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0071
이영훈의 무리수, 대표적 독립운동가를 욕보이다
[반일 종족주의 19] 신채호의 소설 <꿈하늘>을 김일성과 연결시킨 그들만의 '논리'
20.01.05 11:37 l 최종 업데이트 20.01.05 11:37 l 김종성(qqqkim2000)
▲ 독립운동가 신채호를 비판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이승
이영훈 등이 공저한 <반일 종족주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삼간다. 이들에 대한 언급을 하기는 하되, 노골적인 공격은 자제하는 편이다.
일례로, 김용삼 전 <조선일보> 기자가 쓴 제15장 '구 총독부 청사의 해체' 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를 비판하는 대목에서 "상하이 임정 요인 유해를 봉환했고,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독립유공자들 속에 공산주의자들이 끼어 있음을 은근히 부각하는 소극적 비판을 하는 데 그친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논리대로라면, 독립운동가들은 항일운동, 아니 반일 종족주의의 최일선에 섰던 인물들이다. 한국을 잘살게 만드는 일본 식민지배를 몸으로 거부한 이들이다. 이 책의 논리에 입각한다면, 이들은 비판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섯 명의 저자들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은 변호하면서도,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일본 식민지배가 한국을 좋게 만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독립운동가들이 쓸데 없는 일을 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 안에서 실명까지 거론되면서 비판을 받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란 명제로 유명한 <조선상고사>의 저자, 단재 신채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독립운동가 겸 역사학자인 신채호는 <반일 종족주의> 내에서 실명이 거론되며 비판받고 있다.
신채호의 소설을 문제삼은 이영훈
이 책 제20장은 이영훈이 담당한 '반일 종족주의의 신학' 편이다. 한국 민족주의를 형성하는 사상적 원류들을 분석하는 부분이다. 제20장의 7번째 소제목은 '신채호의 꿈하늘'이다. 신채호가 쓴 <꿈하늘>이란 소설을 근거로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이영훈의 비판이 여기서 개진된다.
서양 학문의 영향을 받아 역사학과 문학을 엄밀히 구분하는 오늘날과 달리,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양자는 명확히 나눠지지 않았다. 선비 한 사람이 문학과 사학과 철학을 두루 섭렵하는 일이 상당히 흔했다.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적 상상력도 동원하고 역사학적 실증도 하고 철학적 사유도 하는 일이 그리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채호가 역사소설을 쓴 것은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편적인 정보 밖에 제공되지 않은 역사 기록만으로는 인물이나 사건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어서 역사소설에까지 손을 댔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그가 쓴 <을지문덕전>이란 소설은 역사기록으로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에 대해서만 상상력을 발휘하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사료의 간극을 메우고자 소설을 쓰게 됐으리라고 추론케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꿈하늘>은 다르다. 역사기록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의 <단재 신채호 전집> 하권에 실려 있는 이 소설은 50쪽 분량의 단편이다. 이 책에서는 신채호 자신의 역사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이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서술된다. 꿈속의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역사 속 인물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역사의식을 키워가는 신채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반일 종족주의> 제20장에서 이영훈은 "이는 신채호가 민족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 내면의 변화 과정을 서술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민족주의보다는 역사의식의 성장 과정을 다룬 작품에 가깝다.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소설 속의 신채호는 을지문덕·강감찬 등과의 대화를 통해 민족주의가 아닌 역사 인식의 폭을 넓혀간다.
▲ 신채호.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신채호를 민족주의 역사학자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는 그가 민족지상주의자나 국수주의자임을 뜻하지 않는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다. 사실, 그는 동족에 대한 애착을 갖고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주의자로 보기 힘든 사람이다.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을 펼친 약산 김원봉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신채호다. 1923년 1월 김원봉을 위해 '조선혁명선언'이라는 의열단 선언문을 써준 이가 바로 신채호다. 이 선언에서 신채호는 항일투쟁을 왜 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제1은 이족(이민족) 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제2는 특권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제3은 경제적 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제4는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하자 함이다."
"제5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이민족 통치를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민족주의자라 할 수 있지만, 그의 민족주의는 어느 민족이든 이민족의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민족 평등주의였다. 그는 민중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는 기존의 정부를 없애고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왕조를 복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등한 민중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일반적 의미의 민족주의자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영훈은 신채호가 일반적 의미의 민족주의자라는 전제 하에, <꿈하늘>에 나오는 대화를 근거로 한국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가 뽑아낸 것은 소설 속 을지문덕 장군이 말한 '육계(肉界)의 승자는 영계에서도 승자이고 육계의 패자는 영계에서도 패자'라는 부분이다. 현세의 승패나 지위가 내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 말을 근거로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렇게 해석했다.
"신채호가 발견한 민족은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과 같은 위인들의 혼백으로 짜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도망친 사람은 죽어서도 패자이니까 민족의 성원이 될 수 없습니다. 신채호의 표현에 의하면 그들은 '똥물에 튀겨 버려질 존재'입니다. 하찮은 종놈은 죽어서도 종놈이니까 신성한 민족의 반열에 끼지 못합니다. 이렇게 20세기에 들어 한국인들이 발견한 민족은 신분성을 갖습니다. 서민적이 아니라 귀족적인 신분성입니다."
육계의 승패가 영계의 승패에도 영향을 준다는 <꿈하늘> 속 을지문덕의 말을 근거로, 이영훈은 한국 민족주의는 신분차별을 전제로 한 민족주의라고 규정한다. 그런 뒤 이것을 전통적인 무속 문화와 연결시킨다. 부모의 혼령이 이승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식 곁을 맴돌면서 복을 주기도 하고 화를 내리기도 한다는 샤머니즘적 내세관을 끌어들인다. 죽어서도 현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런 내세관이 신채호의 사상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꿈하늘>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이영훈은 추론한다.
하지만, <꿈하늘>의 문맥을 살펴보면, 을지문덕의 말이 신분 차별을 합리화할 목적에서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을지문덕의 말을 정리하는 다음과 같은 소설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옳다, 옳다. 을지문덕의 말이 참 옳다. 육계나 영계나 모두 승리자의 판이니, 천당이란 것은 오직 주먹 큰 자가 차지하는 집이요, 주먹이 약하면 지옥으로 쫓기어 가느니라."
신분 차별을 합리화하는 소설이라면, '천당은 주먹 큰 자가 차지하는 집'이라는 식의 부정적 뉘앙스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뉘앙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을지문덕의 말은 신분 차별을 합리화하는 말이 아니었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민족 독립을 찾으려면 투쟁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말이었다.
<조선혁명선언>에서도 표현됐듯이, 신채호는 신분차별에 맞서 싸우는 투사였다. 그런 사람이 신분차별을 합리화할 목적으로 <꿈하늘>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족주의 공격하기 위한 뉴라이트의 논리
▲ 신채호의 "민족" 개념을 김일성주의와 연결시키는 이영훈 전 교수 ⓒ 이승만 TV 유튜브 캡처
그렇지만 이영훈은 무속적 내세관 및 신분차별적 세계관과 신채호의 <꿈하늘>을 연관시킨 뒤, 이를 근거로 한국 민족주의의 수준을 평가한다. 한국 민족주의를 그의 표현으로 바꾸면 반일 종족주의다.
그는 "서유럽에서 생겨난 민족은 왕과 귀족의 횡포에 저항하는 자유시민의 공동체였습니다"라면서 "그와 달리 한국의 민족은 일반 민서(民庶, 민중)와 분리된, 그 위에 군림하는 독재주의나 전체주의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소설 속 대사를 근거로 한국 민족주의와 신채호 사상이 독재나 전체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 뒤, 이영훈은 다음 단계의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순수 형태로 완성된 것이 다름 아니라 오늘날 북한 세습왕조 체제의 김일성 민족입니다. 북한은 1998년 헌법을 개정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構成)이시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후 북한에서 민족은 김일성민족으로 바뀌었습니다."
김일성 사후에 북한은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격상시키는 동시에 민족의 태양 및 구원자로 칭송했다. 김일성이 생전에 누렸던 지위를 사후에도 계속 향유하는 이 모습을, 이영훈은 신채호의 <꿈하늘>에서 을지문덕이 했던 말과 연관시켰다. 육계에서 승자이면 영계에서도 승자라는 대목과 연결시킨 것이다. 샤머니즘→신채호→김일성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등장한 것이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중 하나인 신채호를 샤머니즘과 김일성주의의 중간에 끼워넣는 이 같은 접근법은 한국 민족주의를 샤머니즘 및 김일성주의와 연관시키는 한편, 독립운동가들을 색깔론으로 묶어 비판할 근거를 마련하는 다중의 효과를 의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민중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지금의 한국 민족주의를 부정하고자, 이를 북한과도 연관시키고, 전통 사상과도 연관시켜보는 뉴라이트(신우익) 일부의 고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고심의 결과로, 신채호가 '선택(?)'을 받아 <반일 종족주의>에서 실명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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