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92214
"나경원, 내 어깨 쓰다듬으며 '나도 엄마야, 믿어줘' 하더니..."
[인터뷰] "어린이생명을 정쟁에 이용하다니"... 태호 엄마·아빠 이소현-김장회씨
19.12.01 13:07 l 최종 업데이트 19.12.01 16:02 l 정대희(kaos80)
▲ 지난 5월 인천 송도의 한 사설축구클럽 통학차량 운전자가 과속 및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승합차 안에 있던 태호군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태호의 집엔 아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정대희
지난 11월 29일, 국회는 태호 엄마아빠에게 잔인했다. 어린이생명안전법안들이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본회의에 상정된 모든 법안(198건)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했다.
"(국회의장이)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서 민식이법 등에 대해서 먼저 상정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통과시켜줄 것을 제안합니다."(관련기사 : "우리 민식이가 협상 카드냐", 패스트트랙 막으려 '민식이법' 불모 잡은 나경원)
아이들 안전을 볼모로 잡은 '국회 인질극'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태호 엄마아빠는 살이 떨렸다. 아니, 무서웠다. 이들 부부에게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 아니다. 공포의 장소다. 사지가 찢어지는 육체적 고통만 고문이 아니다. 희망고문은 마음을 후벼파고, 정신을 갈아먹었다.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위해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했으나 돌아온 건, 폭력에 가까운 정치 논리였다(관련기사 : 오늘도 눈물 흘린 부모들 "나경원에게 사과받고 싶다").
"아이들 법안 처리과정 보니... '정치인들 정말 나쁘다'는 생각밖에"
지난 11월 30일, 태호 엄마·아빠 이소현씨와 김장회씨를 만났다. 이들 부부는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목구멍에서 '턱' 하고 막혀 못한 말을 쏟아냈다. 그건, 시커멓게 탄 응어리였다. 인천광역시 송도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태호아빠 김장회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요, 일반 소시민입니다. 돈 벌고, 애 크는 거 보면서 살던 소시민이요. 근데, 애들 이름 딴 법안들이 입법되는 과정을 보니, '정치인들 정말 못 됐다' '정말 나쁘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사실 여기까지 온 거, 민식이 아버님이 용기를 내 준 덕분이예요.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주신 뒤에 사람들이 애들 이름을 딴 법안들이 관심을 받게 됐어요. 그 힘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첫 번째 발언할 기회를 얻었어요. 사실 그전까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태호·유찬이법은 국민청원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이미 답변을 받았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게 엄마·아빠들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는데... 법안에 애들 이름만 붙여놨지 휴짓조각이 됐습니다."
태호아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또 다른 태호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을 태우고 색깔만 노란 승합차가 도로를 무법자처럼 달리고 있는 것을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어서 뛰어든 것이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고자 한 간절한 바람은 물거품이 됐고,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대도 잡을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11월 26일) 당정 협의 때, 민주당의 한 의원이 그랬어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찾아가라고. 그래서 한국당 의원실을 찾아가고, 아내가 이채익 의원(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장)한테 무릎까지 꿇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나경원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법안 통과를 가로막고 있다'고 해요.
국회의원들 다 똑같아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요. 해인이법은 3년 넘게 국회에 계류돼 묶여 있습니다. 하준이법도 마찬가지예요. 민식이법만이라도 이번 국회를 통과하길 바랐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까지 막다른 길에 몰리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정치하는 사람들을 믿었다가 이런 꼴이 됐습니다. 정말 어제 기자회견 때 쌍욕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화가 나니 눈물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나도 엄마야"라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말
▲ 태호 엄마 이소현씨를 만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 태호 엄마·아빠 제공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아빠들은 오는 10일 정기국회 마지막날까지는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이 처리되길 간절히 바란다. 정기국회를 넘기고 총선 국면이 시작되면 본회의가 언제 다시 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들이 새로 뽑히고 20대 의원들의 임기가 끝난 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면, 태호·유찬이법은 물론 해인이와 하음이, 민식이 등 아이들의 이름을 딴 다른 법안들은 임기만료폐기될 운명에 놓인다.
앞서 지난 11월 21일 유가족과 '정치하는엄마들'은 2주간 국회의원들에게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 3분의 1이 답했다. 하지만 법안을 공동 발의했는데도 정작 부모들이 내민 동의서엔 답을 주지 않은 의원들도 있었다고. 이번엔 태호엄마 이소현씨가 그 기억을 소환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국회의원실을 죄다 돌았어요. 그런데 한국당 의원 중 동의서에 답해준 의원은 6~7명뿐이었어요. 우리가 다가가면 외면하고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다가온 의원은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11월 27일엔 나경원 대표를 네 번이나 마주쳤어요. 의원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딱 한 번 붙잡고 하소연했습니다. 다음날(11월 28일) 법안심사소위에 애들 이름 딴 법안들이 통과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때 나경원 대표가 제 어깨를 이렇게 여러 차례 쓰다듬으며 '나도 엄마야, 왜 날 안 믿어. 내가 한다고 했잖아. 믿어줘'라고 했어요. 그 말을 믿었는데..."
태호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진정시키려고 숨을 삼켰다.
"그래서 제가 너무 감사하다고 했어요. 그동안 오해가 많았다며, 사과했어요. 언론 보도만 보니 오해가 있었다면서, 몰라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사과를 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올라가 태호·유찬이법을 보니, '반쪽짜리'였다. 중요한 골자는 빠져 있었다."
태호 아빠가 말을 받았다. 뒷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아내가 임신 5개월이에요. 국회의원들한테 동의서 돌리다가 하혈까지 했어요...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가기도 했어요."
법안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반쪽'이 된 태호·유찬이법
▲ 이채익 의원 앞에 무릎꿇고 호소하는 피해자 부모들 태호, 해인이, 민식 군 부모들이 11월 27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장에 들어서는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어린이생명안전법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 남소연
태호아빠는 지난 11월 28일,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과정에서 겪은 일도 설명했다.
"심사 중간에 회의실에서 나온 한 사람이 저희 부부를 불렀어요. 회의하고 있는 방이 아니라 옆에 있던 방이었어요. 거기 가니 그러더군요. '태호·유찬이법은 확대해석의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쟁점이 되고 있다, 보호자 동승하는 것 때문에 (해당 업체의) 인건비가 올라가는 것 때문에 심사가 길어지고 있다'고요. '이 부분을 포기하면 쉽게 통과가 된다'라고요. 우리한테 거래하자는 말이었어요. 우리는 거절했죠."
결국 무늬만 태호·유찬이법을 두른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 4건과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 일부 개정안'은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당초 입법 취지는 '아이들이 탑승하는 모든 노란차를 법령이 규정하는 어린이통학버스로 관리하자'는 것이었지만, 그 취지는 남아있지 않다. 행안위 심사는 정부가 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논의됐다. 태호아빠는 분노했다.
"법안심사를 마치고 이채익 한국당 의원이 나와서 기자들한테 브리핑을 했어요. 태호유찬이법이 통과됐다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골자가 빠진 법안이었어요. 이채익 의원에게 '태호유찬이가 어떤 사고를 당한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이 의원은 '안다'고 하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건네주는 종이를 받아 읽더라고요."
태호엄마가 말허리를 끊었다.
"(이채익 의원이) 5월 15일 인천 송도 축구클럽에서라고 읽었어요. 근데, 읽다가 자기도 기가 막힌 지 멈칫멈칫해요. 그날, 이 법안만 가지고 2~3시간 동안 논의한다고, 시간을 잡아먹었는데... 그때까지도 법안 발의 취지의 정확한 요지를 모르고 있었던 거죠."
태호아빠는 당시 상황을 영화의 장르에 빗댔다.
"코미디에요. 진짜 코미디. 회의실에 들어가 '니네 똑바로 일하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쫓겨나니까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11월 29일 나경원의 긴급기자회견... 그때 무슨 일 있었나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1월 29일 국회에서 민식·태호·해인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필리버스터 신청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태호 엄마·아빠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11월 29일 긴급기자회견 후에 자신들을 만나자고 제안했다고도 말했다. 태호 엄마와 아빠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태호 아빠: "기자회견 직전에 나경원 대표 비서인지, 보좌관인지 모르는 분이 살짝 와서 그랬어요. 기자회견장 옆 방에 들어와 있으라고. 처음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태호 엄마: "기자회견 하는 동안 자리가 협소하니 들어와서 기다렸다가 면담하자고 했어요. 처음으로 나경원 대표가 먼저 요청한 거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기자회견 현장을 못 보게 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안 보고 면담했다면, 기자회견에서 어떤 내용이 나왔는지 모르니까... 또 이용당했을 것 같아요. 깜빡 속아 넘어갈 뻔한 거죠."
태호 아빠: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다면'이라면서 조건을 단 뒤에 '우리 민식이법'이라고 말하는데... 아, 완전히 우리를 협상 카드로 이용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딱 들었습니다."
태호 엄마: "그래서 막 우리가 서러움을 토로하니까, 그 비서인지 보좌관인지 하는 사람이 와서 '지금 면담하자고 하신다'라고 하더라고요. 거절했어요."
태호 아빠 : "우리를 계속 가지고 논 겁니다. 사람이 무서워졌어요. 미운 게 아니라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무서웠던 거죠."
태호아빠에게 물었다. 지금이라도 나경원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아뇨. 안 할게요. 고소당할까 봐 무서워요.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떤 또 다른 위협을 당할지 몰라요. 민식이 어머니도 인스타(인스타그램)에 나경원 대표를 비판하는 글 올렸다가 테러에 가까운 욕이 댓글로 달리고 있어요. 두려워요."
태호엄마가 말을 보탰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우리 취지랑 전혀 안 맞아요. 부모로서 아이들을 지켜달라고 하는데, 왜 거기에 정치 논리로 판단하는지 모르겠어요. 아픔을 가진 부모들이 거기에 껴 있는 상태예요.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납득이 안 돼요. 나경원 대표 기자회견 끝난 후, 더는 '바꿔주세요' '고쳐주세요'라고 못하겠더라고요. 솔직히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아이들이 죽어도 '나 몰라라' 하고 싶은 나쁜 마음이 들었어요."
이번엔 태호아빠는 격분했다.
"이익단체들의 사익을 위해서, 어린아이들 생명을 지켜달라는 요구가 무시됐어요.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들,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에요. 국회의원들 이익에만 반하는 법안이죠. 거기에 왜 우리가 이용당해야 하는 건가요."
향후 계획은 무엇일까.
태호 엄마: "솔직히 어제(11월 29일)부로 부모들 모두 멘탈(정신력)이 나갔어요. 머릿속이 하얘요.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어린이생명안전 관련 법안들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뿐이에요."
태호 아빠: "누군가가 지금 뭘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할 수 있는 건, 다했는데... 변한 게 없어요. 우리 어떻게 해야 하죠?"
"이 나라가 싫습니다"
▲ 지난 5월 인천 송도의 한 사설축구클럽 통학차량 운전자가 과속 및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승합차 안에 있던 태호군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태호의 집엔 아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정대희
2019년, 올해는 태호 엄마·아빠에게 잔인한 해다. 아이를 잃은 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아는 사람들은 혹시나 태호 엄마·아빠에게 상처를 줄까 다가오지 않았다. 불편해하는 이들을 위해 태호 엄마·아빠도 거리를 뒀다.
마음 편히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건, 또 다른 아픔을 가진 부모들을 만난 뒤부터였다. 이때부터 외롭던 일상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11월 29일 후, 태호 엄마·아빠는 좌표를 잃었다. 태호 엄마는 태교는 물론 몸조리조차 못하고 있다. 태호 아빠가 말했다.
"이사를 가야 할 때가 됐는데... 그게 아니라 이민을 가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가 없는데... 이 나라가 싫습니다."
▲ 어린이생명안전법안 무산 지켜본 태호 아빠의 심정 지난 11월 29일, 국회는 태호 엄마아빠에게 잔인했다. 어린이생명안전법안들이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본회의에 상정된 모든 법안(198건)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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