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905.html


[단독] 백혈병 피해 유족에 ‘우수고객’ 조롱한 삼성

반도체 산재 첫 인정 판결 7년 뒤 뒤늦은 합의 이유 보여주는 문건들…

직업병 직시는 뒷전, 피해자·시민단체 이간질에 열중

제1320호 등록 : 2020-07-03 16:34 수정 : 2020-07-07 09:08

2012년 4월18일 삼성 미래전략실이 작성한 ‘우수고객 명단’에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제일 먼저 등장한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이런 언급에 대해 “조롱의 의사가 다분해 보임”이라고 적었다.


2018년 11월,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피해자들,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조정이 최종 타결됐다. 3년간 결렬됐던 ‘삼성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삼성 백혈병 조정위)의 권고를 삼성이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2018년 7월 밝혔고, 4개월 만에 결실을 맺었다. 당시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을 수사하고, 법원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었다.


200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지고 삼성의 사과와 피해보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반올림이 출범한 지 11년 만이다. 또한 2011년 6월 황유미씨가 벤젠 등 유해물질과 전리방사선에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첫 판결이 나오고 7년이 지난 뒤였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래 시간이 걸렸을까?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 노조 와해 재판기록(3만3천 쪽)에 포함된 2011~2013년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내부 문건을 보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① 피해자를 반올림과 분리하라


황유미씨 등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피해자들은 2008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잇따라 했지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삼성은 삼성전자 공장의 작업환경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작업환경과 백혈병 발병 사이에 통계적 유의성이 없다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2008년 12월)와 노동부 권고에 따라 이뤄진 환경안전컨설팅(2009년 12월)을 제시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지만, 인체에 유해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삼성 쪽 주장이었다. 황씨 유족 등 피해자 6명은 산재를 인정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고(2010년 1월), <한겨레> 등이 삼성 백혈병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삼성은 반도체 생산라인을 언론에 공개하고(2010년 4월), 미국 안전보건 컨설팅사 인바이런에 ‘재조사’를 맡기며(2010년 8월) 적극 해명했다.


황씨의 행정소송 1심 선고를 일주일 앞둔 2011년 6월16일, 미전실은 ‘전자 백혈병 이슈 경과 및 대책’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삼성 쪽이 승소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출구전략을 짠 것이다. 이 문건을 보면, 삼성전자 공장의 안전·환경·의료인력 충원 계획 등도 있지만, ‘(반올림의 전신인 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 연계 인력 분리 추진’이라는 전략도 나온다. “유족 등이 합의를 요청할 경우 대책위 연계 정도 등을 고려(해) 협상에 임할 방침”이라고 돼 있다. 반올림을 “소위 ‘꾼’들로서 이를 업으로 삼는 자들. 트집잡기에 혈안이 돼 있는 사람들”(최우수 삼성전자 부사장)로 여기며, “피해자와 이격(사이를 벌려놓음)시키려”(미전실 임원회의 주요 내용)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예측과 달리,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황유미씨 등 2명의 백혈병은 “업무 수행 중 벤젠 등 유해물질과 전리방사선 노출에 따른” 업무상 질병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삼성은 당당했다. 2011년 7월 인바이런사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 공장의 “작업환경이 안전하다”고 반박했다. 당시 세부 조사보고서는 비공개했다. 다만 암이 발병한 퇴직자에 대한 지원계획을 발표한다. 권오현 삼성전자 DS총괄 사장은 “함께 근무했던 동료로서 아픔을 나누고자 비록 질병의 원인이 과학적·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도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삼성의 속내는 피해자를 지원함으로써 “환자와 (피해자) 유족들을 배후 조종하는 불순세력(반올림)을 분리시킬” 목적이었다.((삼성)전자 백혈병 출구전략 관련, 2011년 8월2일)


6월22일 반올림 활동가들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삼성 직업병 대응에 관한 삼성 미래전략실 문건을 살펴보고 있다. 박승화 기자


② “백혈병 발병률 높다” 인정하면서도


삼성의 ‘출구전략’(암 발병 퇴직자 지원계획) 발표는 오히려 반올림과 피해자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이에 미전실은 2012년 1월18일 ‘전자 백혈병 이슈 관련 대책회의’를 마련했다. 정금용 인사지원팀장(부사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홍보·기획·인사 담당 미전실 임원과 삼성전자 김준식 부사장, 최우수 DS총괄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 주요 안건은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삼성전자) 백혈병 이슈가 악용될 공산이 큰바, 의혹 해소를 위한 공세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윤아무개 미전실 기획팀 상무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수가 한나라당이 8명, 민주당이 4명이나, 19대 총선 이후 역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회가 실질적으로 개원하는) 7월부터 백혈병 이슈가 재점화될 수 있으므로 상반기 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 상황을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1심에서 업무상 질병이 인정된 황유미씨 사건 등의 항소심 선고를 ‘미룰지 당길지’도 검토했다. 항소심 선고는 그해 6~7월로 예측됐는데, 19대 국회 개원과 맞물려 백혈병 문제가 주목받을 것을 우려한 탓이다. 당시 삼성은 1심 결과를 항소심에서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아무개 삼성전자 법무담당 전무는 항소심 결과를 “현상유지로 본다. 항소심 재판장이 번복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보고했다. 또 “(항소심) 선고를 미루도록 협의할 수 있으나 재판장이 완고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당시 인바이런사의 조사 결과 보고서 공개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오갔다. 최지성 미전실장은 반올림이 주장하는 삼성 직업병 발병자 수가 부풀려졌다며, “(반올림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는데, 이에 대해 임원들은 “고소하면 삼성전자에서 사실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우리 쪽 자료(인바이런사 조사 결과 보고서 등)를 오픈하는 것이 불가피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반올림과 안전보건 학계에서 주장하던 투명한 조사와 토론 자체를 삼성은 두려워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정금용 부사장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발병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중략) 노출 가능성이 있다고 솔직히 오픈하고 털고 가자. 공격적으로 (인바이런 조사 결과를) 공개해서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해보자. 질질 끌다가 공개하면 불신만 키운다. 합리적 판단보다는 대승적 결정이 필요한 시기다.”


③ 해결 협상에서 또다시 ‘이격’ 전략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발병률이 높다’고 인정한 정 부사장은 “△(인바이런) 재조사 결과 공개 여부·시점·방법 △항소심 선고 지연에 따른 유불리 △사회적 책임을 위한 출연금 기부 △암 발병자 추가 지원 등 출구전략 방안을 재검토”해 ‘백혈병 이슈 종결 대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지만 실제 이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2년 10월 항소심 재판을 지속할 것이 아니라 ‘법적 조정을 받아보자’고 삼성이 반올림에 협상을 제안한다. 2013년 8월부터 본교섭을 진행하기 위한 ‘실무협상’이 열렸다. 당시 실무협상에는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 활동가들이 모두 참여했는데, 삼성은 또 한 번 가족과 활동가 사이를 떼어놓으려 계획했다. 실무협상 내용을 보고한 당시 ‘미전실 임원회의 주요 내용’을 보자.


“반올림 4차 미팅: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주도로는 소득 없이 명분 싸움만 한다는 점을 유족들에게 강조하여 결별 유도”(9월12일)


“반올림 협의, 유족에게 이종란에 대한 불신을 심어 이격되도록 유도”(9월16일)


“백혈병 UN 진정 관련: 협상 중에 UN 진정 등 정치 이슈화는 도의에 어긋남을 엄중 항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이종란의 계획이니 이를 유족 측에 알려서 간극을 벌이도록 할 것”(9월26일)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는 “(삼성과의) 실무협상에서 반올림 쪽은 사과·보상·재발방지 대책을 교섭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반면 삼성은 보상 먼저 논의하자는 입장이었다. 9월12일 (반올림이 작성한) 회의록을 보니, 삼성 쪽 교섭위원이 피해자와 활동가 사이에 ‘생각이 다른 것 같다’고 얘기해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삼성 미전실 문건에 나온 대로 ‘이격’을 위한 발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의 “결별 유도”는 협상 과정에서도 이어졌고, 결국 2014년 9월 가족대책위원회가 구성됐다. 2014년 12월 삼성 백혈병 조정위(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출범했지만 조정에 성공하지 못했다. 2015년 9월 삼성이 자체 보상에 나서자 반올림은 이를 거부하고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3년간 공전하던 삼성 백혈병 조정위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2018년 7월 삼성의 요청으로 재개됐다. 그리고 4개월 만에 사과·피해보상에 관한 최종 합의에 이른다. 삼성전자 공장의 백혈병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정치적 상황을 따지며 문제 해결을 미뤄오던 삼성이 불리한 사회적 상황에 몰리자 뒤늦게 발 벗고 나선 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일지


④ ‘공개수배자’ 비슷한 우수고객 명단


미전실 문건 가운데는 삼성이 백혈병 피해자 가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여주는 내용도 있다. 2012년 4월18일 미전실이 작성한 ‘우수고객 명단’을 보면,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적혀 있다. “황상기, 남, 57세, 고 황유미 부친, 백혈병 관련 핵심인물, 외골수·다혈질 성향, 키 160㎝, 보통 체형.” 이 밖에 삼성이 지목한 ‘문제 인력’과 삼성물산의 경기도 과천 재개발에 반대하며 시위했던 이들을 ‘우수고객’으로 분류했다. 제목만 가리면 ‘공개수배자’ 명단과 닮았다. 이 문건을 휴대전화 메시지로 건네받은 황상기씨는 6월24일 <한겨레21>과 떨리는 목소리로 통화했다.


“말로 폭탄을 엊어맞은 느낌이다. 정말 비통한 심정, 억울함이 몰려온다. 삼성 앞에서 시위하고 농성한 것은 우리 (딸) 유미가 백혈병 걸린 이유를 밝히라고, 산재를 인정하라고 한 것이잖아. 산재 피해자 부모한테 ‘우수고객’이라니,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 ‘법 위의 삼성 미전실’ 연속보도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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