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00917/1/BBSMSTR_000000010417/view.do


<87>태풍보다 먼저 상륙하라, 인천상륙작전

기후와 역사 전쟁과 기상

기사입력 2010.09.17 00:00 최종수정 2013.01.05 05:56


`맥아더 리더십'… 6·25전쟁 양상 완전히 뒤바꿔 

'태풍 `케지아' 9월12일경 대한해협 통과 예정 

맥아더, 9월11일 전함대 인천 향해 진군 명령


인천상륙작전 때의 함정 이동로.


인천상륙작전 당시 모습.


함정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시작됐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에 밀려 7월 말 미군과 한국군은 한반도 남동 끝쪽 도시인 부산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좁은 장소로 몰렸다.


유엔군은 포위됐다. 삼면이 적으로 싸였고 후면은 바다였다. 북한군은 집요하게 공격을 계속했다. 유엔군의 병력은 계속 충원됐지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무언가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맥아더 장군은 교착상태에 빠진 전세를 뒤집기 위해 후방지역인 인천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계획하게 된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주장하자 미국의 군부는 온통 반대에 나섰다. 1950년 8월 23일 도쿄에서 열린 회의에는 콜린스(Lawton Collins) 합참의장 및 극동지역 대부분의 육?해군 장군들이 참석했다.


기상대가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인천에서의 조수간만의 차는 10m로 세계적으로 가장 큰 지역이며, 하루에 두 번 발생하고 조류의 속도는 상륙주정의 최고 속도와 비슷했다.


썰물 때 인천은 해변으로부터 5500m나 바다 쪽으로 뻗는 평평한 벌판을 드러내는데, 벌판은 작전하기에 부적합한 갯벌로 이뤄져 있었다. 콜린스 합참의장은 군산을 최적지로, 도일 해군 제독은 포성면을 주장했다.


“인천이 갖고 있는 이런 약점들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군은 우리가 인천에 상륙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허를 찌를 수 있는 이점이 있지요. 인천에서 동쪽으로 40㎞ 떨어진 곳에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 있습니다. 서울은 북한군의 수송과 통신의 중심지입니다. 작전이 성공한다면 남북으로 이어진 보급라인을 차단해 낙동강 지역의 북한군을 지리멸렬하게 만들 수 있으며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또 서울 수복이 한국인에게 주는 심리적인 효과도 매우 큽니다.”


그의 확신에 찬 주장에 8월 28일 미 합참은 인천상륙작전을 승인했다. 모든 육?해군 장군들의 반대에도 맥아더가 인천을 주장한 것에는 나름대로의 분석을 통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7년 전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반도에서 있었던 안지오 상륙작전의 실패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맥아더는 인천이 안지오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확신했다. 첫째, 안지오 상륙작전 때는 이탈리아가 우기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악천후를 보였다. 인천의 경우 9월 중순 이후에는 좋은 날씨가 계속된다. 이것은 공군력을 전투에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둘째, 독일군은 안지오에 상륙할 것을 예측해 대비했으나 북한군은 인천에서의 상륙작전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대비가 거의 없다.


셋째, 안지오의 독일군은 잘 훈련된 정예병력이 있었고 로마로부터 예비 병력의 투입이 가능했다. 인천의 경우 북한군은 낙동강에 주력을 집결시키고 있었기에 수비 병력이 약했고, 예비병력 투입도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됐다. 이에 반해 유엔군은 7만5000명의 정예 병력으로 구성돼 있었다. 거기에다가 맥아더는 인천과 월미도 지역의 지형과 갯벌의 상태를 이용한 효과적인 공격작전을 수립했다.


조수간만을 참조한 D-day는 9월 15일로 정해졌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속이기 위해 기만작전을 실시했다. 9월 12일, 미 육군 코만도 부대와 영국 해병 코만도 부대가 군산 해변 상륙 후 위력수색을 실시했다. 9월 13일에는 미국과 영국의 전함들이 진남포·삼척·원산 일대에 공격준비사격을 했다. 군산 지역에 대한 공중 맹폭격도 이뤄졌다. 북한군은 끝까지 연합군이 군산으로 상륙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9월 초 태풍 제인의 영향으로 일본 고베에 정박하고 있던 상륙함대의 배 7척이 파괴됐다. 미 공군 기상대는 9월 7일 두 번째 태풍 케지아(Kezia)가 마리아나 해협에서 일본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중심최대풍속 125노트인 특급 태풍이었다.


태풍 케지아는 인천상륙작전 전체를 침몰시킬 수 있었다. 미 공군기상대는 태풍이 9월 12일에서 13일 사이에 대한해협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상대는 미리 함대가 출항해 인천 쪽으로 진행하면 태풍의 좌측반원에 들어가므로 항해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기상장교의 건의를 받은 맥아더는 일본에 있던 전 함대를 9월 11일 인천으로 향해 진군하도록 명령했다. 미 공군기상대의 일기예보는 정확했고, 거친 바다에 시달렸지만 함대는 예정대로 인천에 도착했다.


9월 15일 새벽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막을 올렸다. 상륙에 성공한 유엔군은 뛰어난 용맹성으로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한 뛰어난 장군의 리더십이 13일 만에 6·25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이다.



[TIP]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성공 확률 5000분의 1…일거에 역전시킨 `최상의 작전


조셉 사젠트 감독이 1977년 만든 영화 ‘장군 맥아더’에서 그레고리 펙(맥아더 장군 분)이 앞의 대사를 할 때 느꼈던 감동이란!


미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제1차 세계대전 프랑스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장군으로 진급한 후 39세의 나이에 최연소 미 육사 교장이 된 사람이 맥아더 장군이다.


영웅적인 개성과 카리스마적인 위엄과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솔선수범했던 20세기의 마지막 영웅. 그가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이었다.


그는 성공할 확률이 50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참모들의 말에 “아무리 낮은 성공확률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도전하라”며 작전을 감행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무모한 작전이 아니었다. 치밀한 분석에 바탕을 둔 준비, 기만작전의 성공, 기상장교의 조언 수용 등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해서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킨 최상의 작전이었다.


“주여, 약할 때 자신을 분별할 수 있는 강한 힘과 / 무서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담대성을 가지고 / 정직한 패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힘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전투를 앞두고 했다는 맥아더의 기도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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