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7966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9594 (한시성 - 민족문화대백과)

* 한시성 내용과 겹치므로 아래 가져왔습니다. 
      

마읍성(馬邑城)

2016년 이상훈(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북한 평양직할시 마읍산(馬邑山)에 비정되는 삼국시대 의 성곽.


661년 당군이 마읍산(馬邑山)을 점령하고 난 후 평양성을 포위한 점과 672년 평양에 주둔하던 당군이 마읍성(馬邑城)을 공격한 후 황해도로 남하한 점을 통해 볼 때, 마읍성은 평양 서남쪽의 마읍산에 위치한 성으로 추정된다.


661년 당의 장수 소정방이 패강(浿江)을 거슬러 올라와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마읍산을 탈취한 후 평양을 포위하였다. 마읍산(성)은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동강 북안의 장소로 추정되고 있어, 한시성도 평양 서남쪽에 위치한 성곽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국역 삼국사기 (이병도, 을유문화사, 1986)





한시성(韓始城)

이상훈(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한국고대사) 2017년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672년 8월 당군은 한시성과 마읍성(馬邑城)을 점령하였다. 한시성의 구체적인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한시성과 함께 등장하는 마읍성은 마읍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당서(新唐書)』 고려전에 따르면, 661년 당의 장수 소정방이 패강(浿江)을 거슬러 올라와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마읍산을 탈취한 후 평양을 포위하였다. 마읍산(성)은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동강 북안의 장소로 추정되고 있어, 한시성도 평양 서남쪽에 위치한 성곽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당군은 671년 무렵 평양에 주둔하고 있다가 672년 8월부터 공세를 시작하여, 한시성과 마읍성을 점령한 후 남하하여 신라군과 대치하였다. 이후 신라는 석문(石門) 전투에서 당군에게 크게 패하고 만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당서(新唐書)

국역 삼국사기 (이병도, 을유문화사, 1996)

「新羅と小高句麗國」(村上四男,『朝鮮學報』 37·38,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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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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