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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한반도까지 <5> 전차, 무기에서 교류의 도구로

초원의 전장 누볐던 전차, 신의 전령사로 거듭나다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9-10-19 19:42:00 |  본지 20면


- 기원전 13세기 상나라 때 무덤서 북방초원의 유목민 썼던 전차 발굴

- 기원전 10세기경 서주시대 무덤서도 전차로 무장한 여전사 유물 발견

- 두 곳 모두 신탁으로 통치했던 당시 시대상 고스란히 반영

- 한반도에는 전차유물 흔치 않지만 고조선시대 여러 가지 유적에 신과의 소통 매개체 흔적 남아


■전차를 몰던 사람의 후손인 석가모니


인도 아아리바테스와 절터에 새겨진 전차의 모습.


모헨조다로 유적으로 유명한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인더스문명은 기원전 19세기께 갑자기 멸망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환경의 변화, 강물의 변화, 전염병 등 많은 설이 있는데, 그 중 유력한 설은 전차와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적들에 의해 멸망했다는 의견이다. 실제 모헨조다로 도시유적에서는 갑자기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고 우물이나 길거리에 떼죽음을 당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전차인들의 무기와 전차의 흔적이 나타나기도 했다.


새로 밀려온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정체는 기원전 16세기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 '리그베다'를 통해 밝혀졌다. 그들은 시베리아 안드로노보문화에서 기원한 강력한 전차와 무기로 무장한 아리안족으로 이후 인도문명의 주체가 되었다. 석가모니는 '샤키의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샤키족은 전차를 몰고 내려온 유목민의 후손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시베리아의 유목민이 석가모니로 이어졌으니 한국문화에 녹아있는 불교문화도 시베리아와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리그베다에 기록된 신 중 강력한 우샤신은 거대한 태양의 전차를 타고 다니면서 여러 지역을 평정했다. 그가 하늘을 날며 주변의 것들을 불태우는 광경을 두고 호사가들은 고대 UFO를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 중국판 새마을운동, 잠자는 여전사를 깨우다

몽골 암각화에 새겨진 전차 모습.


1970년대 중국은 산서성의 벽촌인 다차이(大寨)에서 농민들이 자력으로 산을 개간하고 논을 만든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다차이를 배우자'는 표어 아래 중국판 '새마을운동'을 전개했었다. 1976년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인 은허(殷墟)가 있었던 하남성 후강촌의 농민들도 이 운동의 일환으로 경지를 정리하다가 상나라의 거대한 무덤을 발견했다. 무덤의 주인공은 상나라 무정(武丁)왕의 부인 중 하나였던 부호(婦好)였다. 거대한 묘에서는 옥기 755점, 골각기 564점, 청동기 468점 등이 출토되었으며 순장된 인골도 16구나 발견되었으니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여기에서는 당시 상나라 사람들이 쓰던 거의 완벽한 전차가 발견되었다. 그 전차의 연대와 특징을 연구한 결과 전차는 당시 북방 초원지대에 기원전 13~10세기에 '카라숙청동기'(기원전 13~9세기)라 하는 초원지역의 청동무기와 전차를 쓰던 유목민으로부터 전파되었음이 밝혀졌다.


초원지역에서 개발한 강력한 청동무기와 전차로 무장한 이 '오랑캐'들은 중국 북부지역까지 진출해 상나라의 변경을 괴롭혔으니 당시 상나라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상나라의 갑골문에는 그들을 귀방(鬼方)이라고 불렀다. 귀방의 사람들은 상나라를 자주 침략하고, 상나라도 툭하면 군대를 동원해서 귀방을 토벌하려고 했으니, 상나라에게는 '악의 축'이었던 셈이다. 귀방으로 기록된 초원민족과 싸우는 과정에서 상나라 사람들은 초원의 발달된 청동무기와 전차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 고구려의 소서노와 상나라의 부호


중국 낙양에서 발굴된 전국시대무덤에 부장된 전차.


그런데 부호는 왕의 아내였다. 아리따운 후궁들을 맞이하기에도 바쁠 왕이 전쟁에 전차를 끌고 나가는 여장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우리는 청동기의 발명, 전차의 사용 등 고대사를 생각할 때 은연 중에 역사의 주체를 남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반은 여자였다. 군사를 이끄는 여자 지도자는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상나라의 다음 시기인 서주시대에 현재 베이징 근처에 위치한 연나라와 북방으로 인접한 집단의 무덤인 백부촌 유적이 있다. 기원전 10세기께 만들어진 이 유적의 주인공은 강력한 무기와 전차로 무장한 여자였다. 고구려와 백제를 아우른 여걸 소서노도 실제로 주몽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은 일종의 제사장 겸 무인이었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그리스 신화의 여전사인 아마조네스가 결코 서양고전만의 일은 아닌 것이다.


이 여전사들이 실제로 남자를 능가하는 괴력과 무술의 소유자였을까? 상나라의 지배구조를 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상나라의 권위자들은 폭력이 아니라 신탁, 즉 신의 힘을 부여받아서 나라를 통치했다. 상나라의 왕은 비서진에 해당하는 정인들을 데리고 제사를 지내고 점을 치면서 정사를 돌봤다. 부호 역시 신권을 부여받아 상나라 군사들에게 힘을 주고 통솔을 한 제사장 겸 장군이었을 것이다. 즉, 부호의 전차는 강력한 무력과 함께 신의 뜻을 전하는 전령사였던 셈이다.


■ 상나라의 전차, 고조선으로 파급되다


평안북도 주의리에서 출토된 수레바퀴 조각.


1963~65년에 북한과 중국은 공동으로 만주의 고조선 및 발해유적을 공동조사했다. 당시 고조선조사팀은 내몽고 동남부지역에 위치한 남산근 유적에서 재밌는 유물을 발견했다. 남산근 101호무덤에서 다량의 마구와 함께 전차를 새긴 골판이 발견되었다. 두 마리의 말이 끌고 있는 전차의 옆에서 한 사람이 사슴들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는 장면이다. 이 남산근 유적은 기원전 11~6세기에 존재했던 하가점상층문화에 속하는데, 중원-초원-고조선을 잇는 교차점에서 꽃피운 문화다. 실제 남산근에서는 비파형동검을 비롯해 고조선문화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었으니, 한반도와 만주로 전차가 유입되는 중간루트가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조선의 전차에 대한 증거는 많지 않다. 평안북도 염주군 주의리에서 수레바퀴 조각이 발견된 적이 있는데, 북한 학자는 기원전 8~7세기로 본다. 같이 나온 유물을 알 수 없어서 그 연대가 맞는지, 또 전차인지 수레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본격적인 전차와 수레의 증거는 위만조선과 낙랑 때에 등장한다. 위만조선이라고 해도 기원전 2~3세기를 넘지 않으며, 평양 일대에서만 발견되었으니 참 늦은 편이다.


왜 이렇게 한국은 전차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로는 한국과 만주의 고대집단은 강력한 군사력이 아니라 샤먼으로 대표되는 종교, 제사적인 힘으로 지배했기 때문이다. 정가와자 무덤에서는 청동거울 4점이나 출토되었고, 다른 여러 가지 증거를 봐도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지배자는 제사를 담당하던 제사장이었다. 즉, 급박한 전투를 통해 새로운 무기로 전차를 받아들일 필요성이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한반도와 만주는 전차를 쓰기 어려운 산악지형이라는 점이다. 전차전은 기본적으로 근동이나 중원 같은 평원지역에서 주로 발달했다. 전차전에 익숙한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했다. 근동의 히타이트의 전쟁기록을 보면 적이 산위로 도망가면 추격을 포기하고 산을 둘러싸고 굶어죽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중원 내에서도 양자강 유역의 오월에만 가도 이미 전차는 소용이 없었다. 빠르지만 지형의 제약을 많이 받았던 탓에 전차는 실제로 널리 쓰이지 못했다.


■ 전차, 무기에서 소통의 도구로


전차를 중요한 군사도구로 사용했던 근동이나 이집트와 달리 중국과 고조선은 그 통치의 근간은 제사였기에 전차 역시 신무기의 상징이 아니라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전차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간고리의 역할을 한 것이다. 성경 에스겔서 1장에 선지자 에스겔이 본 환상적인 전차의 표현은 바로 인간과 신을 잇는 그 연결고리를 의미한다. 기원전 1000년께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전차전은 급속히 소멸되었다. 대신에 전차는 신과의 소통, 지역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 도구로 거듭난다.


빠른 속도로 대량의 문물을 교환할 수 있는 도구가 널리 보급되며 정보와 문물의 교류에 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의 작품 '소통(transportation)'은 이전에 전차가 담당했던 역할을 이제는 비디오와 매스미디어가 담당한다는 뜻인 것 같다. 고대 사람들 사이 소통과 교류의 도구로 도입된 전차는 마치 현대의 인터넷과 같은 혁명적인 발전은 아니었을까? 전차는 또한 전세계를 움직이는 진리를 상징하기도 했다. 인도의 아쇼카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자처했던 '전륜성왕'(Chakravartin)은 바로 거침없이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관장하는 왕을 뜻한다. 현대의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라는 수레바퀴도 정의가 거침없이 흐르는 장이 되길 바란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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