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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등 흔적..고구려인 슬기.지혜 고스란히 남아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고구려 유적 답사기행<32>
중부일보 2010.09.13  남도일보 2012.08.07 00:00

성안의 모습 북벽에서 남벽을 바라본 모습

<요동북부지역에서 가장 큰 고구려산성>

최진보산성의 성문은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있다. 그중 정문인 남문은 양측으로 산등성이가 이어졌다. 그 등성이 남쪽 켠은 거의 벼랑으로 자연방어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언저리를 따라 높이가 약 1~2m 되게 석벽을 쌓아 놓았다. 널찍한 남문입구 양옆으로는 허물어진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성벽은 토석 혼축으로, 더러 보이는 성벽 단면에 다져 쌓은 흔적이 역력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눈대중으로도 그 높이는 10m 정도, 밑단의 두께도 15m가량 되어 보였다. 성벽 안쪽으로는 약간 평평한 단으로 되어 있었다. 이는 옛날 성벽 수비군의 통로로 사용되던 마도(馬道)였다고 한다. 마도의 너비는 5~8m가량으로 산성 성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옛날 남문 쪽에 배수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흔적은 별로 없다. 다만 남문에서 조금 안쪽으로, 바로 용왕전이 있는 곳의 오른쪽(동쪽)에 동서로 약 20m 길이의 둔덕 흔적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이것이 옛날 산 물을 가두어두었던 저수지 둑이었다고 한다. 저수지의 길이는 약 60m, 한눈으로 보기에도 꽤 넓어 보이는 이 저수지에 옛날에는 적지 않은 물을 저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사이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을 뿐이지만 산성 안 몇몇 골짜기의 산 물이 다 이곳으로 모여 물을 풍족하게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였다. 여느 고구려산성을 다녀 봐도 마찬가지겠지만 수원(水源)과는 거리가 멀법한 산성 안에서 풍족한 수원을 확보한 것은 고구려산성의 특성이자 고구려인들의 남다른 슬기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저수지 옆 수레길을 따라 북으로 관음각을 지나면 수레길도 끊기고 골짜기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 오솔길을 따라 약 500m 나아가면 북문 터가 나타난다. 북문은 양쪽 산발이 내려오며 이어지는 후미진 곳에 있어 낮아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바깥쪽으로는 너비가 1km가량 되어 보이는 긴 골짜기가 평지를 이루며 시원스레 동서로 뻗어있고, 그 사이사이에 자연부락들이 널려있는 것이 가파른 비탈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남문이 산기슭 평지에 있다면 북문은 꽤 높은 산 위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가파른 비탈이어서 난공이수의 험준한 지세였다. 다만 방금 우리가 느슨한 비탈을 올라오면서 이곳이 그렇게 높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성벽을 따라 산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우불구불 동쪽으로 뻗어나간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 터가 확연히 드러났다. 이곳 성벽은 토석 혼축으로 된 성벽인 듯 흙 둔덕에 돌덩이들이 섞여 있었다. 비록 긴 세월을 지나면서 무너져 내려 지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두둑한 축대가 죽 이어졌고 넓은 곳은 3∼4m는 족히 되었다. 지금은 그 위로 무성하게 관목들이 자라고 있다.

우리가 거의 동북쪽 등성이에 이르렀을 때 북쪽으로 꺾어진 성벽이 수십m 뻗어나간 것이 보였다. 그 끝은 약간 낮은 등성이인데 그곳에서는 북쪽으로 성 밖 정경이 환히 내려다 보였고 성벽 쪽으로도 전망이 좋았다. 이곳에 각대(角臺·전망대와 보루의 기능을 겸비한 치를 가리켜 부르는 현지의 말)가 있었고, 건물 터였던 것으로 보이는 구덩이 몇 개가 보였다. 이곳에서 되돌아서 오던 길로 돌아오면 성벽은 다시 동남쪽으로 호선(弧線)을 그으며 죽 이어지다가 다시 동쪽으로 굽어들며 등성이까지 이어졌다. 이 등성이는 산성 동남쪽 끝머리다. 이곳에서는 성 안팎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북으로 꺾어들어 조금 더 나가면 산성의 최고봉(해발 344.7m)에 이른다. 성벽은 여기서 다시 서남쪽으로 꺾어져서 나가다가 산성 남문 동쪽 산등성이와 이어진다.

우리가 방금 머물렀던 각대 터에서부터 성벽 터의 돌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동쪽으로 이어진 성벽부터는 석벽으로 되어 있다. 이 석벽은 길이가 100m, 높이가 3m로 외벽 면은 북쪽으로 나 있고 남쪽으로는 약간 낮은 산발과 이어졌는데 그 산 아래로 범하가 내려다보인다. 이곳 석벽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쌓았던 돌들이 흘러내려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이 석벽 중간쯤 허물어진 돌무더기를 따라 어렵게 밑으로 내려가니 허물어진 돌 틈 사이로 길이가 3m, 너비가 1~1.5m 되는 성벽 외벽 밑 부분이 보였다. 거기서 몇m 떨어진 곳에도 성벽 한 토막이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두 토막의 성벽은 이 산성에서 유일하게 원래 상태대로 보존되어 있는 성벽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이 고장을 다녀갔지만 이 두 토막 성벽을 언급한 이는 한 명도 없다.

범하 강변의 산성 남벽 낭떠러지


북문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나가면 산성 서쪽의 최고봉에 이르는데 그 높이는 해발 316.4m다. 이곳의 성벽 높이는 약 8m이며 토축 벽에 외벽을 돌로 둘러쌓았다. 서북쪽 각대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성벽도 석축으로 되어 있는데 심하게 허물어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중 산성 서남쪽 각대에 이르는 130여m의 석벽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산성은 불규칙적인 장방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 평면 모양이 엄지손가락을 편 오른쪽 손바닥과 흡사했다. 총체적으로 보아 산성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으며 동서 길이가 약 2㎞, 남북 너비가 약 1.5㎞, 둘레의 길이는 5천32m다.

수년 전 산성 안에서는 붉은색의 도자기 조각이 숱하게 널려 있었다고 한다. 이런 도자기 조각에는 흰색의 석영 알갱이가 박혀 있는데 현지 박물관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이런 도자기는 고구려시기의 전형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고구려시기의 붉은 줄무늬기와조각과 와당 파편들도 적지 않게 나왔으며 화살촉과 같은 일부 철제 유물도 나왔다고 한다. 앞으로 공식적인 발굴이 이뤄진다면 더욱 많은 유물이 발굴될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성안 두도구와 이도구의 양지쪽 비탈과 등성이, 그리고 성벽과 가까운 곳에서 사각형, 정사각형 또는 지름이 5~10m인 원형의 크고 작은 구덩이들이 숱하게 발견되었는데 깊이는 약 2m로 이곳 사람들은 이것을 ‘고려갱(高麗坑)’이라고 부른다. 이 구덩이들은 고구려시기 이 산성을 지키던 군사들이 주둔했던 반 지하 건축물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요동벌에 널린 적지 않은 산성들이 그렇겠지만 중요한 관공서나 기타 중요한 건물들이 있었던 곳에서 모두 이런 형태의 반 지하 건축물 유적이 발견되었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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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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