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1107.22017202840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31> '큰 코' 다친 러시아인들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31> '큰 코' 다친 러시아인들

나선정벌 나선 신류장군의 소총수들 러시아군 대패시켜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11-06 20:29:05 |  본지 17면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기차역 앞에 있는 하바로프의 동상. 러시아의 극동진출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러시아 축구 팬클럽이 단체여행을 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최초로 만난 서양사람들은 누굴까? 물론 신라의 처용설화로 상징되기도 하는 아라비아 사람들이라고도 하지만 유럽사람으로 치면 러시아인일 것이다. 몽골제국이 발흥하면서 러시아의 모스크바까지 점령했고, 당시 몽골의 조정에서 유라시아 각지의 사신들이 조우했을 테니 분명히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도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본격적인 기록은 조선시대 후기 청나라에 파견된 한국 사신들이 당시 북경에 거주했었던 러시아 정교회 사절단을 만나면서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이들을 '코 큰 오랑캐(大鼻獺子)'라고 기록했으니, 요즘으로 말하면 '큰코쟁이'의 기원인 셈이다. 그런데 한국 사신들은 이들이 코가 크고 흉악하며 사나운 데다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 해롱대며 부녀자들을 희롱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묘사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서양인에 대한 공포나 불안감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러시아와의 사건은 나선정벌이다. 17세기중반 바이칼까지 진출한 러시아인들은 동쪽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몰랐으며, 야쿠츠크같은 도시는 겨울이 너무 혹독해서 살기어려워지고 있었다. 1649년에 코사크 기병대의 대장인 하바로프는 원주민인 에벤키로부터 더 동쪽으로 가면 '검은용'의 강이 있는데, 여기에는 황금과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동쪽으로 진출한다. 바로 검은 용의 강은 흑룡강(黑龍江)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바로프는 러시아로 보면 극동지방을 정벌한 일등 공신인 셈이다. 극동의 주요도시인 하바로프스크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사크 기병들이 그렇듯이, 하바로프는 매우 잔인하고 욕심많은 반은 불한당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러시아 정부로서는 영토 확장과 수입 확충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불법행위는 그냥 눈감아주었고 그래도 처벌할 일이 생기면 대신에 더 많은 땅을 정벌하면 사면해주는 식이었다. 그의 부장인 스테파노프는 더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중국군과 마주치게 된다. 이때 청나라는 밀려오는 러시아 군대를 막고자 한국에 구원을 요청하니, 이게 바로 1655년과 1658년 2차에 걸쳐 이루어진 그 유명한 나선정벌이다.


효종이 꾸준하게 군비를 확충했기 때문이었는지 우리 군은 우수한 소총수들의 저격으로 러시아인들 물리쳤다. 제2차 정벌을 한 당시의 기록인 '북정일기' 곳곳에는 험난했지만 자신감에 찼던 신류 장군의 기개와 용병으로 출전한 부하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이 나타나 있다. 결전은 1658년 6월10일에 벌어졌고, 러시아 기록에 따르면 500여 명 중 대장인 스테파노프 이하 270여 명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포로가 되거나 도망갔다고 한다. 그에 비해 260여 명이 참전한 우리 측은 전사가 8명이었고, 그나마도 재물이 탐나서 적의 배에 불을 지르는 것을 반대한 청군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피해를 입은 것이니 실로 대승인 셈이다. 하지만 청나라의 눈치를 봐야하는 용병이었던 점은 어쩔수 없었나 보다. 군량도 우리가 직접 대야했고, 노획한 러시아의 화승총도 얻기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 군인들은 한국 군대가 참여한 것을 몰랐었고, 단지 신류 장군의 북정일기에 러시아 군대는 머리가 큰 사람(大頭人)들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전립같은 큰 모자를 쓴 우리 군인을 지칭한 것일 것이다. 반면에 신류 장군은 상대한 사람들이 러시아군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포로로 잡은 러시아 군인들이 자기들을 '오을소'라고 하자 이를 중국측 통역가가 말한 '오로소'와 같은 말이라고 짐작한다.

 

중국어로 러시아는 '아라사(얼루어쓰)'라고 한다. 러시아를 음차한 것인데, 러시아의 R발음은 혀를 떨며 발음하기 때문에 그를 제대로 발음못하는 중국인이 '아'라는 발음을 앞에 붙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선'역시 러시아를 음차한 것이다.


나선 정벌은 당시 병자호란 이후 땅에 떨어졌던 우리 백성의 자존심을 높이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 신류 장군의 이야기는 회자되고 나중에는 그럴듯한 소설까지 만들어서 실존하지 않은 부장군을 주인공으로 해서 신화적인 부대로까지 묘사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 전투로 러시아인들은 크게 겁 먹고 흑룡강 건너편 알바진에 요새를 건설하고 주저앉았다. 이후 중국은 19세기 중반까지 흑룡강 지역을 지켜서 거대한 흑룡강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영토가 된 것을 근거로 그 땅의 역사를 태고적부터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니 씁쓸할 따름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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