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301701545


[코리안루트를 찾아서](33) 단군신화, 게세르신화, 그리고 몽골 비사

이르쿠츠크·울란우데·자거다치(러시아·중국) / 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 2008.05.30 17:01 수정 : 2008.05.30 17:01


바이칼은 한민족의 출발지일까 종착지일까


일종의 샤먼 양성 학교인 샤먼센터에서 벌이는 샤먼 승급심사 장면. 심사는 ‘학생’들의 접신을 기다리면서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울란우데 | 김문석기자>


“왕에게는 아들이 많았는데, 한 왕자의 재주가 다른 형제들을 늘 앞섰다. 여러 아들이 이 왕자를 죽이려 하니 왕자가 도망쳤다. 강에 이르자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주어~.”


깜짝 놀랐다. 2007년 7월24일, 어룬춘(鄂倫春) 자치기 자거다치(加格達奇)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러즈더(樂志德) 다워얼 학회장을 만난 자리였다. 다워얼(達斡爾)족은 이른바 원(元)고구려족일 수도 있다고 해서 관심을 받아온 종족. 그런데 여든세살이나 된 러즈더 회장은 탐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주몽설화와 아주 비슷한 신화를 술술 말하지 않는가. 다워얼족=고구려의 원형?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데 들을수록 이상했다. 이야기 구조가 주몽신화와 너무 똑같은 것이 아닌가. 작은 해프닝이었다. 러즈더 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역사지식을 토대로 그저 고구려 신화를 이야기한 것일 뿐이었다. 잠깐의 흥분이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 닮은 꼴을 찾는다는 것


하지만 기자는 또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른바 ‘코리안루트를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러시아와 중국을 누비는 것이 아닌가. 자칫 ‘10%의 닮은 꼴’에 매달려 ‘90%의 다름’을 사상(捨象)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취재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닮은 10%라도 찾으면 그것에 짜맞추어 해석을 시도하는 그런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러시아·중국 탐사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가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깊은 친연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7월12일,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300㎞ 떨어진 곳, 배를 갈아탄 시간까지 합해 모두 8시간 걸려 간 곳이 유명한 바이칼 호수였다. 들어서는 길에 왼쪽 저편에 보인 이른바 모녀 샤먼 바위(일명 부르한 바위)를 보고 박근우 교수(이르쿠츠크 국립언어대)가 귀띔한다.


“꼭 우리나라 독도가 연상되지 않나요?”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호수 안 알혼섬에서 만난 부랴트 샤먼 발렌친의 첫마디 역시 바로 한국인과의 친연관계였다.


“옛날 옛적에 부랴트인(몽골 혈통의 종족)과 한국인의 조상은 연결되었다. 그대들을 솔롱고스라 했다. 몽고반점이 있지 않으냐. 그대들과 우리는 유대가 있고 정이 있다. 칭기즈칸과 한국 공주가 결혼하지 않았느냐.”


7월16일,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분소 부랴트 센터를 찾았다. 몽골학과 티베트학, 불교학, 생물학, 물리학을 연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보리스 바자로프 윈장과 세르게이 다닐로프 고고학 분과위원장은 탐사단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유전자 지도를 보면 부랴트인과 한국인 사이에 상당한 친연관계가 있다고 한다. 2년 전 울란우데에서 국제문화학회가 열렸는데, 그때 어떤 여성 인류학자(투멘이라는 이름을 가진)가 한국인과 부랴트인의 관계를 설명했다. 현대 부랴트 인근 지역의 경우 중국인보다 한국인의 게놈과 비슷하다는 연구 분석도 있었고….”


바자로프 원장은 “일본인들은 이미 1950~60년대 뿌리를 찾는다고 이곳을 들락날락거렸다”면서 “우리 연구소에서는 아직 한국 관련 연구는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날 밤, 샤먼센터(샤먼을 배출하는 일종의 학교)가 주최하는 샤먼 승급(5급) 심사장에 찾아갔다. 샤먼을 키우는 학교가 있고, 샤먼도 등급시험을 보아야 한다니 신기했다. “심사장에서는 절대 떠들지도, 방해도 하지 마라. 샤먼이 트렌스(신과의 교감)하는데 몸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해 조심 또 조심했다. 신화학자인 양민종 부산대 교수가 유창한 러시아말로 샤먼센터의 장(長·종정)인 마이예르 잠발로비치를 ‘알현’하고, ‘한 말씀’ 청하자 역시 한국인과의 친연관계를 언급한다.


“한국인과 부랴트인은 가까운 친척이다. 신들이 말한 것이다. 둘 다 바이칼에서 왔다. 지성과 감성으로 느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인이 바이칼에서 왔다는 가설이 공표되었다.”


다음날, 다시 샤먼센터 쪽에서 알려왔다.


“어젯밤 (탐사단이 간 뒤에) 접신(接神) 때 종정께 다시 여쭤보았는데 ‘언젠가 부랴트인과 한국인이 좁은 땅에서 머리를 맞대고 살았다’는 응답을 받았다고 하네요.”


하루 뒤에 다시 덤으로 응답을 해주는 것에 기자는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혹 탐사단을 위해 이들이 ‘립서비스’ 수준, 즉 ‘입맛에 맞는 맞춤형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7월24일 다워얼의 해프닝이 일어난 것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요. 동질적인 문화와 가치관, 신념체계를 갖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유사성과 친연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죠. 신화의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고 세계관도 비슷하다면….”(양민종 교수)


■ 게세르와 단군의 친연성


하기야 그렇다. 현장을 찾는다는 것은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고 어느 한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의 감각을 찾는 과정이 아닌가.


그런데 과연 무엇이 비슷하다는 걸까. 알혼섬에서 샤먼 발렌친이 술에 취해 암송하는 소리를 듣던 양 교수는 내심 깜짝 놀랐다고 한다.


“원래 발렌친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신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때는 달랐어요. 평소의 레퍼토리를 버리고 게세르시를 암송하는데, 그것이 꼭 단군신화에 스토리를 입힌 것 같았어요.”


게세르(Geser) 신화는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영웅 서사시의 제목이자 등장 인물의 이름이다. 내용의 얼개를 보면.


“지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늘세계 회의가 열리고, 하늘신 히르마스가 둘째아들인 게세르를 지상으로 내려 보낸다. 게세르는 지상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한 뒤 인본주의와 조화를 이룬다. 결혼해서 아들을 낳은 게세르는 악한 무리와 전투를 벌인 뒤 지상의 악을 멸하고 제국을 건설한다. 그후 자손들과 승리의 주역들은 동서남북으로 확산, 제국을 확장시킨다.”(양민종이 옮긴 ‘바이칼의 게세르 신화’·2008년·솔)


단군신화도 닮은 꼴이다. 지상세계의 문제를 목격한 환웅이 환인의 허락을 얻어 무리 3000명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후 환웅은 신시(神市)로 일컬어지는 하늘신의 직접 통치구역을 설정하고 우사, 풍백, 운사 등과 함께 지상에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제압한 뒤 지상과 우주의 조화를 복원시키잖아요. 게세르 신화와 닮은 꼴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기자는 덧붙여 게세르 신화에서 하늘신인 히르마스가 맏아들이 아닌 둘째(게세르)를 내려보내는 것과, 단군신화에서 적자(嫡子)가 아닌 서자(庶子)를 보내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우리 민족을 찾으려면 부랴트에서 찾아보라고 했다고 한다.


“육당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조선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해결할 단서로 단군신화를 언급했는데요. 아마도 육당은 게세르 신화를 단군신화와 쌍둥이 형제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양민종 교수)


그런데 탐사 초반부터 기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의문점이 있었다. 왜 우리는 이 머나먼 바이칼 호수에서 단군신화의 원형을 찾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몽골을 마치 ‘우리의 모국’처럼 여기고 있는 것일까. 혹 그 반대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통설의 노예가 되어 그저 기존의 학설을 공리(公理)처럼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머릿속은 그저 뿌연 안개만 가득찰 뿐이었다. 근거없이 말하면 역시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까.


그런데 7월12일, 샤먼 발렌친의 의식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까 발렌친은 부랴트족의 신화인 게세르 신화와 단군신화는 닮은 꼴이고, 게세르 신화의 이동경로가 티베트-몽골-부랴트이며, 단군신화도 게세르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을 거라고 말하는데요. 사실은 단군신화가 이른바 게세르 계열의 신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채록본입니다.”


단군신화가 동북아에서 채록된 게세르 계열 신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신화학자인 양 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서 기자의 뿌연 머릿속의 안개가 말끔히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 몽골이 우리의 뿌리인가, 우리가 몽골의 뿌리인가


두 번째 의문점. 과연 13세기 때 나라가 선 몽골은 우리의 뿌리인가. 이것 또한 당연히 생기는 의문이다.


여기서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출자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 대목을 만날 수 있다. ‘몽골비사’에 나온 칭기즈칸과 관련된 출생의 비밀. 주채혁 세종대 교수와 함께 몽골의 역사를 담은 ‘몽골비사’를 풀어보면.



바이칼 호수까지 흘러가는 셀렝가 강 일대에 자리잡은 메르키드족인 예케 칠레두라는 인물이 아내를 빼앗긴다. 약탈자는 몽골의 예수게이라는 인물이고, 약탈 당한 비운의 여인은 후엘룬이다. 그런데 후엘룬은 예케 칠레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몽골로 끌려간 후엘룬이 낳은 아이는 바로 칭기즈칸이다. 그러니까 칭기즈칸의 생부는 몽골족인 예수게이가 아니라 메르키드족인 예케 칠레두라는 것이다.


“칭기즈칸이 몽골 혈통이 아니라 메르키드 족의 핏줄이라는 것이 담고 있는 함의는 큽니다. 그리고 이 메르키드족이 다름 아닌 발해 말갈이라는 설이 주류를 이루니까요.”(주채혁 세종대 교수)


발해를 비롯한 우리 역사의 뿌리가 몽골이 아니라, 몽골의 뿌리가 발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또한 헛된 민족주의의 발로라는 비아냥을 들을까. 과연 그럴까. 기자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것은 부랴트계 러시아 학자들의 발언이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 분소에서 만난 바자로프 원장은 “북방에서 한반도(남쪽을 의미)로 건너갔다는 고정 관념 말고, 한반도 인근에서 북방으로 건너왔다는 설명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곁에 있던 다른 학자들도 “한국인이 부랴트에서 기원한 게 아니라 부랴트 사람들이 한국인으로부터 왔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으냐”고 입을 모았다.


고고학자인 니콜라이 이메노호예프는 아예 “거란이 일어났을 때(BC 907년 무렵) 한반도 부근의 한민족이 북단의 유목세계인 바이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을 내기도 했다.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 샤먼 발렌친. 그는 탐사단 앞에서 단군신화를 빼닮은 게세르 신화를 암송했다. <바이칼호 알혼섬 | 김문석기자>


물론 “신화라든가, DNA라든가, 언어학적 측면이라든가 모든 영역에서 한국인과 부랴트인을 포함한 북방 민족과 친연성이 있는 것은 사실 같지만, 더욱 딱딱한 증거들, 즉 과학적인 분석이 더 필요한 것 같다”는 이곳 학자들의 말은 맞다.


여기서 다시 게세르 신화와 단군신화, 그리고 몽골비사와 발해 유민과의 관계 등을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단군신화는 과연 게세르 신화의 아류인가. 그리고 단군신화는 과연 한민족만의 건국신화인가. 아니면 동북아시아 여러 민족, 아니 동이계 공통의 신화인가. 양민종 교수가 풀어주는 단군신화 이야기다. 또 하나 주채혁 교수로부터는 몽골비사가 담고 있는 수수께끼, 즉 몽골과 발해 관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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