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0814223607666


"한국 가서 사죄해야 한다" 日할머니의 '마지막 여행'

김태균 입력 2019.08.14. 22:36 


1928년 함흥서 태어난 에다 할머니

올 3·1절 100주년 서대문형무소 방문 

“고통받고 죽어 간 곳” 휠체어서 내려 

소녀상 만난 뒤 귀국 10일 만에 별세


에다 유타카 할머니가 지난 3월 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찾아 소녀상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 할머니는 이날 오후 비행기편으로 일본에 돌아갔고, 10일 후인 14일 세상을 떠났다.에다 다쿠오 제공

에다 유타카 할머니가 지난 3월 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찾아 소녀상의 손을 어루만지고 있다. 할머니는 이날 오후 비행기편으로 일본에 돌아갔고, 10일 후인 14일 세상을 떠났다.에다 다쿠오 제공


한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 앞에 일본은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고 늘 말해 온 일본 할머니가 올 3·1절 100주년을 맞아 ‘생애 마지막 여행’을 서울에서 한 뒤 조용히 눈을 감은 사실이 알려졌다. 최후의 여행에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의 만남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화장한 뒤 어릴 적 살던 북한 압록강변에 산골(散骨)해 달라고 유언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거주해 온 에다 유타카 할머니. 192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일본 군인의 딸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취학 직전 일본에 돌아갔던 에다 할머니는 올해 3·1절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뒤 10일 만에 세상을 떴다.


14일 장남 에다 다쿠오(64)에 따르면 할머니는 올해 3·1절을 앞두고 아들에게 “죽기 전에 나를 한국에 꼭 좀 데려가 달라”고 생의 마지막 부탁을 했다. 연로해지면서 심장병, 폐렴에 한랭응집소증이란 희귀병까지 나타난 90대 어르신을 모시고 비행기를 타는 게 겁이 났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할머니는 어릴 적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임종 때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순남이’라는 조선인 식모가 나를 정말 예뻐해 주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순남이를 얼마나 괴롭히셨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남북이 통일되면 꼭 순남이랑 살던 동네에 가서 용서를 빌려고 했지.”


할머니는 평소 1919년 3·1운동이 같은 해 중국 5·4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독립운동의 뿌리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었다. 한반도에 대한 애착에 더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결과였다. 졸업 후 할머니는 일본 민속학의 태두인 미야모토 쓰네이치의 밑에서 민중생활사를 연구했다.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단체 일본의전쟁책임자료센터 회원으로도 꾸준히 활동했다. 이 단체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조사자료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고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 등을 펴낸 곳이다. 그러면서 야간고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일본의 조선 침략을 알리고 전쟁의 참화를 일깨우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할머니는 지난해 3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뉜 것은 일본 때문”이라는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지난 2월 28일 휠체어를 타고 서울에 온 할머니는 3월 1일 광화문 기념행사에서 온 힘으로 태극기를 흔들었고, 2일에는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남북 통일을 기원했다. 경건한 마음가짐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3일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 할머니는 갑자기 휠체어에서 내리게 해 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간 이곳을 내가 앉아 갈 수는 없다”며 몸을 세웠다.


한국에서 마지막 날인 4일 할머니는 위안부 소녀상 앞에 데려다 달라고 청했고, 비슷한 또래였을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귀국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바람을 다 이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할머니는 도착 사흘째인 6일부터 병상에 누웠고, 14일 운명했다.


장남은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최후의 말은 ‘반자이’(‘만세’의 일본 발음)였다”면서 “마지막으로 3·1운동의 외침을 머릿속에 간직하며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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