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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2000년 전 백제인의 발자국

이기환 | 문화·스포츠에디터  입력 : 2011-08-17 19:34:30ㅣ수정 : 2011-08-25 11:06:34


1999년 8월 어느 날. 국립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은 풍납토성 성벽을 잘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다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뻘층에 남긴 발자국이었다. 마치 양생 중인 콘크리트에 실수로 발자국을 찍은 것과 같다. 풍납토성은 한성백제(BC 18~AD 475) 왕성으로 지목되고 있다. 백제 시조 온조왕(재위 BC 18~AD 27)은 BC 6년 이곳에 도읍을 정했다. 


백제는 AD 200년 무렵까지 최소한 2차례에 걸쳐 성을 쌓았다. 고고학자들은 성의 축조에 연인원 450만명을 동원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흙으로 쌓았지만 송곳으로 찔러도 끄떡없는 판축토성이었다. 진흙·모래·나뭇잎·나무껍질을 겹겹이 뻘흙과 함께 다졌다. 이곳이 바로 발자국이 확인된 뻘층이다. 당대 첨단기술이었던 부엽공법(敷葉工法)은 훗날 일본 규슈와 오사카로 수출됐다. 그렇다면 발자국은 당대 최고의 토목기술자가 남긴 것이었을까. 과연 그럴까. 


어쭙잖은 지도자가 왕위에 오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폼’ 잡는 것이다. 진나라 2세 황제(BC 210~BC 207)가 아방궁과 만리장성을 완성하려 했다. 그러자 “제발 그만하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황제가 쏘아댔다.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은 내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헛소리냐.”(<사기> ‘진시황본기’) 


<사기(史記)>는 “사람의 머리로 짐승의 소리를 내뱉는다(人頭畜鳴)”고 장탄식했다. 결국 진나라는 대륙을 통일한 지 15년 만에 붕괴된다. 징집령을 받아 끌려가던 진섭(陳涉)이 반란을 일으키자 스르르 무너진 것이다. 신라 문무왕(661~681)도 성을 새롭게 쌓으려는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하지만 의상대사의 한마디에 뜻을 접었다.


“들판의 띠집에 살아도 바른 도를 행하면 복된 왕업이 영원히 계속됩니다.”


물론 백제의 창업주 온조왕에게는 도성을 건설하는 원칙이 있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게(儉而不陋 華而不侈)”(<삼국사기>)였다.


하지만 노역에 시달려온 백성 입장에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터. AD 23년에는 백제의 15살 이상인 동북쪽 백성들이 도성의 보수를 위해 징발됐다. 혹여 이분들 가운데 발자국의 주인공이 있지 않을까.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그리다 아차 실수로 발도장을 찍어놓은…. 그리고는 남이 볼세라 잽싸게 덮어버린 바로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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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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