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루트를 찾아서](4) 동이의 본향, 차하이
입력 : 2007-10-26 15:01:55

마을중심에 용 돌무더기 ‘그렇다면…’ 

다링허 상류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차하이 유적에서 확인된 돌무더기 용의 형상이다.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에서 발견됐으며, 용 신앙의 시원으로 평가된다. <차하이/김문석기자>


7월27일 오전 7시.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탐사단이었지만 이날은 야릇한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30년간 발해문명권을 연구해온 이형구 선문대 교수도 똑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선양을 출발하여 8000년 유적인 차하이(査海·사해)~싱룽와(興隆窪·흥륭와) 탐사에 나서는 길.

중국인들이 ‘중화 제1촌(차하이)’, ‘화하(華夏) 제1촌(싱룽와)’이라 하여 중국 시조의 마을로 떠받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 두 곳은 발해문명. 즉 우리 민족뿐 아니라 중국·일본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명의 젖줄이 된 발해문명의 여명을 열어젖힌 곳이 아닌가.

‘중화 제1촌’은 ‘동이 제1촌’

용 혹은 뱀이 두꺼비를 삼키는 모습을 새긴 빗살무늬 토기(위)와 용을 새긴 토기편. 모두 차하이에서 발견됐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화 제1촌’이나 ‘화하 제1촌’이 아니라 ‘동이(東夷) 제1촌’쯤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탐사단은 ‘동이의 본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형구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교수는 자못 감회가 깊은 듯했다.

“발해문명을 연구한 지 30년이 됐는데, 경향신문이 바로 그 연구의 마침표를 찍게 해주었네요.”

그러면서 발해문명에 대한 열강을 펼쳐나갔다. 발해를 지중해의 개념으로 보면 어떨까.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집트·로마문명이 일어나 서양문명의 요람이 되었듯 발해가 동양문명의 새벽을 활짝 열었다는 요지의 강연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열강이 끝나자 ‘고구려 해양사’가 전공인 윤명철 동국대 교수도 이른바 해륙문화론에 대한 지론을 개진했다. 그랬다. 탐사단이 지금 찾아가는 곳은 동이족이 창조한 발해문명의 불씨를 더듬어 가는 여정인 것이다.

설렘에 3시간50분을 훌쩍 달려간 곳은 바로 랴오닝성 푸신(阜新)시에서 동북으로 20㎞ 떨어진 사라샹(沙拉鄕) 마을이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차하이’ 유적으로 빠지는 길엔 ‘차하이 마을, 방문 환영’이란 철제 아치가 눈에 띈다.

그러나 정작 ‘환영’ 아치를 걸었지만 버스의 키보다 30㎝나 낮으니 ‘환영’을 하는 건지 ‘문전박대’를 하는 건지 원…. 차하이 유적까지는 4㎞나 남았다는데, 기자는 ‘이참에 걸으면 어떠냐’고는 했지만 남은 일정을 소화하려면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길이다.

S라인 여신

방법을 찾고자 고민하면서 입구 오른쪽에 서있는 여신상을 보러 갔다. ‘중화 제1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대한 여신상이다. 여신상 앞엔 귀여운 나귀 두 마리가 하릴없이 노닐고 있는데, 사진 및 비디오 촬영에 그럴 듯한 모델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여신은 전지현·이효리도 부럽지 않을 완벽한 S라인을 자랑하고 있다.

 
‘중화 제1촌’을 상징하는 여신상. 옥귀고리와 빗살무늬 토기, 용을 함께 만들었다.

이른바 중화 제1촌, 즉 차하이 문화를 이끌었던 여인이 100% 서양의 여신을 빼닮았다니…. 실소를 금치 못하며 그 자태를 유심히 살펴보니 무척 재미 있다. 여신이 두 손을 모아 높이 받쳐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봤더니 옥결(玉결·옥으로 만든 귀고리)이었다. 여신 바로 곁을 보니 거기엔 빗살무늬 토기가 있었다. 그런 다음 좀 민망한 곳, 즉 허리 아래에서 허벅지까지 무슨 문양이 있는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니 용이 휘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차하이 유적에서 발견된 ‘빅3’ 유구와 유물, 즉 용과 옥,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갑시다.”

한참 ‘여신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저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린다. 인근 마을에서 오토바이와 ‘딸딸이’를 빌렸다는 것이다. 옥수수밭, 땅콩밭 사이로 시원스레 달려가는 길. 이제 정말 8000년 전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10여분간 달렸을까. 차하이 박물관이 보인다. 꼭 우리네 폐교 같은 남루한 건물에, 관리인들도 농부들 같다. 화장실을 찾으니 직원이 바깥쪽을 가리킨다.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그냥 들판에서 해결하라는 뜻이다.

마음의 본향

탐사단이 오토바이를 개조한 ‘딸딸이’로 차하이 유적에 들어가고 있다.

내심 실망감이 고였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해서 ‘중화 제1촌’이라 해놓고 이렇게밖에 꾸미지 못하나. 박물관 전시실을 둘러본 뒤 차하이 유적을 찾았다. 발굴이 끝난 지 오래된 탓인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발굴했던 곳엔 수풀이 무성했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속이 다 시원할 정도다. 낮은 구릉지대 위에서 보는 뻥 뚫린 시야…. 이곳은 지리상 상당히 드라마틱한 곳이다. 특히 우리 민족을 비롯한 동이족의 활동무대인 랴오시(遼西)와 랴오둥(遼東)이 이곳을 지나면서 서로 이어져 있다. 이곳은 랴오시의 가장 동쪽 평탄한 구릉지대이며, 랴오시와 랴오둥을 구분하는 이우리산(발巫閭山)이 끝을 이룬다. 서쪽은 다링허(大凌河)와 이어지고, 동쪽은 랴오허 하류로 이어져 발해만으로 연결된다.

북쪽은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동남부 초원과 접해있다. 지금 다링허 상류지역인 이 지역은 메마른 하천이 많다. 하지만 8000년 전 이곳에 마을이 들어섰을 때는 고온 습윤했다고 한다. 발해와 다링허, 랴오허 등 바다와 강이 인간의 삶을 도와주면서 교역로의 구실을 해주고, 원시농경 등 생산활동에 유리한 개활지가 넓은 이곳. 그랬으니 이곳에 ‘중화 제1촌’, 아니, ‘동이의 제1촌’이 탄생한 것이다.

8000년 전의 용(龍)

뻥뻥 뚫린 채 방치된 수풀이 무성한 발굴 흔적 너머로 인공 울타리가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돌무더기를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 보호해놓았다. 차하이 유적에서 가장 그럴 듯하게 보전해놓은 것이다.

“이 기자, 잘 보세요. 이게 용 형상의 돌무더기입니다.”
“저, 여기가 머리, 여기는 갈기, 여기는 발, 여기는 꼬리부분….”

이형구 교수가 돌무더기 형상 주변을 돌며 언뜻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내지 못하는 기자에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해준다. 정말이다. 용 머리와 용 몸 부분의 돌무더기는 두껍고 조밀하게 용을 표현했다. 반면 꼬리부분의 돌무더기는 느슨하게 흩어져 있다. 용은 머리를 쳐들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몸을 뒤틀고 있다.

꼬리는 숨긴 듯 드러나게 해서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느낌이다.

“용의 전체 길이는 19.7m이고, 몸의 폭은 1.9~2m에 달합니다.”

희한한 것은 이 용 형상의 돌무더기가 마을의 중심부에 있다는 점이다. 사방에 60기에 가까운 주거지가 둘러싸여 있고, 용의 머리 앞에는 10여기의 무덤이 있었다. 용 모양의 방향인 215도였는데, 이는 주거지의 건축 방향과 일치한다. 1982년, 랴오닝성 전체에 대한 발굴조사 때 주거지와 함께 이 용 형 돌무더기를 확인했다.


용의 고향은 발해만

발굴자는 깜짝 놀랐지만 처음엔 무척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하이 주거지 유적의 탄소측정 연대는 7500년 전. 그러나 수륜교정 연대(나이테를 분석한 연대)에 따르면 8000년 전까지 올려볼 수 있다. 만약 8000년 전 차하이 마을 사람들이 이미 용을 형상화하고 신성시했다면….

그때까지 알려진 가장 원시적인 형태, 즉 돌로 쌓아 모양을 만들어간 용 형상은 허난성(河南省) 푸양(푸陽)과 후베이성(湖北省) 황메이룽(黃梅龍)이었다. 연대는 6000년 전이다. 그런데 그보다 2000년이나 앞선 8000년 전에 중국 동북쪽, 즉 오랑캐의 소굴이라고 폄훼했던 발해만 연안의 동이지역에서 용이 발견되다니. 이 돌무더기는 과연 인간이 어떤 뜻을 갖고 쌓은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연스러운 돌무더기에 불과한 것인가.

중국학계는 술렁거렸다. 중국 사상의 원형인 용신앙은 과연 중원이 아니라 발해만에서 태어난 것인가. 그러나 종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용신앙의 원천이 차하이 유적임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들이 잇달아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즉 토기 위에 부조로 장식된 용의 문양이었다.

이 용문양 토기편은 역시 차하이 유적의 주거지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편이다. 기자는 랴오닝성 박물관에 전시된 용문양 토기편 2점을 보았다. 하나는 감아도는 용의 몸뚱이이며, 다른 하나는 위로 오르는 용의 꼬리가 맞았다.

“봐요. 몸의 표면에 벌집처럼 빽빽하게 무늬를 그려놓았는데, 마치 용의 비늘 같잖아요. 용을 그릴 때의 기본적인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요.”(이형구 교수)

중국인만 용의 자손?

더욱 재미있는 것은 완형의 원형도관(圓形陶罐) 표면에 선명하게 새겨놓은 두꺼비와 뱀의 형상이다. 이는 뱀이 두꺼비를 입에 물고 삼키는 극적인 장면을 표현했는데, 8000년 전 사람들의 사실적인 표현력을 알 수 있다.

궈다순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것들은 모두 용의 형상을 표현하는 수법이며 강렬한 신비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았다. 궈다순은 더 나아가 “이런 수법은 분명 제사와 관계 있는 것이며, 용 숭배 사상이 8000년 전 차하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차하이 박물관 전시실은 ‘중국 제1용’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설명해놓고 있다.

“차하이는 농업생산 위주의 씨족 부락이었는데, 용은 원시종교와 원시문화의 산물이다. 차하이 사람들은 허무적인 용신앙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킨 사람들이다. 차하이 용은 우리나라(중국) 최초의 용이다. 용은 농경문화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용은 과연 중화민족만이 사랑하고 숭배한 영물인가. 그렇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은 용의 자손이라 했고 용을 신앙으로 추앙했다. 하지만 차하이에서, 그리고 곧 방문할 싱룽와에서 보이는 문화의 양상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차하이|이기환 선임기자〉
〈동영상|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