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34806
한민족은 '백의민족'? 원조는 따로 있습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특집 '한국 고대사의 속속들이', 열다섯 번째 이야기
11.03.11 11:19 l 최종 업데이트 11.03.11 11:19 l 김종성(qqqkim2000)
▲ 흰옷을 입은 사람들. 조선 후기 김홍도의 작품인 <주막>. ⓒ 김홍도
한민족은 백의민족이라고 한다. 요즘엔 조금만 엄숙한 표정을 짓고 위아래 흰옷을 걸치고 있으면 "누가 돌아가셨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미쳤다"는 수군거림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한민족은 백의민족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흰옷을 즐겨 입었다.
일본제국주의가 반강제적으로 백의 착용을 금지하다 보니,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흰옷 착용이 항일의 상징으로까지 인식되었다. 현대 한국인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즐겨 입으면서도 백의민족 타이틀에 애착을 갖는 것은 흰옷에 담긴 근현대사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한민족이 백의민족이라는 점은 한민족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 민족들도 느낀 것이었다. 1940년과 1941년에 조선총독부 초청으로 2차례 조선을 여행한 일본 여성작가 사타 이네코가 남긴 <조선 인상기>에서 그런 느낌을 접할 수 있다.
생전 처음 해외여행에 나선 사타 이네코는 1940년 6월 16일 오후 11시 동경역(도쿄역)을 출발하여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타고 부산을 상륙한 뒤 18일 오후 1시 45분 경성역(서울역)에 도착했다. 경성역에 첫 발을 내디딜 때 그는 '조선다운 것'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경성 풍경은 일본의 여느 도시 풍경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가 '조선다운 것'을 느낀 것은 남산에 가서였다. 조선신궁에 참배하기 위해 남산 앞에 도착한 그는 돌계단을 오르고 있는 하얀 옷의 조선 부인을 보고서야 그제야 '아! 조선에 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인들의 눈에도 한민족은 흰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부여 고위층이 해외여행 때 입은 흰원숭이털 옷
▲ 김홍도의 <행상>. ⓒ 김홍도
그런데 한민족은 왜 흰옷을 즐겨 입게 되었을까? 태양숭배 신앙 때문에 광명의 상징인 흰 빛을 숭상하다 보니 흰옷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다소 막연한 분석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존하는 문헌 사료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게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공인된 문헌 사료 중에서 고대 한민족의 흰옷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삼국지> '동이전'을 들 수 있다. '동이전' 부여 편에서는 부여 사람들의 백의 숭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라에서는 옷을 입을 때 흰색을 숭상하여, 흰색 포목으로 만든 통 큰 소매의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
백색을 숭상한 부여인들이 흰 도포와 흰 바지를 즐겨 입었다는 기록이다. 이 외에도, '동이전'에는 부여 고위층이 해외여행 때 입는 의복 중에 흰 원숭이 털로 만든 옷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이전'에서는 부여인들이 왜 흰옷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부여의 역법(달력 계산)은 중국 은나라를 따른 것이고 부여의 형사취수(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풍습)는 흉노족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부여의 백의 숭상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은나라 사람들이 흰옷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과 부여의 연관성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민족보다 훨씬 더 흰색을 숭상한 민족
흥미롭게도, 우리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한민족보다 훨씬 더 흰색을 숭상하는 민족을 발견할 수 있다. 마르코 폴로가 타타르라고 부른 몽골민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타타르의 신년 축제(설날 축제)를 묘사하면서 그들의 백의 숭상에 대해 아주 상세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마르코 폴로가 동아시아를 여행한 것은 13세기이지만 그가 목격한 풍습은 이미 그 이전부터 몽골민족에게 존재했던 것이므로 그의 기록은 몽골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는 몽골제국(원나라)에서 벌이진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카칸(황제)과 그의 백성들은 남자든 여자든 능력만 있으면 모두 흰옷을 입는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흰옷이 그들에게 행운과 축복을 갖다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1월 1일에 그것을 입음으로써 1년 내내 축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몽골민족은 신년 축제 때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급적 흰옷을 차려 입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흰옷을 입어야만 1년 내내 행운과 축복을 입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마르코 폴로는 말했다.
▲ 내몽골 시라무런 초원의 풍경. ⓒ 김종성
몽골민족은 단순히 흰옷만 입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카칸에게 바치는 선물에는 유독 흰색이 많았다. 마르코 폴로의 감탄은 계속된다.
"이날 그에게 속한 모든 백성과 지방·지역·왕국들은 금, 은, 진주, 귀금속, 흰색의 고급 천으로 만든 수많은 값진 선물을 그에게 바친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군주가 1년 내내 풍부한 재물을 갖고 그와 더불어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바로 이 날 10만 마리 이상의 매우 아름답고 훌륭한 백마들이 카칸에게 바쳐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몽골인들은 카칸의 부와 기쁨과 행복을 위해 흰색 직물로 만든 선물과 함께 10만 마리 이상의 백마를 카칸에게 바쳤다. 몽골제국 수도 캄발룩(대도, 지금의 북경 일부+약간 위쪽)을 향해 전국 각지에서 배송되는 흰색 직물제품과 백마 10만 마리의 행렬을 보면서 마르코 폴로는 '백의민족'이란 단어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가 고려까지 가보았다면, 어땠을까
신년 축제 때 주고받는 흰색 선물은 아래(백성들)서 위(카칸)로만 이동한 게 아니었다. 그것은 옆에서 옆으로, 즉 백성 상호 간에도 이동했다.
"또 여러분에게 말한다. 신하와 전사들과 모든 백성들은 서로 흰 것을 주고받고 서로 껴안으며 기쁨으로 잔치를 벌인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1년 내내 행복하고 행운을 갖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울 명동에 모인 사람들이 온통 흰옷을 입고 흰 보자기를 주고받는다면, 이를 지켜본 외국인들은 감탄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디카를 찰칵이는 소리가 쉬지 않을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받은 감동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누가 보더라도 '몽골민족은 백색을 숭상하는 민족'이란 이미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몽골인들은 정월을 가리켜 차간 사라(흰색의 달)라 했으니, 그들의 문화에 스미어 있는 백색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범위는 사실상 유라시아대륙을 거의 망라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의 여행 루트는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쪽으로는 항주(항저우, 중국 동해안)까지 닿았다. 그런 그가 몽골민족의 백색 숭상에 감탄했다는 것은, 몽골인들의 흰색 사랑이 유라시아대륙의 그 어느 민족보다도 유별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흰색 숭상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면, 그처럼 상세하게 몽골민족의 흰색 사랑을 소개했을 리가 없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남긴 것은 동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서양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보거나 들은 것 중에서 가장 이색적이고 진귀한 정보를 책에 남기려 했을 것이다. 그는 동방에서 흰색을 가장 사랑하는 민족이 타타르라고 생각했기에 그 점을 서술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었던 것이다.
만약 마르코 폴로가 좀 더 동쪽으로 가서 카울리(고려)란 곳까지 가보았다면, 그는 카울리 사람들과 타타르 사람들의 유사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마르코 폴로는 오늘날의 북경까지만 오고 더 이상 동쪽으로 오지는 않았다.
동아시아 민족이동의 출발점, 몽골초원
▲ 마르코 폴로의 초상화. ⓒ 작자 미상
몽골초원의 흰색 숭상이 한민족의 흰색 숭상으로 연결되었다고 100%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대 한민족의 형성과정을 고려할 때, 우리는 몽골초원의 풍습이 한민족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고대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외래민족은 '하늘' 즉 북방 출신의 이주민 세력이다. 신화 속의 '하늘'이 주로 몽골초원이나 초원 부근의 산림지대라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민족이동 경로를 보더라도, 몽골초원은 동아시아 민족이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몽골초원 주변의 산림지대에 살던 종족들이 정세변화를 틈타 몽골초원에 진입한 뒤 다시 상황을 보아 농경지대로 진출하는 것이 동아시아 민족이동의 일반적인 루트였다. 이 점은 몽골초원과 그 인근이 동아시아 민족이동의 출발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몽골초원의 흰색 숭상이 종족의 이동과 함께 만주·한반도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민족과 몽골민족 사이에 혈통·역사·언어상의 관련성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런 추론에 무게를 실어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한국사 >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유전 한국사 여행 (18) 부산 영도 동삼동패총 유적 上 - 경향 (0) | 2019.10.14 |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3) 중국 조상 ‘진뉴산인 기원설’ - 경향 (0) | 2019.10.14 |
[단독]폭삭 무너진 국가민속문화재… 감리도, 시공업체 대리인도 없이 인부가 공사 - 경향 (0) | 2019.08.17 |
"조선왕이 선물"..국내 없는 궁중장식품 '반화' 프랑스서 확인 - 연합 (0) | 2019.08.15 |
[단독]삼국유사 16년간 숨긴 장물아비 실형 - 경향 (0) | 2019.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