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60908


"일본이 우리 급소 찔렀다? 시간 갈수록 일본 기업이 더 불안"

[인터뷰] 한일 경제전쟁 '필승론' 펴는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19.08.09 20:58 l 최종 업데이트 19.08.09 21:11 l 글: 이승훈(youngleft) 사진: 이희훈(leeheehoon)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일본이 놓친 게 있다. 반도체가 우리 수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어 공격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여기에 디스플레이 분야의 LG디스플레이까지 이들 3개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그런 외부 충격에 대응능력이 다른 중견·중소기업보다 훨씬 크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이희훈


"이 자료를 한 번 보세요."


빠르게 말을 쏟아내던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가방에서 자료 뭉치를 꺼냈다. 일본의 경제 상황을 분석해 정리한 수치들과 그래프가 가득한 문서들이었다.


지난 7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최 교수는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일본 경제가 빠진 수렁을 통계 자료를 통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 조치는 아베 정권 출범 이후 뭘 해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 "내부적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가미카제식 외부 때리기"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 초기부터 "일본이 멍청한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라며 "조금만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는 낙관론을 폈다. 근거는 분명했다. 우리 경제의 급소를 노렸다는 일본의 조치가 결국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일본 기업들이 더 불안해하는 이유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이희훈

 

최 교수는 "반도체가 우리 수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어 공격했는데, 일본이 놓친 게 있다"라며 "급소를 노렸다고는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방어 능력이 있는 기업을 건드리면서 오히려 성공가능성이 낮아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일본 기업들이 더 불안해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의 설명이다.


"반도체를 비롯해서 국제 분업구조가 복잡한 산업일수록 소재·부품의 경쟁력과 완제품의 경쟁력이 맞물려 돌아간다.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앞으로 삼성전자와 거래가 끊기면 일본 기업들이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일본은 지난 7월 초 수출 규제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반도체 핵심소재 중 하나인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의 수출을 허용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일본의 조치가 한국에 소재를 공급하던 일본 기업들이 대체 판로 확보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대만이나 미국 등의 반도체 업체에 수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공정라인 조정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부품과 소재가 바뀌면 공정과정을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데, 우리 기업들이 지금과 같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해가 좀 있더라고 공정과정을 바꿔야 한다"며 "우리 기업들의 공정과정이 바뀌면 앞으로는 일본의 소재·부품이 외면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면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 조치는 자신들의 산업구조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극복한다며 재벌 봐주기는 안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이희훈

 

남은 문제는 우리의 내부 대응 방식이다. 정부는 일본에 의존해왔던 소재·부품을 국산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와 함께 각종 규제도 풀어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산화를 위해 공장 인허가 절차 간소화, 주 52시간제 후퇴,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기업들에게 안겨주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이 같은 조치가 대·중소기업이 수평적 협업관계를 이루는 산업 생태계 재편을 막고 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더 강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 교수는 "일부 관료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다고 안전과 환경 부분의 후퇴를 언급하고 있는데 아무리 급하더라도 사람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다, 꼭 필요한 환경과 노동 관련 규제는 느슨해져서는 안된다"라며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과거처럼 재벌 총수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고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몰아서도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만약 그런 움직임이 구체화 되면 시민사회가 견제를 해야 한다"며 "발생한 외부 충격을 과거의 재벌중심 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만 우리가 지금 지불하고 있는 값비싼 비용이 의미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경제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최 교수는 진보소장파 경제학자다. 활발한 저술과 방송 출연을 통해 왜곡된 경제 보도를 바로잡는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담은 <이게 경제다>라는 책을 펴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아베노믹스의 실패... "돈 찍어내 경제 유지, 지속불가능"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본읙 경제상황에 대한 자료를 꺼내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본읙 경제상황에 대한 자료를 꺼내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희훈

 

- 일본이 우리나라를 결국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일본 기업도 피해를 입을 텐데 설마 강행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일본은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이유는 뭐라고 보나.

"내부의 경제적 위기를 외부 때리기로 만회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지금 일본 경제가 굉장히 많이 망가진 상태다. 2013년 아베 정권 출범 후 6년 6개월 지났는데 연평균 63조원, 우리돈으로 683조원을 찍어내 경기부양을 했는데 효과가 없었다. 지난해 35조엔으로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했더니 GDP가 1411억엔 줄었다. 무역수지 적자까지 겹쳐서인데 일본은 내수경제 규모가 축소되고 있어서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내지 못하면 GDP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 아베 정권은 니케이 지수는 많이 올랐다고 선전하고 있다.

"자랑할 게 아니라 일본 중앙은행이 막나간 결과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서 주식을 사들여 주가를 부양했다. 그래도 주가가 오르지 않고 정체되면 더 많이 사들였다. 교과서대로라면 중앙은행은 위험자산인 주식 거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중앙은행조차도 아베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 아베노믹스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뭔가?

"저는 아베 정권의 탄생을 '잃어버린 20년의 사생아'라고 표현한다.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 이후 온갖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금융위기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는데 너무 무능해서 다시 정권을 뺏겼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겠다며 돈을 대규모로 찍어내 엔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를 통해 수출을 늘리면 기업의 수익이 좋아지고 투자와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환율효과로 기업의 수익이 늘어나긴 했지만 투자와 고용은 늘지 않았다."


- 왜 그런가?

"예를 들어 A라는 자동차 회사가 1대에 3000만원씩 1000대를 미국에 판다고 하자.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일 때는 매출액이 3만 달러다. 환율이 1달러당 2000원이 되면 6만 달러로 매출액이 올라간다. 쉽게 말해 똑같은 물량을 팔았는데 기업의 수익은 두 배가 된다. 기업 입장에서 수익은 늘었지만 생산 물량은 전혀 늘지 않았다. 그런데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나. 일본의 수출액은 엔화 기준으로는 올라갔지만 달러 기준으로는 내려갔다. 일본의 수출이 어떤 상황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 아베 정권 입장에서 수출을 늘리기 위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이다.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980년대 말에는 10%가 넘었는데 계속 떨어져 지난해 3.4%까지 내려왔다. 일본은 지난 30년 동안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방법은 물론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경제를 유지하는 마약성 처방, 또 다른 변칙까지 모두 시도해 봤다. 하지만 이제는 그 구조가 지속불가능한 상태까지 왔다. 돈을 찍어내서 그대로 국민들에게 나눠만 줘도 그만큼 소득이 증가하는데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만큼 경제의 효율성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 소위 '가마우지 경제'라고 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분업 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실제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변화가 생겼다. 과거의 분업구조는 우리나라의 수출이 증가하면 일본도 같이 증가하고 일본의 수출이 증가하면 우리는 수입도 늘지만 수출도 늘어나는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의존성이 많이 약화됐다. 우리나라의 수출액 중 일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정도고 일본으로부터 수입액도 전체의 10% 정도밖에 안된다. 반면 우리나라 시장이 일본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 번째로 높다. 지난해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해 번 돈이 2조6000억엔이다. 일본한테는 우리나라가 고마운 시장이고, 반대로 우리나라의 무역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베트남 보다 낮다. 그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 그런데도 일본은 우리나라에 하는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카드를 들고 나온 셈인데.

"일본이 국내 상황을 돌파할 내적 모멘텀이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일본은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등 외부의 환경을 이용해 왔다. 강화도 조약부터 한국전쟁까지.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만약 군사적 도발이 일어난다면 한국전쟁 때처럼 일본은 한국경제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고 내부의 산업생산을 복구할 수 있다. 한국이 턱밑까지 추격해오고 자기들 내부는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초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남북 경제통합이 이뤄지고, 궁극적으로 통일이 된다면 일본에게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속에서도 잘못하면 우리가 일본과 동등해지거나 일본이 스스로 동북아에서 위상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느끼고 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한국이 더 크기 전에, 또 일본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이 구도를 깨고 싶을 것이다. 과거 구도로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줘 문재인 정권을 바꾸고 싶은 욕구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미카제식으로 단기적으로 승부를 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일을 저질렀다고 본다. 그런데 뜻대로 안되고 있다."


"일본 소재·부품 아니면 안돼? 무식한 소리"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이희훈

 

- 하지만 국내 기업이 입게 될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액과 우리 반도체 수출액을 단순 비교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을 10% 줄이면 반도체 가격은 올라간다. 지난 2~3년 동안 반도체 수출액이 좋았던 것은 디램 같은 경우 물량이 늘어서가 아니라 가격이 올라서였다. 생산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오르면 삼성전자 반도체를 써야하는 일본 기업들도 타격을 입는다. 삼성전자는 줄어든 생산량을 오른 가격으로 만회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싸움에 있어서는 완제품 부문이 소재 부문보다 유리하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액은 4억 달러밖에 안되고 우리 반도체 수출액이 1000억 달러여서 우리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유아적인 비교다."


-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도 일본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고 주장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자신들의 소재·부품을 한국에 판매 안해도 다른 곳에 팔면 된다고 한다. 그럼 이전에도 한국 말고도 다른 나라에 더 팔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는 더 못팔았나. 더 팔았으면 세계시장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고 수익을 더 많이 낼 수 있었을 텐데. 일본 경제산업성의 입장은 서로 전쟁하는 상황에서 내부 단속을 위한 하나의 레토릭일 뿐이다."


- 그렇다면 일본 소재·부품 기업의 경우 수출액 감소 외에 어떤 피해를 더 볼 수 있나.

"반도체를 비롯해서 국제 분업구조가 복잡한 산업일수록 소재·부품의 경쟁력과 완제품의 경쟁력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소재·부품 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완제품이 고품질이 될수록 소재도 그 수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앞으로 삼성전자와 거래가 끊기면 일본 기업들이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언제든 다시 경제적 보복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국산화나 수입처 다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 조치는 자신들의 산업구조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불안해하는 것이다."


-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영향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대응을 잘 하고 있다고 보나.

"일본이 놓친 게 있다. 반도체가 우리 수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어 공격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여기에 디스플레이 분야의 LG디스플레이까지 이들 3개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그런 외부 충격에 대응능력이 다른 중견·중소기업보다 훨씬 크다. 일본은 급소를 노렸다고 하지만, 역으로 내가 볼 때는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산업과 기업을 건드리면서 성공 가능성이 낮아졌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처음에 굉장히 겁을 먹었다가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하지만 일본의 소재와 부품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식한 소리다. 제가 산업구조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선진국의 경우 제품의 개념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제조과정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생산을 해외에 외주화 하는 것은 못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부품 소재 기술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에서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제조업의 경우, 예를 들어 똑같은 자동차를 생산하더라도 공정과정이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는 부품과 소재의 차이에서 올 수 있다. 부품과 소재가 바뀌면 공정과정을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데, 수십 년 써오던 것을 바꾸려니 짜증나고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해가 좀 있더라고 공정과정을 바꿔야 한다. 이게 일단 바뀌면 일본의 소재·부품이 외면 받을 수도 있다."


-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영향을 받을 품목이 1000여개라고 하는데 이들 품목은 국산화하거나 다른 해외 기업의 제품으로 대체 가능한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일본이 '중요도 1위부터 3위까지 급소를 찔렀다'고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 3개의 경우도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중요도가 더 떨어지는 나머지도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 많이 의존하는 게 정밀화학과 정밀기계 분야인데, 이 분야는 유럽과 미국도 굉장히 발달해 있다. 선진국의 경우 현재 나와 있는 제품을 제조하는 과학기술은 모두 확보하고 있다. 다만 걱정은 중소기업들이다. 대체재를 찾는 능력이 대기업보다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정부가 세심하게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환경 규제 완화? 아무리 급해도 사람 목숨 위태롭게 해선 안돼"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 이희훈


- 그런데 일부에서는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론이 나온다. 너무 과장됐다고 볼 수 있나?

"일본의 조치는 수출을 아예 금지하는 게 아니라 절차를 까다롭게 하겠다는 것 아닌가. 우리 기업들에게 불편을 줘 괴롭히겠다는 의도인데,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피해를 입게 되면 아베 정부는 내부 비판 때문에 보복 조치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 일본 기업들이 매출 감소 우려를 일본 정부에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정부도 각종 사회·환경·노동 분야의 규제 완화를 대책으로 내놓고 있는데.

"일본의 경제 보복에 격앙돼 애국주의와 국가주의가 발호하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정부 정책 방향이 잘못될 수 있다는 우려는 타당하다. 다만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 DNA(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아베나 트럼프처럼 극우적으로 가기 어렵다. 일부 관료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다고 안전과 환경 부분의 후퇴를 언급하고 있는데 아무리 급하더라도 사람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다. 꼭 필요한 환경과 노동 관련 규제는 느슨해져서는 안된다.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과거처럼 재벌 총수들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고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몰아서도 안되다. 만약 그런 움직임이 구체화 되면 정치권의 진보 진영과 시민사회 진영에서 견제를 해야 한다."


- 국산화를 추진한다며 결국 대기업을 중심으로 소재·부품 중소기업의 수직계열화가 더 강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이번 경제 위기 과정 속에서 근본적인 하나의 큰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게 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라는 외부 충격이 없었다면 변화가 시작되기 어려웠을 텐데 좋은 기회가 왔다. 과거의 재벌중심 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만 우리가 지금 지불하고 있는 값비싼 비용이 의미가 있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 체제가 더 강화된다면 산업 생태계 재구축을 성공시키기도 힘들고 국론도 분열될 것이다. 다행이 우리 사회의 비판적인 역량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뛰어나다. 문재인 정부가 그런 우려에 대해서 알고 있고 정책 추진에 반영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 일본의 경제 보복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도 한층 더 격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게 상당히 힘든 조건인데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금융위기 이후에 수십 년간 지속되던 세계 질서가 와해되면서 새로운 협력적인 국제질서가 들어서야 하는데 그게 만들어지기 전 과도기 상황에서 혼란이 생기고 있다. 나라마다 소득불평등이 더 악화되면서 내수가 취약해지다 보니 선진국들조차 수출로 만회하려고 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거엔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했던 불확실성이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올 수 있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다. 이제는 국가정책을 운영하는 데 있어 불확실성을 상수로 포함시켜야 한다. 때문에 새로운 위기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를 통해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여러 종류의 위기를 가정하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하나씩 만들어 놓아야 한다. 각 부처 차원에서는 할 수 없고 결국 청와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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