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718.22015201443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17> 아무르강 여진족의 고구려계 불상

발해 영향받은 여진문화, 샤먼무덤 속 6.9㎝ 불상이 증거

중·러 국경 아무르강 유역 꼬르사꼬프 고분군에서 고구려계 약사여래상 발견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07-17 20:15:48 |  본지 15면

중국-러시아 국경분쟁 지역인 우스리스크 섬에서 출토된 꼬르사꼬프 불상(국립문화재연구소 간행 아무르 연해주의 신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은 4400㎞에 이르는, 세계 8대강 중 하나로 극동지역 고대문화의 요람이기도 하다. 검은 용이 기어가는 듯 하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고도 불리는 이 강은 유장한 흐름 때문인지 자주 섬들이 생겨나고 육지에 붙기도 한다. 자연의 섭리로 생기는 새로운 지형을 가지고 분쟁을 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니, 중국과 소련은 아무르강의 여러 섬 때문에 수십년간을 다퉈왔다. 아무르강으로 흐르는 우수리강의 작은 섬인 다만스키섬(珍寶島)을 두고 1969년에 중·소 전쟁이 일어난 것은 유명하다. 또 중국과 인접한 하바로프스크 주변에 있는 우스리스크 섬도 국경분쟁의 주요 원인중 하나였다. 2004년 10월에 타결된 협정에 의해서 러시아는 다만스키섬에 이어서 우스리스크섬 일대 174㎢를 중국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로 양분될 이 우스리스크 섬에는 극동 최대의 여진족 고분이 조사되었고, 거기서 고구려계 또는 발해계로 추정되는 조그만 금동불상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은 꼬르사꼬프 고분군이라고 불리우는데, 광활한 우스리스크섬의 북서쪽 약간 높은 언덕에 1㎞가 넘는 강가를 따라서 분포한다. 1976년부터 16번에 걸쳐서 메드베데프 박사에 의해 발굴된 이 유적에서는 7~11세기 여진족의 토광묘 379기가 발굴되었다. 극동에서 발굴된 중세시대 무덤유적 중 가장 대형인 셈이다.


여진족 하면 생여진과 숙여진으로 나뉘고 고려시대 때 우리나라 동북지방 변경에 있었던 사람들로 잘 알려져있는데, 여기에서 한참 북쪽인 아무르강 유역에서도 이들의 문화가 발견되었다. 물론, 아무르강 유역의 여진문화는 역사기록에는 나오지 않으며 고고학적 발굴로 확인된 것이다. 8~9세기에 발해가 번성하여 그 세력이 북쪽 아무르 지역까지 미치자 여진족은 발해의 선진 문화에 자극받아서 여진문화를 발달시켰고, 이후 발해가 망하면서 남하해서 고려와 대치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여진족의 발달과정에서 발해나 고려와의 접촉은 필수적이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불상 이외에도 성 쌓는 법, 토기 제작, 철제 무기 등 여러 방면에서 발해와 고려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불상은 꼬르사꼬프유적 중 무덤 112호에서 발견되었는데, 무덤의 주인공은 노년의 여성으로 청동제 허리띠 장식과 목걸이 등 다양한 의례에 쓰이는 유물이 함께 부장되었다.


아마도 당시 여진 사회에서 의례를 담당했던 샤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불상은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북쪽에서 발굴된 고구려 계통 불상이다. 이 불상은 6.9㎝의 작은 크기로 얼굴은 갸름하고 온화한 표정이다. 이마 위에는 결발(結髮)이 표현되었다. 몸에는 늘어지는 가사를 걸쳤으며 왼손에는 단지를 들고 있어서 약사여래상으로 추정된다. 발 밑에는 사다리꼴로 대좌가 있고 조그만 돌기가 있어서 원래는 제단같은 데에 꽂았던 것 같다.


극동에서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불교를 믿었던 발해를 제외하고는 모두 샤먼을 신앙한 탓에 불교 관련 유물은 거의 없다. 이 불상이 묻힌 고분은 서기 10세기 경으로, 주변지역에서 이 당시 불교를 숭배했던 사람들로는 남쪽의 발해가 유일하다. 게다가 불상의 형식도 고구려계통에 가까운 편이니 발해지역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 그런데 정작 무덤의 주인공은 샤먼이었다는게 흥미롭다. 아마도 더 많은 신력을 받기 위해 의례도구로 불상도 같이 쓴 게 아닐까 생각된다. 무덤에 허리띠며 방울같은 무속도구가 같이 출토되었는데, 아마 이 불상도 그런 치레도구 중에 하나로 걸려있었던지, 아니면 지팡이 같은 것에 꽂아서 의식의 도구로 사용했을 것 같다. 지금도 무속인들 중에는 성모마리아 상이나 불상을 모셔놓는 분들이 꽤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듯하다.


또 꼬르사꼬프 175호고분에서 장방형의 금속판으로 된 허리띠 장식이 발견되었는데, 그 위에는 동그랗게 튀어나온 눈을 가진 귀문(鬼文)이 새겨져있다. 이런 형태의 귀문은 신라의 기와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물론, 기와와 허리띠 장식은 서로 기능이 다르니 섣불리 문화교류의 증거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중세시대 한반도와 극동지역간의 문화교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예라고 하겠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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