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61014150407367


또 다른 시조, 태조대왕

[고구려사 명장면 4] 

임기환 입력 2016.10.14. 15:04 


지린성(길림성) 지안(집안)의 국내성 서벽./매경DB


시조 주몽왕(동명성왕) 말고도 시조처럼 불린 왕이 있다. 바로 태조대왕이다. 태조(太祖)라는 시호는 보통 왕조를 개창한 왕에게 붙여지는 칭호다. 고구려에는 엄연히 주몽이라는 시조가 있는데, 주몽왕 외에 태조대왕으로 불린 왕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현재 삼국사기에 전하는 고구려 왕 계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뜻한다.


사실 태조대왕은 여러 가지 의문이 드는 왕이다. 일단 수명부터가 남다르다. 고구려에서 가장 오래 산 왕이라면 장수왕을 떠올리기 쉽지만 기록상으로는 119세까지 산 태조대왕이다. 왕 노릇도 보통 사람 수명보다 훨씬 긴 94년간이나 했다. 그런데 태조대왕만 오래 산 것이 아니라 그의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태조대왕 뒤를 이은 동생 차대왕(次大王)은 76세에 즉위해서 96세 때 정변으로 살해되었고, 차대왕 뒤에는 동생 신대왕(新大王)이 77세에 왕위에 올라 92세에 사망하였다.


삼형제가 모두 장수하고 또 두 왕이 70세가 훨씬 넘어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 왕의 형제 관계와 즉위 과정 모두 매우 수상쩍다는 생각이 든다. 태조대왕이 왕위에 오른 배경도 석연치 않다. 태조대왕 앞의 왕은 모본왕인데 간언하는 신하를 활로 쏘아 죽이는 등 폭정이 심해 백성들의 원성이 많다가 결국 횡포를 못 견딘 시종의 손에 죽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태조대왕이 훌륭한 인품이 있다고 하여 왕위에 추대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불과 일곱 살이라서 어머니가 수렴청정했다. 그런데 유리왕의 막내아들인 태조대왕의 아버지 재사는 이때 나이가 많다고 왕위를 사양했다고 한다. 이렇게 태조대왕의 수명이나 즉위 배경 등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니 삼국사기 기록 그대로 믿기는 어렵겠다.


그리고 고구려 왕실의 성씨가 '해(解)'씨와 '고(高)'씨 두 계통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즉 태조대왕 이전 유리왕부터 모본왕까지는 성이 해씨이고, 태조대왕부터 고씨라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성(姓)이 다르다는 것은 고구려 왕실이 단일 계보가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태조왕계가 주몽왕계와는 전혀 다른 왕계 같지는 않고 아마도 주몽의 방계로서 태조대왕 때부터 왕위를 차지하였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태조대왕의 본래 왕호는 국조왕(國祖王)이다. 태조대왕은 적어도 태왕호가 사용된 4세기 이후에 불린 왕호로 보인다. 그래서 대왕 칭호를 뺀 삼형제의 당시 왕호는 국조왕(祖王)-차왕(次王)-신왕(新王)이다. 우리말로 하면 처음 왕, 다음 왕, 새 왕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보면 국조왕은 고구려의 시조왕이라는 뜻보다 어떤 왕계의 첫 번째 왕이라는 의미가 더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국조왕은 주몽왕 다음의 준시조왕 성격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단지 혈통상 위치가 아니라 그의 업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측 기록인 후한서에는 태조대왕에 대해 그 이름은 '궁(宮)'이며 용맹하여 후한 땅을 자주 침공한 흉악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실제 태조대왕 때 고구려는 현도군, 요동군 등을 지속적으로 공격해 영역을 확장함은 물론 고구려의 위세를 후한 측에 확실히 각인시킨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후한서의 흉악하다는 표현은 곧 후한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해안의 동옥저, 북옥저도 복속시키고, 청천강 일대까지 진출하여 낙랑군을 압박하였다. 이런 대외적인 활동으로 주변 여러 국가에 고구려 위상을 본격적으로 널리 알리게 되었으니, 그런 의미에서도 태조대왕은 당대부터 이미 시조왕에 버금가는 추앙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외정에서만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내치에서도 국내 도성으로의 이도나 5나부 체제 정비 등 국가 기틀을 튼튼히 한 업적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태조대왕의 오랜 재위 기간은 그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남긴 업적의 양을 상징한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며, 태조라는 왕호 역시 고구려를 국가답게 만든 왕이란 뜻으로 음미할 수 있겠다.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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