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92385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 없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철수의 상관관계
19.12.02 20:44 l 최종 업데이트 19.12.02 20:44 l 김종성(qqqkim2000)
▲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제3차 회의가 열리는 지난 11월 1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국방연구원 앞에서 민중공동행동 회원들이 협상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희훈
방위비 분담금을 놓고 한·미 양국이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가 이따금씩 삐져나오고 있다. 지금의 갈등이 미군 철수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우려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언론홍보 차장을 지낸 적 있는 앤드류 새먼 <타임스> 한국 특파원이 11월 15일자 홍콩 <아시아 타임즈>에 기고한 기사 '트럼프는 미군을 한국에서 빼내고 싶어할까?(Does Trump want to take US troops out of Korea?)'에서도 그런 우려를 읽을 수 있다.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인상 규모를 고려해볼 때, 일부 사람들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남한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한반도에서 미군을 감축해 본국으로 데려갈 구실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다."
공화당 정권인 아들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한 리처드 아미티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국장을 역임한 빅터 차(한국명 차유덕)가 11월 23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공동 기고한 기사 '66년간의 미·한 동맹, 심대한 문제점에 봉착해 있다(The 66-year alliance between the U.S. and South Korea is deep troble)'에서도 같은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아미티지와 빅터 차는 한국과 중국이 밀착 중인 지금 상황에서 한·미 갈등이 심화되면 미군 철수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지역 패권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미군이 한반도에서 조기에 철수하는 것이 (그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또,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 실패를 미군 감축이나 전면 철군의 빌미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두 사람은 전망했다.
이런 기사들처럼, 방위비 분담금을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시키는 보도들이 계속 나오게 되면, 동아시아 미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상당수 미국인들의 위기감을 자극해(A)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도록 만드는 결과로 연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정반대 결과로 귀착될 가능성도 있다. 미군 철수가 한국 보수파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B) 이로 인해 한국 정부의 협상력이 떨어져, 트럼프가 요구하는 6조원은 아닐지라도 상당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합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A가 미국 여론에 주는 영향보다는 B가 한국 여론에 주는 영향이 훨씬 심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방위비와 미군 철수를 자꾸 연관해서 보도할수록, 트럼프보다는 한국 정부의 협상력이 좀더 약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킬까
위 기사들의 경고처럼, 지금 상황이 크게 악화돼서 미군 철수 문제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일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분노한 한국인들이 토요일마다 촛불을 들고 평택 미군기지로 모여들어 기지 사용료를 요구하거나 10조 원 이상이 될 수도 있는 미군기지 환경정화 비용을 요구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면, 정말로 그것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관련 기사 : '미군기지 조기환수에 신중한 트럼프, 그 치명적인 약점').
필리핀 국민들은 1986년 '피플 파워'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친미독재정권을 무너트린 뒤 반미운동을 벌여 1992년에 미군 철수를 관철시켰다. 필리핀은 1976년부터 미군한테서 기지 사용료에 더해 군사 지원까지 받아냈다. 그런 필리핀에서도 쫓겨난 적이 있으므로, 미국이 지금처럼 한국 국민들을 자극하다가는 'again 1992'가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민중이 직접 나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만족할 만한 분담금을 받아내지 못했다 해서 미국 정부가 철수를 결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위협을 주려고 소수의 병력을 빼낼 수는 있다. 하지만 철군 수준의 대규모 감축은 쉽사리 단행할 수 없다. 한국이 돈을 대주지 않고는 주한미군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 재정이 바닥을 보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미국이 스스로 철군을 결정할 가능성이 적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현재'와 '과거'가 그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로 미국은 러시아보다 중국을 더 경계했고, 그런 정서가 2017년 12월 인도·태평양 전략의 공식화로 구체화됐다. 이 전략 하에서 미국의 최대 주적은 중국이 됐고, 이에 따라 중국 수도 베이징과 가장 가까이에 미군을 두고 있는 한국의 전략적 비중이 더 높아지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한국에서 군대를 빼가는 것은 자신이 수립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진배없다. 태평양을 들어내면 동아시아와 미국이 맞닿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면 미국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트럼프도 이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 파기되는 것을 일본 이상으로 염려했다. 국무부와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이 대거 방한해서 한국 여론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동맹국인 일본의 입장을 배려하기 위해서, 혹은 일본 앞에서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미국 자신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중국 코앞에서 한미일 삼각동맹 혹은 삼각협력이 약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가 자국 안보에 끼칠 영향을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나라가, 지소미아보다 훨씬 중대한 주한미군 철수가 자국 안보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지 못할 리 없다. 기지 사용료까지 내면서 필리핀에 주둔한 나라가, 한국이 분담금을 더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대 철수를 감행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한국 민중이 나서면 몰라도 미국 정부가 나서서 주한미군 철군을 관철시키는 것은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이다.
▲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제3차 회의 지난 11월 18일 오후 동대문구 청량리동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정은보 방위비분담협상대사와 제임스 드하트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을 수석대표로 한 한미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제3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과 관계 풀리지 않는다면 '철수'도 없을 것
'현재'뿐 아니라 '과거'를 봐도,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위의 앤드류 새먼 기사에서, 미국이 철군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 사례로 거론된 게 있다. 1979년 미군의 타이완(대만) 철수가 그것이다. 그때 미군이 타이완을 떠났지만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미국이 마음놓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만드는 역사적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근거로 위 기사에 언급됐다.
기사에서 앤드류 새먼은 "1979년에 미합중국이 타이완에서 실행했던 것과 같은 미군의 남한 철수는, 미군의 전진 배치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 트럼프의 인식에 잘 부합될 수도 있다"면서 아래와 같은 관점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군의 타이완 철수가 중국의 침공을 부추기지 않았듯이, 일부 사람들의 관점에 따르면 미군의 남한 철수도 북한의 침공을 꼭 조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1979년에 미군이 떠났어도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지 않았으므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실망한 미국이 마음놓고 한국을 비울 수도 있다는 이런 분석은, 미군의 철수 결정에 담긴 메커니즘을 간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45년에 미군이 동아시아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였다(A). 하지만, 1948년에 가서 미군의 주둔 목적은 '점령'에서 '견제'로 공식 변경됐다(B). 소련·중국·북한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A 유형에서는 피점령지와의 관계가 철군을 고려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피점령지의 반발이 주둔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유발할 경우에는 철군을 고려하게 된다. 하지만 B 유형은 다르다. 이 경우에는 피점령지와의 관계보다는 '견제 대상'과의 관계가 철군 고려에서 핵심 요소가 된다. 미군이 철군한다 해도 소련·중국·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될 때 철군을 단행하게 되는 것이다.
1949년에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1979년에 대만 주둔 미군이 철수한 것은 B 유형과 관련된 것이다. 1949년에 철수한 것은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했기 때문이고, 1979년에 철수한 것은 그해에 중국과 수교했기 때문이다. 군대를 철수하더라도 적대세력의 위협이 높아지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설 때 미국이 철수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1949년 사례는 미국에 쓰라린 교훈을 안겨줬다. 소련이 철수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군대를 빼냈지만, 예상치 못한 북한의 남침이 이듬해에 벌어졌다. 소련 변수만 보고 북한 변수는 안 봤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때와 달리 1979년에는 중국과 수교를 했다. 그래서 미군의 타이완 철수가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낮았다.
앤드류 새먼의 기사에서는 1979년 타이완 사례가 미군 철수의 근거가 될 수도 있는 관측들이 소개됐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 입장에서는 1979년뿐 아니라 1949년 사례까지 함께 참고할 수밖에 없다.
두 사례를 종합함으로써 나오는 결론은,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은 뒤가 아니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을 빼낸 뒤에도 미국 안보를 지키는 길은 북한과 수교를 해두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게 된다면 그것은 한국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미군을 철수시켜도 북한이 미국 안보를 침해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될 때에야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한테서 방위비 분담금을 만족스럽게 받아내지 못했다고 그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철수를 연결시키는 미국 정계 인사들과 언론 보도에 과도하게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트럼프를 비판하거나 한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해도, 그것이 결국 한국 보수파를 응집시켜 미국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 민중이 나가라고 한다면 모르지만, 북미수교 이전에 미군이 스스로 나갈 가능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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