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투사, 음유시인으로 돌아오다
등록 : 2012.02.01 18:16수정 : 2012.02.01 18:16
2009년 데뷔 30주년 공연을 앞둔 박은옥·정태춘씨.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정태춘·박은옥 10년만의 새앨범
강·바다 이미지에 시적 영감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은 여전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사진)를 발표했다. 2002년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발표하고 “더이상 노래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꼭 10년 만이다.
1978년 데뷔한 정태춘은 80년대 중반 이후 ‘거리의 가수’를 자처했다. 노동현장을 누비고, 음반 사전검열 철폐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으며, 고향 대추리에 미군기지가 들어서는 걸 반대하며 노래했다. 하지만 새 앨범에서 ‘투사’의 날선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은유와 상징, 우화가 그득한 한권의 시집이라 할 만한 앨범이 됐다. 정태춘의 데뷔 앨범 제목이 <시인의 마을>이었음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시인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들이 많다. 2010년 가을 지리산의 이원규 시인 집에 갔다가 ‘강이 그리워’를 썼고, 그 이웃에 사는 박남준 시인을 만나 ‘섬진강 박 시인’(이 노래는 구수한 트로트 곡이다!)을 만들었다. 그해 비 뿌리던 초겨울 저녁, 부부를 울산 울주 반구대로 데려간 백무산 시인을 생각하며 ‘저녁 숲 고래여’를 썼다.
사진가와 소설가에게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박은옥이 노래한 ‘꿈꾸는 여행자’는 김홍희 작가 사진전에 갔다가 황량한 몽골사막 풍경을 보고 정태춘이 만들었다. 강산에·김씨(C)·윤도현이 코러스로 참여한 월드뮤직풍의 대곡 ‘날자, 오리배…’는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 <아, 하세요 펠리컨>을 읽고 썼다. 정태춘은 앨범 후기에서 “오늘도 이 지구 위를 떠도는 세계의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쓴 곡이라고 밝혔다.
수록곡 대부분이 강과 바다 등 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정태춘은 ‘북한강에서’, ‘떠나가는 배’, ‘수진리의 강’ 등 유독 물에 대한 노래를 많이 써왔다. 그에게 강은 두 발을 딛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자 이상향인 바다로 향하는 길이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이 땅의 젖줄기에 생채기를 내는 요즘, 강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앨범 문을 여는 첫 곡 ‘서울역 이씨’는 8곡의 신곡 중 유일하게 2010년이 아니라 2005년에 쓴 곡이다. 서울역 노숙자 추모제에서 부르려고 만든 노래로, 그의 시선이 여전히 낮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앨범 후기에서 유독 곡의 배경을 말줄임표로 대신한 ‘눈먼 사내의 화원’은 중국 전통악기 얼후의 애절한 울음으로 시작한다. 곡이 쓰여지기 석달 전 부엉이 바위로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노래가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다.
앨범 마지막을 ‘92년 장마, 종로에서’로 맺음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1992년 발표한 8집 타이틀곡을 부부가 다시 불렀다.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라는 노랫말은, 예전 노래를 모르는 이가 들으면 신곡으로 착각할 정도로 오늘날과 판박이처럼 들어맞는다. 정태춘은 앨범 후기에서 “지금 이 땅의 순정한 진보 활동가들과 젊은 이상주의자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녹음했다”고 밝혔다. 부부는 3월6~11일 서울 케이티앤지 상상아트홀에서 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한다. (02)3485-8700.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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