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66081
내시와 궁녀들 집단무덤, 이렇게 방치되다니...
[공모-20대 청춘! 기자상] 1700여개 묘역, 문화자원으로 육성해야
14.12.26 11:51 l 최종 업데이트 14.12.26 11:51 l 어고은(akoeun)
▲ 이말산 지도 이말산 입구에 있는 지도 ⓒ 어고은
서울 은평뉴타운에 거주하는 임성순(67)씨는 매일 이말산(莉茉山)에 오른다. 오를 때마다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여기저기 방치된 묘역들이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근무하다 올 2월에 퇴임한 임씨는 묘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비석들을 일일이 들여다본다. 그런데 묘표가 없는 것들도 많아서 묻힌 자의 이름이나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길이 없어 아쉽다."
내시·궁녀 분묘 등 1700여개 묘역 분포
▲ 임상궁 묘역 조선 현종의 유모였던 임상궁(林尙宮)의 묘터가 남아 있지만 봉분은 오래 전에 도굴당해 없어진 상태. ⓒ 서울시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이말산 98만3천㎡ 일대에는 내시와 궁녀 분묘를 비롯해 조선시대 다양한 계층의 분묘가 분포돼 있다. 서울시가 2010년에 실시한 지표조사에 따르면, 이말산엔 1746기의 분묘와 1488기의 석물이 있다. 조선시대엔 '성저십리'라고 해서 도성에서 십리 거리까지는 묘를 쓸 수 없었는데, 이말산 일대가 성저십리 바로 바깥쪽이다. 조선시대 분묘들이 많은 이유다.
내시 묘는 선조 때 호종공신 김새신 묘를 포함해 총 4기가, 궁녀 묘는 현종의 보모상궁인 임상궁의 묘 등 총 3기가 있다. 은평향토사학회 박상진 회장은 "내시, 궁녀 묘는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어서 궁중 문화사 연구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내시의 묘가 남아있는 곳은 서울 도봉구 초안산과 쌍문동, 강남구 신사동, 경기도 고양과 남양주, 양주, 용인, 경북 청도 등 극히 소수다. 이마저도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 내시의 양자로 이어진 후손들은 선조가 내시라는 점을 부끄럽게 여겨 없애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2년 북한산 의상봉에 있던 45기의 내시 묘역이 파헤쳐졌다. 후손들이 한 조경업자에게 4억8000만 원을 받고 땅을 넘겼다.
궁녀 묘역은 우리나라에서 10기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궁녀들은 나이가 많거나 중병에 걸려 궁녀로서 업무 수행을 하기 어려운 경우엔 궁녀 직을 파했다. 이들은 출궁 후 승려가 돼 사찰에서 여생을 보내다 화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말산 분묘들의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 21일과 22일, 이틀간 이말산 일대를 방문했다. 서울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이말산이 보인다. 반대편엔 은평뉴타운 단독주택용지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685m를 걸으면 배드민턴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기점으로 오른편에는 청주한씨, 임천백씨, 임실이씨, 여흥민씨 등이 왼편에는 영천이씨, 칠원윤씨, 우봉김씨 등 사대부 가문의 분묘를 발견할 수 있다.
▲ 영천이씨 가묘역 이말산에 위치해 있는 대표적 사대부 계층의 분묘 ⓒ 어고은
배드민턴장을 지나 더 올라가면 등산로 우측 길에 내시와 궁녀 묘역이 보인다. 내시로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상선에 오른 노윤천과 현종의 보모로 활동한 임상궁의 묘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접근이 쉽지 않았다. 경사가 다소 가파른 데다 눈이 내린 곳이 얼어 미끄러웠다.
노윤천과 임상궁의 묘는 봉분의 형태가 사라져 있었고, 안내판이 없어 누구의 묘인지 알기 어려웠다. 한자로 묘표가 세워져있을 뿐이다. 쓰러진 채로 훼손된 석물들도 다수였다. 운동하러 매일 산에 방문한다는 박찬구(76)씨는 "표식이 없어 관심이 가지 않는다. 안내판이라도 만들어서 사람들이 보기 좋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은평구 정비계획, 현상유지 급급
▲ 박원순 서울시장 시정일기 이말산의 방치된 묘역들을 언급하며 오픈 뮤지엄 설치, 관광자원화 등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 어고은
은평구는 2010년 '이말산 조선시대 분묘군 종합정비 기본계획 학술연구용역'을 수립했으나 후속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12년까지 35기의 내시 묘역이 멸실됐다. 은평구청 문화관광과 박병용 주임에 따르면 "이말산 내 묘역 정비를 내년 3월까지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비계획은 "쓰러진 석물을 세우고 안내표지를 마련"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월 19일, 시민들과 소통 창구로 알려진 '원순씨 희망일기'에서 이말산을 언급했다. 박 시장은 "무덤과 석물들이 방치돼 충격을 받았다"며 "문화 관련 부서 책임자들과 오픈 뮤지엄 설치, 관광자원화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역사문화재과 관계자에게 구체적인 정비 방향에 대해 묻자 "분묘 소유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한옥마을 공사부지 옆에 위치한 박물관. 10월에 개관했다. ⓒ 어고은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은평뉴타운 지구에서 발굴한 석물들 ⓒ 어고은
묘역 관리에 소홀한 모습을 보인 은평구는 진관동 일대에 최대 규모의 한옥마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18일 기자 간담회에서 은평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진관동 일대를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문화관광지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한옥마을 부지 부근엔 10월 문을 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6만5500㎡에 달하는 부지에 한옥 5~6채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공사 현장의 모습이 황량하게 보였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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