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281328001


[단독]마약사범 진술만 믿은 검찰에···비리형사된 경찰의 무죄투쟁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9.12.28 13:28 


위영준(가명) 경위가 2019년 12월 24일 서울 관악경찰서 앞 정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위영준(가명) 경위가 2019년 12월 24일 서울 관악경찰서 앞 정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019년 12월 25일 밤 9시 10분. 그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기사에 실명과 사진이 실리는 문제 때문에 가족들이 걱정을 너무 많이 합니다. 기사가 나간 후 검찰이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최소한 실명은 감추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요.” 


매서운 눈매를 가진 위영준서울 관악경찰서 형사(가명·39)는 자신의 얼굴과 실명이 언론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미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졌고, 그에게 덧씌워졌던 모든 혐의는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당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때 마약사범들을 때려잡던 강력계 베테랑 위 형사는 현재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송치되는 폭력사건 처리를 하고 있다. 앞서 12월 24일 인터뷰에서 그는 “다시 강력계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약사범으로부터 수차례 뇌물을 받고, 범죄를 감춰준 비리형사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온 지난 2년의 기억은 2017년 7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7월 4일 위 형사의 휴대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약사범이자 마약수사 정보원이기도 한 유은상(가명·37)의 전화였다. “형님, 제가…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횡설수설하는 유은상의 전화를 끊은 위 형사는 직감적으로 ‘뭔가 일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전화로 검찰과 경찰이 함께 볼 수 있는 형사사법포털 앱을 열어 ‘나의 사건검색’을 확인했다. ‘피의자 위영준 직무유기 외 3건.’ 그는 피의자 신분이 돼 있었다. 검찰로부터 어떠한 통보도 받은 것이 없었다. 수원지검의 담당 검사실로 전화를 걸었다. “저는 관악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위영준입니다. 제가 지금 피의자로 돼 있는데 지금이라도 조사받으러 들어가겠습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수사관은 그러나 “아닙니다. 그냥 몇 가지 확인하는 게 있습니다”라며 별일 아닌 듯 답했다. 그는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마약사범들이 으레 그렇듯 ‘검찰에 또 허위제보를 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마약사범들이 경찰을 상대로 검찰에 허위제보하는 사례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구치소 재소자들끼리 경찰비위를 찾아 돈을 주고 정보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의 비리를 검찰에 제보하는 대가로 구형량을 줄이고, 공적 조서를 받기 위한 마약·폭력 사범들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영장 갖고 경찰서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 


그가 피의자 신분이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검찰은 ‘혐의없음’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수원지검 사건도 별다른 소환조사 없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은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퇴근 후 그날따라 당시 다섯 살 첫째가 칭얼거리며 떼를 썼다. 혼난 아이는 울다가 잠들었다. 위 형사는 다음 날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출근했다. 아내에게 “퇴근 후 맛있는 것 먹자”고 약속했다. 쌔근쌔근 자던 아이의 얼굴이 그가 아이와의 긴 헤어짐을 하기 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에게는 당시 5살, 3살, 갓 백일이 된 막내까지 3명의 아이가 있었다.


7월 5일. 위 형사는 관악경찰서 강력계에서 동료 형사와 오전부터 피의자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4명의 검찰 수사관이 관악서 강력계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그에게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했다.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형사사법포털을 통해 ‘나의 사건검색’을 한 것을 놓고 담당 검사가 “위영준이 검찰청 내부정보에 불법으로 접속해 수사 중인 상황을 기득, 불법조회했다”고 했다. 그게 체포 사유였다.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나의 사건검색’이 졸지에 ‘불법조회정보’가 돼 있었다. 불현듯 아내와 아이들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때는 분명 자택 압수수색영장도 발부받았을 것이라는 형사의 감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울고 있었다. 아내와 백일 된 아이가 있는 집에도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압수물을 가져갔다. 다행히 첫째와 둘째는 어린이집에 간 상태였다. 그는 “그때가 오전 10시 30분쯤 됐다”고 기억했다. 그의 아내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택배기사의 벨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비리경찰 위영준. 그는 체포된 다음 날 구치소에서 자신의 사건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지켜봤다. “마약수사관이 마약사범으로부터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해줬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가 한창이던 때였다. 모든 언론이 그의 사건을 보도했다. 그에 대한 검찰발 보도는 총 3차례 이어졌다. 그가 체포돼 구속됐을 때 한 번, 기소됐을 때 한 번,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한 번. 그러나 그가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고, 재판부가 검찰의 기소 의도를 의심하고, 항소심 공판검사가 유죄 구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보도되지 않았다. 검찰이 상고했음에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이 난 사실 역시 그의 기사를 썼던 언론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증 없이 마약사범 진술만으로 기소 


체포시한 안에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총 4번의 조사를 받고 구속기소됐다. 그에게 뇌물을 줬다는 자와 뇌물을 주는 것을 봤다는 자, 뇌물을 주는 데 자금에 관여했다는 자, 세 명이 모이니 하나의 증거가 만들어졌다.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검찰은 마약사범 3명의 진술을 근거로 그를 기소했다. 


그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들었던 질문과 공소장을 토대로 구치소 안에서 전략을 짜야만 했다. 대응전략을 적은 노트는 10권을 넘어섰다. 수첩을 머리맡에 놔두고 자다가 불현듯 생각나면 무조건 적어뒀다. 그렇게 적은 것들을 접견 온 변호사와 동료 형사, 아내에게 전달했다. 그의 설명을 토대로 동료 형사들과 아내가 증거물을 찾아냈다. 위 형사는 “검찰이 접견내용을 보고 대응전략을 짤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매 순간 조심했다”고 말했다. 


위영준(가명) 경위가 2019년 12월 24일 서울 관악경찰서 앞 정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위영준(가명) 경위가 2019년 12월 24일 서울 관악경찰서 앞 정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검찰이 범죄사건을 잘 포장해 공소유지에 필요한 법리적용을 잘하는 ‘베테랑’이라면, 경찰은 현장에서 범죄증거물을 찾아내는 데 ‘베테랑’이다. 검찰은 유은상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모텔 지하주차장에서 위 형사에게 현금 200만원을 전달했다고 공소사실에 적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유은상과 위 형사의 휴대전화 위치기록이었다. 당시 유은상의 휴대전화 위치와 위 형사의 휴대전화 위치가 2㎞로 근접해 있어 돈이 오갔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러나 위 형사의 휴대전화 발신 위치가 위 형사 자택이라는 사실은 숨겼다. 그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거기는 내 집이다. 집에 있었다”라고 주장해도 소용없었다. 검찰은 위 형사의 휴대전화 위치가 계속 이동한 사실도 숨겼다. 검찰이 ‘두 사람이 만나 돈을 주고받았다’는 그 시각 그는 장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구글 타임라인과 영수증으로 입증해냈다. 검찰도 이 같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미 위 형사의 휴대전화와 아내의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해 갔기 때문이다.


유은상은 총 11차례 검찰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위 형사가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을 때도 옆방에서 검찰조사를 받았다. 검찰 수사관의 질문에 위 형사가 반박하는 답을 하면, 옆방에서 유은상도 자신의 기존 진술을 번복하고 새로운 진술을 했다. 총 11차례의 검찰조사 동안 유은상의 진술은 11번 바뀌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유은상과 유은상이 포섭한 증인의 진술을 믿었다. 심지어 1심 공판에 출석한 수사검사는 “유은상의 진술이나 다른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고 계속 바뀌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모의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은상이 위 형사에게 뇌물을 주기 위해 또 다른 증인으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시점도 계속 바뀌었다. 유은상에게 돈을 줬다는 증인은 돈을 준 날짜에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매번 진술과 번복, 재진술이 이어졌다. 유은상이 위 형사에게 돈을 줬다는 동기도 계속 바뀌었다.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계속, 반복적으로 신뢰했다. 심지어 유은상이 위 형사와 동료 형사들끼리 먹고 계산한 밥값 25만원까지 자신이 냈다고 진술을 한 뒤 동료 형사가 식당의 영수증, 매출장부를 받아 거짓을 입증하자 검찰은 공소장에서 해당 내역만 삭제하고 기소했다. 


그럼에도 수원지법 1심 재판부는 위 형사의 공소사실 중 일부를 인정,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증인으로 나온 유은상은 이미 검찰이 공소내용에서 제외한 ‘밥값 25만원’ 거짓 증언을 또다시 했다. 검찰은 제지하지 않았다. 재판부도 “경찰 5명이 먹었으면 그 정도 나올 수는 있었겠네요”라고 했다. 


반전은 항소심 첫 공판기일에 일어났다.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장은 1차 기일에서 검사와 피고인에게 “이 사건은 제가 봐도 이상한 게 많아 보입니다. 원심에서 명백히 잘못 판단한 부분이 존재해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위 형사 측 변호인에게 보석신청을 하라고 했다. 이틀 뒤 위 형사는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체포된 지 9개월 만이었다. 


1심 재판부는 위 형사가 재판부에 제출한 증인(마약사범)들과의 전화통화 녹음파일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증인들에게 답변을 유도해 녹음했을 가능성이 있어 증거능력이 없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마약수사관에게 녹음은 필수였다. 마약사범 검거를 위해서는 마약조직 내 정보원이 있어야 했지만 정보원 역시 마약사범이기 때문에 그들을 신뢰할 수는 없었다. 또 짧은 통화 속에서도 수사의 단서를 얻을 수 있어 그는 마약사범과의 전화통화는 매번 녹음해 왔다. 그러나 그가 구치소에 있는 동안 그의 동료 형사들이 속기해 준 60개의 음성파일은 1심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항소심서 무죄 판결, 검찰 상고는 기각 


항소심은 달랐다. 물증도 없이 계속 번복되는 진술에 의존해 꾸며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거기에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기 전 유은상이 구치소에서 위 형사의 동료에게 보낸 편지가 결정적 증거가 됐다. 3장 분량의 편지 안에는 “형님, 진술이 왜곡된 것을 밝히면 위영준 형님이 무죄가 되는지요”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위 형사는 이 편지의 존재를 항소심 결심공판 전까지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결심공판하는 날 이 편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장은 “결심공판 날 제출한 증거는 제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라고 했다. 위 형사는 재판장에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니 한 번만 읽어보고 판단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재판장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읽었다. 선고기일이 미뤄졌다.


속행. 재판장은 유은상에 대한 증인심문이 추가로 필요하니 재판을 한 기일 더 열겠다고 했다. 유은상은 증인으로 나와서조차 편지 내용과 다른 진술을 했지만 항소심은 그의 편지 내용을 86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 담았다. 항소심 공판검사는 구형을 하지 않았다. 공판검사는 최후 의견 진술에서 “이 사건은 여러 가지로 이상한 사건인 것 같습니다. 재판장님께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일명 ‘백지구형’이었다. 선고 날 법정에는 다른 공판검사가 앉아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석에서 눈물 흘리는 그에게 재판장은 “고생 많았다”고 했다. 대법원 역시 2019년 6월 13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는 이제 제자리를 찾으려 노력 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 2년간 소송비용 등으로만 1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형사보상제도가 있지만 최저임금 기준으로 지급되는 보상금만으로는 실질적 피해 회복이 되지 않는다. 검찰이 정말 마약사범들의 진술을 신뢰했는지, 아니면 경찰을 잡아 실적을 쌓을 의도로 진실 앞에 눈을 감고 억지 기소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검찰의 잘못된 기소로 그와 그의 가족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검찰의 경찰 마약수사관 잡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유은상. 담당 수사관은 위 형사를 기소했던 수원지검의 그 검사실 수사관이다(수사검사는 교체됐다).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강서경찰서에서 유은상을 수사했던 또 다른 형사다. 그의 1심 재판은 오는 1월 16일 수원지법에서 끝난다. 어떤 결론이 내려질까. 이번에도 무죄일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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