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asan.grandculture.net/asan/toc/GC07100538


영인산성 (靈仁山城)

서정석


이칭/별칭 : 신성산성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상성리|염치읍 강청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 북쪽 영인산 정상부에 있는 시기 미상의 석축 산성.


영인산성 전경이다. 영인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에워싼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개설


영인산성(靈仁山城)은 아산시의 곡교천 북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영인산(靈仁山)[364m]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체 둘레는 1,000m에 이른다. 흔히 영인산성이 영인면 아산리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행정구역상 염치읍 강청리에 상당 부분이 포함되고, 나머지 구간도 영인면 상성리에 해당한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멀리 아산만과 서해안까지도 조망된다.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 요충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건립 경위


영인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백제 건국 초기의 대두산성(大豆山城)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뚜렷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아산현(牙山縣) 서쪽 5리[약 2㎞] 지점에 신성산성(新城山城)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신성산성은 신성산 정상부에 두 개의 산성을 서로 맞대어 쌓았다고 한다. 북쪽 성은 석성(石城)이고, 남쪽 성은 토성(土城)이다. 또한 고려시대 몽골 침입 시 남쪽 성에 평택 사람들이 난리를 피하여 우거한 사실이 있어 ‘평택성(平澤城)’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성산은 영인산의 옛 이름이고, 북쪽 성은 석성으로 그 안에 우물이 있으며 날이 가물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현재의 영인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영인산성은 영인산자연휴양림을 거쳐 능선 위로 접근하거나, 영인산 산림박물관 쪽으로 직접 올라갈 수도 있다. 성벽의 상당 구간은 염치읍 강청리에 속하며, 강청리에서 북쪽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 접근할 수도 있다.


형태


영인산성은 영인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에워싼 테뫼식 석축(石築) 산성이며, 지형에 따라 부정형으로 축조되었다. 남벽과 서벽이 높고 북벽과 동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형태로 되어 있다. 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어 테뫼식으로 보아야 하지만, 산 아래로 이어지는 계곡부에서부터 산성이 시작되고 있다. 성벽은 대부분이 붕괴되어 극히 일부만 남아 있으며, 그중 잔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곳은 동벽이다.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2.5m에 이른다. 동벽은 가파른 지형 때문에 편축식(片築式)으로 축성하였고, 자연 할석(割石)[쪼갠 돌]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편축식이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방식이며, 허튼층쌓기란 불규칙한 돌을 사용하여 가로·세로줄눈이 일정하지 않게 흩뜨려 쌓는 것을 말한다.


부대시설로는 성문과 건물지, 우물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성문은 동문지와 서문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성곽의 규모로 보아서는 한두 군데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 문지(門址)는 완전히 파괴되어 정확한 규모와 구조는 알 수 없다. 건물지는 정상부와 서벽 근처에 남아 있는데, 특히 서벽 근처에 남아 있는 건물지는 가로 30m, 세로 10m에 이르는 비교적 큰 규모의 건물지이다. 그 외에도 헬기장으로 이용하였던 평탄면도 원래는 건물지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물터 역시 서벽 근처에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고려시대 와당(瓦當)[기와의 마구리]이 수습되기도 하였다.


현황


영인산성은 성벽의 대부분이 붕괴되어 실제로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문지는 완전히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으며, 건물지도 평탄면의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성내에는 오랫동안 미군 부대가 있었고, 각종 시설이 건립되고 있으며, 각지에서 등산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남아 있는 성벽 구간에 붙여 나무 난간을 설치해서 산성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인산성은 아산 지역의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영인면 일대는 물론이고 멀리 서해안까지도 조망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남쪽으로는 아산 지역 최대 하천인 곡교천이 동에서 서로 흘러 아산만으로 들어간다. 영인산성은 백제 건국 초기의 대두산성으로 비정되기도 하여 백제 역사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산성이다. 또한 아산현 치소(治所)[어떤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입지조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산성인 만큼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목적을 자세히 밝힐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충남지역의 문화유적』5-온양시·아산군편(백제문화개발연구원, 1991)

『문화유적총람』-성곽·관아편(충청남도, 1991)

『아산의 문화유적』(충청남도 아산군·공주대학교 박물관, 1993)



영인산성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영인산성 성벽의 모습이다. 성벽의 상당 구간은 염치읍 강청리에 속한다.


영인산성 성벽의 모습이다. 잔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곳은 동벽인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2.5m에 이른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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