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620.22016202154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13> 환동해지역, 독자적인 철기전통이 존재했을까

극동지역의 철기는 문명의 발전 아닌 도구의 개량에 그쳐

기원전 9세기부터 中과 다른 철기 발견

중원과 멀어 청동기시대가 거의 없는 등

잡곡농사위해 초원기술 빨리 도입된 듯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06-19 20:23:40 |  본지 16면


연해주 기원전 8~7세기대의 얀꼽스끼문화에서 발굴된 철기.


전 세계적으로 철기를 처음 무기에 도입한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의 힛타이트인이다. 이들은 기원전 17~16세기에 철로 만든 강력한 전차를 개발해서 근동지역에 그 위용을 떨쳤다. 반면, 중국은 기원전 6~5세기경에 변방의 제후국을 중심으로 농기구의 일부로 철기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근동보다 1000여 년 이상 늦은 셈이다. 중국은 청동기로 무기와 제사 용기를 만들었던 전통이 워낙에 강했던 탓에 철기의 도입이 비교적 늦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철기는 기원전 4세기에 현재의 북경지역에 존재했던 연나라가 부국강병을 하여 다양한 철기무기와 농기구를 제작했고, 이것이 고조선으로 들어와서 다시 한반도로 전파된 것이다. 연나라의 철기는 향후 일본지역까지 전파되었으니, 실로 연나라의 철기가 동아시아 철기시대를 열어준 셈이다.


그런데, 연해주와 같은 극동지역의 철기시대는 기원전 9세기대로 올라가며, 실제로 많은 철기가 발견되었다. 1950년대부터 극동지역 얀꼽스끼문화와 우릴문화 등 기원전 9~3세기대의 유적에서 철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전체 러시아를 놓고 본다면 초원지역은 기원전 9세기대에 이미 철기가 나오기 시작하니 러시아 학자들로서는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1960년대 이래로 러시아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의 시작이 기원전 9~10세기라고 본다. 물론, 중국의 철기 전파를 절대적으로 믿는 한-중-일의 학자들은 이 사실을 불신하고 있다. 필자 역시 중국과 다른 철기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연해주 바라바시 유적에서 기원전 5세기대 철기 8점을 직접 발굴하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극동지역에서 철기가 그렇게 일찍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결국 중국과는 다른 철기제작 기법이 극동으로 들어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기원지로는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일 가능성이 높다. 초원지역의 기술발달은 매우 빠르다. 하루에도 수십 ㎞씩 이동하는 그들 생활특성에 기반하여 유라시아 초원지대는 철기의 발상지인 근동아시아에서 빠르게 철기를 받아들였다. 시베리아에 철기가 도입된 시기는 기원전 10~9세기경이다. 하지만, 청동기문화가 지나치게 발달했기 때문에 철기의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반면에 극동지역은 중원지역과 너무나 먼 탓에 중원의 영향에 자유로울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초원의 기술을 빨리 도입할 수 있었다. 극동지역 철기의 또 다른 특징은 이 지역은 청동기시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무르 지역은 신석기시대가 끝나면 곧바로 철기시대로 이어지며 연해주지역도 청동기시대가 아주 짧게 존재했다. 극동지역에 청동의 재료가 되는 주석의 공급이 쉽지 않았다는 점과 노천에 철광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열쇠는 철기와 청동기의 용도 차이에 있다. 청동기는 장신구나 제사 용기로 쓰이는 반면, 철기는 노동 도구나 무기로 만들어진다. 극동이 철기를 빨리 도입한 이유는 척박한 한대지역 땅에서 잡곡농사를 짓고 정착하는 데에 필요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시 말하면, 극동지역은 철기가 빨리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역보다 더 발달된 문화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기존의 돌도끼가 철도끼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 문화는 차이가 없었다. 철기가 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기존 도구들에 도움을 주는 현상은 러시아인들과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교역에서도 알 수 있다. 러시아인들이 18세기에 북극권의 주민들에게 철기 및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전해주었지만 원주민들은 철기를 석기 대신에 썼을 뿐 다른 사회의 변화는 없었다.


과연 극동의 철기는 이 지역에서 만들었을까, 아니면 초원과 같은 다른 지역에서 만든 것이 수입되었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왜냐하면 실제 철기를 만들려면 엄청난 노하우, 철광석의 공급, 유통망의 확보 등 적지않은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철기가 사회의 거대한 발전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단순히 노동도구의 개량으로만 그친 것은 분명하다. 작년에 한국에서도 강원도 철정리에서도 기원전 7세기대의 주거지에서 철기편이 발견되었다. 일본에서는 마가리타(曲り田)유적에서 비슷한 시기에 철기가 나온 바 있다. 앞으로 환동해지역의 조사가 진행되고 철기의 계통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몇 년 내에 한반도 철기시대의 계통이 단선적 중국계통에서 벗어나 다양한 루트로 형성되었음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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