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00910/1/BBSMSTR_000000010417/view.do
<86>태풍으로 돌진한 미7함대
기후와 역사 전쟁과 기상
기사입력 2010. 09.10 00:00 최종수정 2013.01.05 05:54
함재기 150대·구축함 3척·병력 790명 바다에 묻어
태풍의 위성영상.
미7함대 기동전단의 모습.
하와이에 있는 미 연합태풍경보센터 앞에서 기념 촬영했다.(필자는 오른쪽 셋째)
“1991년 10월, 미국 노바스코샤 근해에 폭풍이 인다. 30m 높이로 치솟는 태산 같은 파도, 유리창을 부수며 세차게 퍼붓는 물보라, 거대한 선박도 뒤집어 놓을 듯 포효하는 바람. 그것은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그야말로 ‘완벽한 폭풍’이었다.” 세바스찬 융거가 1998년 7월에 펴낸 ‘퍼펙트 스톰’의 한 대목이다. ‘퍼펙트 스톰’은 곧바로 영화로 만들어져 주목받는 블록버스터가 됐다.
영화 ‘퍼펙트 스톰’은 가난한 어부들의 부초(浮草) 같은 삶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구조 활동을 벌이는 해안경비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빌리 선장과 5명의 선원은 한 달 동안 황새치를 잔뜩 잡아 올려 기분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만선의 기쁨도 잠시, 핵무기 1만 개 이상의 위력을 가진 거대한 태풍을 만나 처절한 정면승부를 벌여야 했다. 거대한 태풍과 강력한 전선이 만나 형성된 완벽한 폭풍, 즉 ‘퍼펙트스톰’은 10층 높이의 파도와 시속 193㎞의 광풍을 몰고 온다. 이들의 사투는 무의미할 뿐이었고 안드레이 게일 호는 처참하게 침몰되고 만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기상학적 자문을 철저히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태풍 중심기압이 1hPa 낮아질 경우 해수면은 약 1㎝ 높아지며, 바람이 50m/s로 불 때 최대 22m의 파고가 형성된다. ‘퍼펙트스톰’에서 시속 193㎞의 태풍이라면 초속 54m 정도의 바람이 분 것으로 판단되고 이럴 경우 태풍 중심기압이 낮아져 상승하는 해수면을 더할 경우 파고는 10층 높이로 형성된다.
보통 태풍으로 일어나는 바다의 사나운 큰 물결을 괴물파도라고 부른다. 괴물파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1만 톤급 철선이라도 괴물파도를 만나면 침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아무리 최첨단 장비를 갖춘 거대한 선박이라도 태풍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만 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에서는 미7함대가 태풍을 만나 함대의 주력을 잃었던 사례가 있다. 레이테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미군은 두 달 후 태평양상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레이테 해전에서 날씨의 도움으로 승리한 지 두 달 만에 날씨로 레이테 전투에서 입었던 피해보다 훨씬 더 심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 12월, 필리핀으로 이동하던 할제 제독이 이끄는 7함대는 강한 북동풍과 산더미 같은 파도를 만나게 된다. 태풍 코브라가 함대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할제 함대의 기상참모 코스코 중령은 파도와 바람이 함대의 북동 방향에서 오는 것으로 보고 태풍의 중심을 함대의 북동쪽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의 조언에 따라 할제 제독은 일단 함대의 방향을 태풍의 이동경로보다 남쪽 방향으로 진행시켰다. 그러자 기압이 다소 상승하면서 파도가 약해지는 것이었다. 기상참모의 말대로 태풍이 북동쪽에 있다고 확신한 할제 제독은 함대의 진로를 남서쪽으로 바꾸고 전속력으로 항진했다. 그러나 실제 태풍 코브라는 함대의 북동쪽이 아닌 남동쪽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함대는 태풍이 올라오는 쪽으로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풍차를 향해 쳐들어간 돈키호테처럼 말이다. 결국 남동쪽에서 올라오는 태풍의 중심과 남서쪽으로 이동하는 함대는 12월 18일 12시쯤 충돌하고 만다. 초속 50m가 넘는 강풍과 20m가 넘는 파도를 만난 미7함대는 미국 해군 사상 자연으로 인한 최대의 재난을 당하게 된다. 무려 150대의 함재기와 3척의 구축함, 790명의 병력을 태평양에 묻고 말았으니 말이다.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든가? 미7함대는 그나마 남은 전력의 많은 부분을 다시 태풍으로 인해 잃게 된다. 6개월 후 태풍과의 무슨 질긴 악연이 있었던지 할제 함대는 바이퍼라는 태풍을 다시 만나게 됐고 지난번 참사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만다. 이번에도 무려 76대의 항공기 손실, 6명 전사, 33척의 함정 파손을 기록했다.
당시 기상지원을 했던 코스코 중령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용할만한 기상자료가 거의 없었다. 현재도 해양의 기상자료는 부실한데 하물며 50년 전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또한 태풍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태평양전쟁에서의 태풍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는 태풍 기상학의 발달을 가져왔다. 괌(Guam)에 미 공군과 해군이 연합해 태풍경보센터(Joint Typhoon Warning Center)를 설립했고, 정기적인 태풍 정찰비행과 함께 본격적인 태풍 연구와 예보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괌에 위치했던 미 연합태풍경보센터는 현재는 하와이로 옮겨져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진로 및 강도 예측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TIP] 최신 항공모함도 태풍 앞에서는 꼬리를 내린다-
태풍은 나가사키 투하 원폭의 1만배 넘는 에너지 갖고 있어
“우리들은 남미에서 순항훈련할 때 남위 50도를 경계로 북상합니다. 왜냐하면 남위 60도는 너무 바람이 강하고 파도가 높거든요. 이곳 뱃사람들이 ‘공포의 60도’(the screaming sixties)라고 부를 정도로 수많은 배가 침몰한 곳이지요.”
세계 최신예 항공모함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함이다. 2003년 취역한 원자력추진항공모함으로서 만재배수량 9만7000톤의 초대형 항공모함이다.
길이 332.8m, 폭 78.3m로 갑판 넓이가 축구장 3배나 되며 5600여 명의 승무원이 탑승한다.
그런데 이 항공모함도 아르헨티나를 거쳐 페루 해안을 도는 순항훈련 때는 남위 60까지 가지 않는다.
최신의 기술로 만들어진 초대형 항공모함임에도 높은 파도와 바람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첨단 장비를 갖춘 거대한 함선이라도 태풍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하는 것은 태풍이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의 1만 배를 넘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대기의 난폭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군기상전대의 태풍예측 기술은 세계적이다. 해군의 대양 훈련 참가나 공군의 항공기 해외훈련에 적극 활용하면 큰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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