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801.22015214232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19> 잃어버린 우리의 땅 - 녹둔도
이순신 장군도 한때 주둔 … 한·러 국경 심도 있는 연구를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07-31 21:43:18 | 본지 15면
녹둔도의 전경
독도문제로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는데, 한-러 국경인 두만강 어구에도 비슷한 운명의 섬이 있었다. 한국과 러시아가 국경을 접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무능한 중국의 황제덕(?)이었다. 1860년도에 현재 하북성의 승덕에 위치한 피서산장에서 북경조약을 맺으며 러-중의 국경을 우수리강으로 했고 그 결과 중국은 태평양으로 나가는 바닷길이 막히게 되었고, 러시아 영토는 마치 꼬리처럼 길게 남쪽으로 이어져 한국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좁고 긴 땅 때문에 바다로 나갈 길이 막힌 중국으로서는 아쉬워할 일이었고, 만주국 시절에는 일본 관동군과 소비에트 적군 사이에는 이 땅을 놓고 대량의 군인이 희생된 하싼분쟁(장고봉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현지의 끄라스끼노 마을에서 발견된 19세기 말 주민 김인흡의 비석.
한편, 중국과 러시아의 조약이 맺어지면서 두만강 유역의 끝자락 조선시대 우리의 영토였던 녹둔도도 같이 러시아의 영토로 포함되었다. 이 섬은 조선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주둔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옛 기록에는 그 지리를 잘 모르고 두만강 하구의 작은 땅으로 표시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여의도 몇 배 크기의 엄청난 크기의 땅이다. 조선시대까지는 한국 쪽에 속하던 땅이었으나 두만강의 본류가 좀 더 남쪽으로 흘러서 녹둔도는 러시아측으로 붙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대한제국 시절 고종도 실제 조사하고 국경을 명확히 하라고 지시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는 판국에 섬하나에 제대로 신경쓸 여유는 없었을 것이고, 그냥 러시아의 영토로 바뀌었다.
현재 녹둔도는 수슬로바 반도와 몇몇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저지대로 이루어져서 사람이 거주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아마 조선시대 조선인들은 언덕배기나 산 밑의 구릉지대에 근거해서 성을 쌓고 살았을 것 같다. 해수면이 조금만 높아도 저지대는 물로 차서 섬처럼 되었을 테니 섬을 뜻하는 녹둔도라 불리웠던 것 같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녹둔도는 멀리서보면 마치 사슴이 앉아있는 모습이라 현지의 고려인들은 '사슴의 엉덩이'라는 뜻으로 녹둔도라고 했단다.
필자는 작년 8월에 동북아역사재단의 김은국 박사와 함께 현지 끄라스끼노 마을에서 사업을 하는 오명환 사장의 도움으로 당시 조선인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비석을 조사한 적이 있다. 명문에 따르면 주인공인 김인흡은 19세기 말에 살았던 사람으로 6대째 이 지역에서 거주하며 제법 큰 벼슬을 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한강의 밤섬같이 때때로 살던 곳이 아니라 어엿하게 큰 마을이었던 것 같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점은 거대한 영토의 러시아 마저도 1950년대부터 한-러 국경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고고학적 조사를 실시해왔다는 점이다. 시베리아 고고학의 아버지인 오클라드니코프와 일련의 고고학자들은 녹둔도를 포함한 피터대제만과 주변지역을 샅샅이 조사해서 유적들을 발굴하고 조사했다. 한-러 국경지역은 연해주 내에서 가장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곳으로 꼽힌다. 현재에도 이 지역은 보이스만 패총이나 얀콥스키문화와 같은 한반도 고대문화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유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신석기시대 빗살문토기, 청동기시대 공렬토기나 돌대문토기, 석검, 패총 등 이 지역은 지금은 우리가 가 볼 수 없는 북한의 자료와 비교연구할 자료들이 산재해있다. 현재 대부분의 연해주지역 고고학조사가 발해에만 치중되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녹둔도를 포함한 한-러 국경지역 일대는 바다와 강이 모여드는 지역으로 해안선이 복잡해서 다양한 패각류와 어족자원이 풍부해서 선사시대 이래로 살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예에서 보듯이 조선시대 여진과 대치했었으니 샅샅이 조사한다면 조선시대 북방과의 관계를 밝히는 중세고고학의 자료가 나올 수 있다. 녹둔도의 일부로 생각되는 수슬로바 반도의 끝에는 중세시대의 성이 아주 뚜렷이 남아있다고 지도에 표시되어있다.
작년에 시간과 연구비의 한계로 그 지역을 자세히 조사해보지는 못했지만, 향후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빨리 흥분하고 곧 잊어버리는 한국사람의 특성은 월드컵같은 놀라운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주변국과 복잡하게 얽혀져있는 국경문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녹둔도는 아직 크게 이슈화되지는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이고 심도있는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또, 그 관심은 선사시대의 문화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녹둔도는 조선시대의 우리 영토이기 이전에 선사시대 이래로 한반도 고대문화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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