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4696


북옥저(北沃沮)

1995년 서영대


《삼국지》에 의하면 읍루의 남쪽, 남옥저의 북쪽 800리 되는 곳에 있었다고 하는 바, 그 위치는 대략 지금의 함경북도 북부와 간도(間島)지역으로 추측된다.


또, 《삼국지》에서는 일명이 ‘치구루(置溝婁)’라고 했으나, 이는 북옥저의 다른 이름이 아니고 중심지의 명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 위치에 대해서는 경성설(鏡城說)·혼춘설(琿春說) 등이 있다.


북옥저의 형성시기는 미상이나 최근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후한시대(後漢時代)에 걸쳐 두만강·목단강(牧丹江)·수분하(綬芬河) 유역에 분포한 단결문화유형(團結文化類型)을 북옥저문화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바, 그렇다면 그것은 서기전 4세기까지로 올려볼 수도 있다.


여름에는 읍루족이 배를 타고 와 노략질을 하기 때문에 산 속 동굴에서 살다가 얼음이 얼어 뱃길이 통하지 못하는 겨울이 되면 마을로 내려와 살았고, 그래서 사회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에서는 서기전 28년(동명왕 10) 고구려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하는데, 비록 그 연대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우나 북옥저가 비교적 일찍 고구려의 세력권에 흡수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245년(동천왕 19)에는 위나라의 침입을 받은 고구려의 동천왕이 위나라 현도태수 왕기(王頎)의 추격군에 쫓겨 북옥저까지 피신한 적도 있었다. 북옥저의 풍속은 남옥저와 같다고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지(三國志)

「옥저와 동예」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박영사,1976)

「曺魏の東方經略」 ( 池內宏 ,『滿鮮史硏究 上世』1,1951)

『戰國至兩漢的北沃沮文化』 ( 匡瑜 ,黑龍江文物叢刊,1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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