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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outube.com/watch?v=o3ijqNnp3rE  https://www.ytn.co.kr/_pn/0479_201509190946516540



TV 문화유산을 만나다 21회 : 북한산성 이야기 

YTN 2015-09-19


9분까지 (이후는 요리 내용입니다)



우리 문화유산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

<TV 문화유산을 만나다>의 남상일입니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수도를 지켜온 북한산성!

선조들의 축성기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이곳!

수도를 품은 북한산성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한 폭의 산수화처럼 뛰어난 절경으로 우리 곁에 깊게 뿌리내린 북한산. 이곳에 조선의 심장부, 한양을 지켰던 북한산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북한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에 의해 1711년, 도성을 보호하는 국방의 요충지로 거듭나게 됐다고 합니다. 


계곡과 주변의 산세지형을 이용한 포곡식 형태의 북한산성은 성벽둘레만 11.6km, 총면적은 약 6,200km²에 달하는데요. 여의도의 약 2배 면적에 해당하는 엄청난 크기라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북한산성을 쌓은 선조들의 축성 기술인데요. 축성 6개월 만에 완성된 북한산성은 각 산세 지형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해, 견고한 요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합니다. 


나라의 중심을 지키던 북한산성. 지금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체험 교실이 있다고 하는데요.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북한산성의 수문이 있던 자리, 그러니까 물이 내려가는 문이 있던 터에 와 있는 거예요. 성벽의 두께는 저기 안 쪽에서부터 끝까지 5m정도 됩니다.


도수민/한신초등학교 1학년

맨 먼저 발굴했을 때 나온 물건이 뭐예요?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성벽을 발굴하다 맨 먼저 발견된 건 조그만 화살촉이었어요. 전쟁에 사용되는 화살촉을 제일 먼저 발견 했어요.


맞춤형 눈높이 역사 교육! 아이들도 즐거워 보이죠? 모두 대서문으로 이동하여 북한산성을 지키시오. 


북한산성의 정문 역할을 했던 대서문. 무지개 모양의 출입구인 홍예문과 사방을 두루 살피는 역할을 했던 ‘문루’ 물을 배수하는 구멍인 ‘누혈’까지 섬세한 축조 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산성의 대문을 지키는 체험 학습. 오늘만큼은 조선의 용맹한 군사가 돼, 역사의 순간을 온 몸으로 느껴 봅니다.   


권오현/문화재청 정책총괄과 사무관

문화재청에서는 우리 문화재의 소중한 가치를 알리기 위해 전국 초,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문교육, 창의 체험학교와 같은 다양한 문화유산 교육 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고학 체험교실은 문화재 발굴 및 유적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살아 숨 쉬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만나고 배워보는 사업입니다. 


수려한 산수의 조화가 돋보이는 북한산성. 숙종의 부국강병의 염원이 담긴 ‘숙종의 길’을 박현욱 학예연구사와 함께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봉우리 사이 협곡에 지어진 ‘중성문’은 특별히 숙종의 명으로 만든 곳이라는데요.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북한산성은 서쪽이 낮으니 서쪽에는 중서문을 축조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의견을 내서 숙종 임금이 다녀간 다음해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2년 동안 만들어진 중문입니다.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하기 위해 만든 차단성이었던 ‘중성문’ 중성문 내부에는 행궁과 중흥사지 등 주요 시설이 집중 돼있었는데요. 중성문은 적의 침입을 막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중성문 옆, 조그만 길을 따라가면 그 당시 북한산성 내에서 생활했던 선조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다는데요.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중성문에 달려있는 작은 암문입니다. 시구문이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중성문 안쪽에 사는 사람들의 시신이 나오는 문이기도 합니다. 


지형이 험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만든 비밀의 문. 비상시 무기나 식량을 반입하던 곳으로 북한산성 내에 총 8개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북한산성의 지형을 가장 잘 이용했던 수문의 흔적을 찾아가 봤습니다. 계곡부에 설치한 ‘수문’은 자연암반을 수작업으로 다듬어 만들었다는데요.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기존 돌에 그레기 질이라고 해서 미리 돌이 앉을 곳을 잘 다듬어서요. 성벽을 축조 했고요.


계곡을 따라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던 ‘수문’ 높이 약5m, 넓이 약 16m에 달하는 수문의 위용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돌에 새겨진 자취를 따라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북한산성의 가장 중요한 시설! 왕의 임시 숙소이자, 전쟁 시 피난처였던 행궁지입니다.  


험난한 지세에도 불구하고 산성 내에 행궁이 세워졌는데요. 행궁은 북한산성 내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총 124칸으로 조성되었던 행궁은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있었다는데요. 업무를 보는 외전과 왕실 일가족이 생활하던 내전을 중심에 배치하고 부속 건물을 세운 뒤 담장을 둘렀다고 합니다.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200년 동안 사용되다가 1915년 집중호우와 산사태에 의해서 행궁이 매몰되게 됩니다.


자연재해로 인해 사라진 행궁지의 원형을 찾기 위해 2012년부터 발굴 조사에 들어갔는데요.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상부구조는 산사태에 의해 무너졌지만 하부구조는 그 원형을 정확하게 보존할 정도로 완벽하게 남아 있고요. 왕실 건물에 걸맞는 용, 봉황문 등을 비롯한 기와편들과 석조물들이 출토 되었습니다. 


행궁지 대부분을 감싸고 있는 파란 덮개,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박현욱/경지문화재재단 북한산성문화사업팀

임시 보존 조취를 한 상태이고요. 겨울을 나야하기 때문에 유구가 훼손되지 않도록 몇 겹으로 싸야 됩니다. 방수포, 그물망, 보온덮개, 비닐 덮개를 이용해서 여러 겹 보호 조취를 한 상태입니다. 


천혜의 요새로 불리던 ‘행궁’ 복원을 통해 원형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올 날을 꿈꿔봅니다. 


나라의 안정을 꿈꾸며 견고하게, 더욱 탄탄하게 쌓아 올린 북한산성. 험준한 지형 속에서 빛난 선조들의 축성기술과  도시와 자연을 이어온 300여년의 시간. 북한산성은 이제 수도만이 아닌, 우리 역사의 한편을 지키는 상징으로 늘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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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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