. 즉, 서해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빼고, 지도에 그어진 도계선의 북쪽이나 서쪽에 있는 섬들은 다 북한으로 넘긴다 는 겁니다. 함박도는 도계선 북쪽에 위치합니다. 함박도는 이때 북한 관할로 정리됐습니다.


정전협정 첨부지도 제3도 [출처: 미국 국립기록물보관소]

정전협정 첨부지도 제3도 [출처: 미국 국립기록물보관소]


■ ‘북한 관할’ 함박도에 한국 주소는 왜?


풀리지 않는 의문은 '행정 구역'입니다. 언제부터 함박도가 대한민국 강화군 소속이 됐을까요? 왜 행정상 남한 땅으로 등록돼 있을까요?


국가기록원에서 의문을 풀어줄 문건을 찾았습니다. 1978년에 생산된 '미등록도서 및 비정 위치도서 등록사업' 문서입니다. 당시 박정희 정부의 내무부가 지자체에 "지적 공부에 미등록 도서를 등록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담겨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인도로 '미등록' 상태였던 함박도는 강화군청 소속 도서로 1978년에 최종 등록됐습니다.

1978년 인천시 ‘미등록 도서 조서’ 문건에 등재된 함박도

1978년 인천시 ‘미등록 도서 조서’ 문건에 등재된 함박도


정부의 지시였지만 실무를 맡았던 건 강화군, '왜 등록했나?'라는 질문에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그 배경을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땅의 지적공부 등록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도 "현재는 1978년 함박도 등록 배경을 알 수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 추정은 가능합니다. 북한은 1973년부터 서해5도 주변이 북한의 수역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1977년 7월 1일에는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획정한 200해리 수역을 확정했고, 한 달 뒤인 8월 1일에는 일방적으로 해상 군사분계선을 발표해버렸습니다. 북한이 NLL을 무력화하는 도발을 일삼자 이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함박도를 남한 행정 구역으로 등록한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① 함박도 공시지가도 발표…국토 지도도 ‘잘못’


이렇게 시작된 오류, 함박도는 해마다 공시지가도 발표됩니다. 올해 공시지가는 1㎡당 1,070원입니다. 해양수산부에서는 함박도를 '절대 보전' 무인도서로 분류해놓고 있습니다.


함박도 공시지가 [출처: 국토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

함박도 공시지가 [출처: 국토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


지도도 엉망입니다. 대표적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 지도에서 함박도를 검색하면 NLL 이남에 나타납니다.


다음, 네이버에 검색한 함박도 지도

다음, 네이버에 검색한 함박도 지도


정부에서 제공하는 국토 지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토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도 함박도는 NLL의 살짝 남쪽에 위치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 함박도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상 함박도


② 40년 ‘행정 착오’…안 고쳤나? 못 고쳤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함박도가 남한 지역이 아닌데도 40년 동안 '행정 착오'를 몰랐거나, 

-알았는데도 어떤 목적 때문에 일부러 주소를 남겨뒀거나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결론이 쉽지 않습니다. 모든 관할 부처, 지자체에 물었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1)국방부(NLL 소관)

"함박도와 관련한 역사적인 근거 자료를 검토 중이다."


2)국토교통부 공간정보제도과(도서 등록 담당) 

"함박도를 등록 도서에서 제외할 수 있는지 관련 법리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민감한 문제라 다른 부처와도 협의가 필요하다."


3)국토교통부 부동산평가과(공시지가 담당)

"지자체에서 함박도 공시지가를 결정공시 한 것이다. 국토부가 표준지로 정한 것 아니기 때문에 우리와 무관하다."


4)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국토 지도 담당) 

"국방부 자료 받아서 지도에 NLL을 그리긴 했지만, 우리도 임의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오류 가능성은 있다."


5)해양수산부(도서 등록 담당)

"함박도에 우리나라 주소와 지번 부여된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무인도서 등록을 뺄 수는 없다. 국토부가 먼저 함박도의 주소를 빼줘야 우리도 함박도를 제외할 수 있다."


6)인천시 도서지원팀(관할 지자체)

"우리와 무관하다. 무인도서 지정은 해수부가 담당이며, 현장 확인은 강화군에 해라."


7)강화군청 해양수산팀(관할 지자체) 

"함박도는 강화군 소속 맞다. 하지만 함박도에 북한군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8)국무조정실(부처 간 조정 역할)

"국방부와 국토부 두 부처에서 파악 중인 것 같다. 우리가 관여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거나 다른 부처에 은근히 떠밀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결국 국방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관계 부처들이 '행정 오류' 수정을 위한 협의에 들어갔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제야 모두 바로 잡겠다는 겁니다.


■ 정부가 빌미를 준 ‘가짜뉴스’


의도적인 '가짜뉴스' 생산과 확산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내버려 둔 정부의 조치가 그 빌미가 됐다면 더 큰 문제인 겁니다.


덧붙여진 가짜뉴스가 또 있습니다, "'우리 땅 함박도'를 문재인 정부가 북한군에 내줬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7월 23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문재인, 서해 함박도 북에 넘겼다'는 제목의 글도 올라왔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북한군이 들어왔다는 주장이죠.


사실일까요? 북한군이 언제부터 함박도에 주둔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군사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입니다.


그래서 서해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우리 해병들을 중심으로 함박도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이 중 1990년대 연평도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내가 근무할 당시 이미 함박도에 북한군이 주둔 중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최소 20년 전부터는 북한군이 함박도에 있었다는 게 됩니다. 문재인 정부 때 북한군이 갑자기 NLL을 넘어와 함박도를 점령한 건 아닙니다.


2010년, 당시 정치권도 함박도를 북한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 12월 2일,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 정두언 당시 최고위원은 서해 우도를 설명하면서 "우도는 NLL에서 6Km 떨어져 있고 '북한의 함박도'에서 8Km 떨어져 있다"고 밝혔습니다.


■ 팩트체크 그 후…


기자도 하마터면 함박도에 갈 뻔했습니다. '우리 주소니까 누구나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당연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함박도 인근은 통제 지역으로 관리되고 있어 민간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해군의 답변이었습니다.


정부가 이 모든 오류를 바로잡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관계자들이 법리 검토, 절차상 복잡성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속도를 내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후속 조치는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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