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문·조선식산은행·노동조합… ‘쌀 수탈’ 한 서린 객주의 흔적들
[광복 70주년 기획 -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건축 기행]
강경 | 글 권순재·사진 권호욱 선임기자 sjkwon@kyunghyang.com  입력 : 2015-01-19 21:41:37ㅣ수정 : 2015-01-19 21:43:26

(3) 충남 강경
첫 신사참배 거부 운동 일어나고 조합 만들어 상인들 이권 보호도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에 끼어 있어 바닷사람과 내륙의 사람들이 강경에 모여 교역이 활발하였다. 봄과 여름 동안은 생선을 잡고 해초를 뜯느라고 비린내가 포구에 넘치고, 5월의 황새기젓과 7월의 새우젓이 풀릴 때는 오륙십 척의 배가 몰려들어 화장들이 내뿜는 연기로 포구의 하늘은 암회색의 바다였다.” 

소설가 김주영이 조선 후기 상인들의 고단했던 삶을 그린 대하소설 <객주>에서 묘사한 충남 강경의 모습이다. 금강 하류에 위치한 강경은 조선 후기 배를 이용해 서해와 중부 내륙을 잇는 수륙 교통의 중심지여서 상인들이 많이 모였다. 이 덕에 강경은 평양, 대구와 함께 3대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천혜의 여건이 일제강점기에는 쌀 수탈의 관문으로 활용되는 이유가 된다. 일제는 1924년 금강과 연결된 하천에 제방을 쌓고 물높이를 조정할 수 있는 근대식 갑문을 설치했다. 갑문은 조석 간만의 차이로 금강의 물높이가 달라지는 영향을 받지 않고 화물의 선적과 하역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일본 상인이 크게 늘었고, 이들은 강경상권을 거머쥐기 시작했다. 현재 강경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식 건축물은 근대사에 새겨진 일제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다. 강경 주민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도 박제돼 있다.


 
강경갑문은 1924년 일제가 선적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든 여닫이 수문시설이다. 현재 수문은 콘크리트로 막아 형태만 보존하고 있다.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일제강점기 강경 지역의 경제가 크게 활성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는 강경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을 품은’ 한일은행 강경지점

한일은행 강경지점(강경읍 서창리 51―1·등록문화재 제324호)은 1913년 강경 중심가에 신축됐다. 한일은행은 당시 강경의 지역경제가 얼마나 부흥했는지를 보여주는 곳으로 지금도 눈에 쉽게 띌 정도로 규모가 크다. 서양 고전 건축양식이 적용된 이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연면적 181.44㎡, 지상 1층 규모로 건물 외관은 반듯한 좌우대칭이다. 육중한 기둥에 두꺼운 화강암으로 장식된 화려한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출입문이 작은 것도 특징이다. 김무길 강경역사문화연구원 연구부장은 “넓은 실내 공간에 비해 출입문이 작았던 이유는 은행 특성상 보안을 강조했기 때문”이라며 “은행에 들어온 돈이 나가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한일은행은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됐다. 한일병합 이후에는 조선식산은행으로 개편됐다. 조선식산은행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일제의 대표적인 수탈기구였다. 상인에게 적은 돈을 대출해준 뒤 교묘한 방법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하도록 해 담보물을 빼앗는 일도 잦았다. 당시 은행 옆 창고에는 젓갈류 등 상인들이 저당 잡힌 현물이 가득했다고 한다. 

조선식산은행은 해방 이후 한일은행으로 바뀌었고, 충청은행, 중앙도서관, 개인 소유 젓갈창고 등으로도 사용됐다. 현재는 논산시가 건물을 매입해 2012년부터 강경역사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강경노동조합은 1920년대 자체 단일조직으로 결성됐으며, 1953년 전국부두노동조합 강경지부연맹 체제로 바뀌었다.

■ 지역상인 ‘권익’ 지켜낸 강경노동조합

강경노동조합(강경읍 염천리 20·등록문화재 제323호)은 1925년 건축됐다. 강경노동조합은 2층 규모의 목조건물이었다. 지붕은 한식으로, 건물과 기둥 등은 일본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관리 소홀로 2층과 1층 일부가 무너졌다. 지금은 1층만 복원된 상태로 강경노동조합 관련 사진 등의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강경노동조합은 배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노동자들과 강경 상인들이 만들었다. 조합원이 많을 때는 3000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들은 일본 상인이 들어와 세력을 불리는 것을 막고, 강경 상인들의 이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건물 외벽에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모양의 환풍구.

■ 신사참배 거부운동 강경중앙초등학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강경읍 중앙리 155·등록문화재 제60호)은 외형이 온전히 보전된 편이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이 건물은 1937년에 건축됐다. 좌우대칭이 정확하면서 단아한 느낌을 준다. 건물 외벽에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旭日旗) 모양의 환풍구를 만든 것도 눈에 띈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국내 최초로 신사참배 거부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1924년 10월11일 김복희 강경소학교(현 강경중앙초등학교) 교사는 62명의 학생과 함께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당시 일제는 천왕을 섬기는 신사를 만든 뒤 참배를 강요했다. 김 교사와 학생들이 시작한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고 일제에 충격을 줬다.


■ 시간이 멈춘 가옥들

강상고등학교(옛 강경정보산업고)에 위치한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강경읍 남교리 1·등록문화재 제322호)는 붉은 벽돌로 쌓은 서양식 건축기법에 기와를 얹은 한옥의 모습이 어우러져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교장들이 사용했던 이 관사는 1931년 지어졌다. 관사의 지붕은 ‘ㅅ’자 형태로 한쪽 면은 경사가 급하고, 다른 면은 위에서 처마 밑으로 내려오는 중간 부분이 좁아지는 일본 전통 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교장 관사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무사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지붕을 이같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연수당한약방(강경읍 중앙리 88―1·등록문화재 제10호)은 지상 2층의 목조건물로 1923년 건축됐다. 1920년대 촬영된 강경시장 전경사진 속 건물 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정현수 강경역사문화연구원장은 “강경에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이 적지 않다. 그만큼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지역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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