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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유산] 전쟁터의 현악기 '월평산성 양이두'

2014-05-22 22면기사 편집 2014-05-22 06:12:11

음악에는 마력이 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극심한 고통마저 잊게 해주며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이들의 마음속에 희망의 싹을 틔워주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던 시절에는 늘 그러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음악 관련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악보는 말할 것도 없고 악기 또한 드물다. 


백제의 악기는 더욱 오리무중이다. 패망한 나라였기 때문인지 악기의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 데다가 실물 자료 역시 거의 없다. 필자가 발굴에 참여한 대전 월평산성 출토 양이두(羊耳頭)가 백제 유일의 악기 실물이다. 사실 이 유물을 발굴할 때만 해도 그것이 현악기의 부품인지 알지 못했다. 깊고 넓은 지하창고 바닥에서 나무로 만든 밥주걱, 말안장, 말목다발 등이 다량으로 검출되었는데 양이두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문지식이 부족하였던 필자는 그것을 건축부재로 오인했다. 그래도 박물관 연구실로 옮긴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이후 수조에 담겨진 채 몇 년의 세월을 보낸 양이두를 보존과학자들이 정리하던 도중 악기 편임을 밝혀냈다. 하마터면 백제 유일의 악기가 사라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연구자들은 월평산성 현악기가 6현의 거문고, 12현의 가야금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백제 8현금이라 이름 붙였다. 


그런데 양이두가 쓰였던 시기의 월평산성은 신라와 일진일퇴를 벌이던 백제의 최전방 거점이었다. 전쟁터와 현악기란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아 보인다. 죽음의 공포가 상존하는 공간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며 한가로이 음악을 들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현악기를 백제군 지휘관이 직접 연주하던 것인지, 혹은 연회를 베풀 때 악공(樂工)이 가져온 것인지 알 길은 없다. 후자라면 산성에 남아 있기 어려웠을 것이고 전자라면 예술을 아는 멋진 지휘관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아마 막사 밖 병사들도 자연스럽게 현악기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떠올린 것은 전쟁에서의 큰 성과보다는 평화와 안식이었을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우리들도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글귀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몸과 마음을 음악에 맡겨 보면 어떨까.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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