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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성시 (鳳城市)


중문 : 凤城市

지역 : 요령성 단동시    북위 40°02′-41°06′, 동경 123°32′-124°32


단동시 봉성시 시내이다



개설


봉성시는 지리 좌표로 북위 40°02′-41°06′, 동경 123°32′-124°32′에 걸쳐있다. 북으로는 본계만족자치현과 닿아 있고, 남으로는 단동시 진안구, 동항시와 인접한다. 동으로는 관전만족자치현, 서로는 요양시와 수암만족자치현에 맞닿아 있다.


봉성시는 남쪽에 있는 단동 시내와의 거리는 60㎞이고, 북쪽으로 심양시와는 217㎞ 거리이다. 총 면적은 5,477.15㎢이며, 총 인구는 2009년을 기준으로 58만 79백 명이다. 이중에서 만주족 인구가 75%를 차지한다. 하위 행정구역은 3개 시가도와 17개의 진, 그리고 1개 민족향이 있다.


행정구역을 자세히 열거하면, 봉황성가도(鳳凰城街道), 봉산가도(鳳山街道), 초하가도(草河街道), 보산진(寶山鎭), 백기진(白旗鎭), 사리채진(沙里寨鎭), 홍기진(紅旗鎭), 남기진(藍旗鎭), 변문진(邊門鎭), 동탕진(東湯鎭), 석성진(石城鎭), 대흥진(大興鎭), 애양진(愛陽鎭), 새마진(賽馬鎭), 제형산진(弟兄山鎭), 계관산진(鷄冠山鎭), 유가하진(劉家河鎭), 통원보진(通遠堡鎭), 사문자진(四門子鎭), 청성자진(靑城子鎭), 대보몽고족향(大堡蒙古族鄕)이다. 이외에 34개의 사구(社區), 201개의 행정촌이 있다.


봉성시가 속한 단동시에 살고 있는 조선족 인구수는 15,445명으로 요령성 성 내 조선족 인구 비율의 6.53%를 차지하고 있다.



명칭 유래


봉성이라는 명칭은 명대의 봉황성 보루에서 유래한다. 황해의 북안을 장백산이 촘촘히 얽혀 흘러가다가 불끈 솟아 산을 만드니 그것이 봉황산이다. 산 아래 성이 있는데 이곳을 봉성이라고 한다. 청나라 시기에 봉황청을 설치하였고, 1913년 ‘청’자 대신에 ‘현’자를 넣어 봉황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호남성에도 봉황현이라는 같은 이름이 존재하므로, 1914년에 ‘황’자를 빼고 ‘성’자만 넣어서 봉성현이라고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오늘날 봉성시는 전국 시대 말기 진이 육국을 통일하고 요동군을 설치하였고, 한 무제(128)는 무차현(武次縣)을 이곳에 설치하였다. 무차성은 오늘날 대보몽고족향 대보촌 북산촌 일대이거나 또는 봉황성 가도 이민사구 유가보 고성지라고 알려져 있다. 이곳은 모두 요동군 관할이었다. 404년에 고구려가 이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오성[우작거성]주를 설치하였는데, 오성은 봉황산 위에 세워졌으며, 이것이 봉황산 산성이다. 안동 도호부가 설치되면서 봉성은 그 관할이 되었다. 698년 봉성은 발해국의 동경 용원부에 속하였다.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면서 용원현이 되었고 현 동쪽에 용원성[봉성 고성 터]이 건설되었다. 용원부는 염주, 목주, 하주의 3주와 용원현, 회농현을 관할하였다. 1011년 용원부, 용원현이 폐지되고, 개주와 개원현이 설치되었으며, 개원성이 현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오늘날 봉황 고성 터에 해당한다. 1014년에 개주가 다시 폐지되고 개봉부가 설치되었으며 개봉부가 개원현을 관할하였다. 1018년에 개봉부가 다시 개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1125년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봉성은 동경로(요양) 원주에 속하게 되었고, 원나라 시대에는 요양행성 용양로에 속하였다. 명대에 들어와서 1481년 축성이 복황산 북쪽에 설치되었는데 봉황성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요동 도지휘사사의 지휘하에 두었다.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76년 봉황성 순검사를 설치하고 수암 통판의 지휘를 받게 하였으며, 1876년에는 봉황직대청을 다시 설치하여 수암주, 안동현, 관전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1877년 봉황성에 순봉천동변병비도[줄여서 동변도]가 다시 설치되면서 봉황직대청, 흥경청, 수암주, 안동현, 관전현, 통화현, 환인현 등의 2청 1주 4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1913년 봉황직대청은 봉황현으로 개칭되었고, 1914년 호남성 봉황현과 이름이 중복되면서 봉성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봉천성에 속하였다.


1945년 봉성현 정부가 세워지고, 1947년 오동성 관할이 되었다가 1954년 요령성 관할이 되었다. 1985년에 봉성현이 폐지되고 봉성만족자치현이 설립되었으며, 1994년에 봉성만족자치현이 다시 폐지되고 현급의 봉성시가 설치되었다.



자연환경


봉성시는 지형적으로 산지와 구릉성 지형이 발달되어있다. 습윤 계절풍 기후대로서 연 평균 강수량은 1,093㎜이고, 연 평균 기온 7.7℃이다.


유연탄과 철, 구리, 유황철, 붕산, 석회석 등이 풍부하면 전국적으로 소, 양과 관련한 축산품, 그리고 밤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가공 식품 공업으로도 유명하며, 중국 국가의 대외 개방현으로 지정되었다.


봉성시에는 심양과 단양을 연결하는 심단 철도와 도로가 발달되었으며, 봉황산에는 중국 국가 지정 풍경구가 명승지로 유명하다. 이외에 옥룡호, 포석하 원시림, 대리수 화과산, 새마용 동굴군, 애하합자동, 동탕온천, 청나라 시기의 공자묘와 비석 마을, 괴성루 등의 관광 자원이 분포하고 있다. 한국 전쟁 전사자의 위령비도 건립되어 있다.



현황


봉성시는 1997년 현재 총 면적은 5,740㎢, 인구 60만 3,000명이며, 그중에서 만주족이 약 70%를 차지하였다.


2000년 인구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총 인구가 56만 384으로 조사되었으며, 이를 하위 행정구역별로 보면 봉성시가도 10만 2,563명, 봉산가도 5만 3,192명, 초하가도 17,195명, 청성자진 3만 265명, 통원보진 2만 9,334명, 계관산진 2만 4,284명, 홍기진 17,881명, 변문진 2만 719명, 동탕진 2만 2,800명, 대보몽고족진 2만 2,087명, 애양진 3만 7,639명, 새마진 3만 1,841명, 제형산진 15,084명, 유가하진 2만 2697명, 사문자진 14,160명, 보산진 19,302명, 백기진 12,188명, 사리채진 12,751명, 남기진 16,926명, 옥룡진 7,068명, 석성진 2만 633명, 대흥진 9,775명과 같이 인구가 분포한다.


2002년에 옥룡진 등이 폐지되고 3개 가도, 18개의 진으로 개편되었다가 2007년에 대보진이 폐지되고 대보몽고족향이 설립되어 17개 진, 1개 민족향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족들은 봉성시 보위촌 등지에서 수전 농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는데 인근에 대안 화학 공장이 들어오면서 붕산 등의 화학 물질에 의한 관개수의 오염과 토지 오염 문제가 심각하여 이에 대한 토지 보상 문제가 요령성 신문 등에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한상복·권태환, 『중국연변의 조선족』(서울대 출판부, 1993)

최홍빈, 『중국 조선족의 어제와 오늘』(한국민족문화, 1997)

桓仁縣志編纂委員會, 『桓仁縣志』(方志出版社, 北京, 1997)

정신철, 『중국조선족사회의 변천과 전망』(요령민족출판사, 심양, 1999)

沈林, 『中國的民族鄕』(民族出版社, 북경, 2001)

鐵木尒, 『中國民族鄕統計分析与對策硏究』(民族出版社, 北京, 2002)

김경진,「중국의 경우:민족구역자치의 실시」(『민족연구』7, 경기대 민족연구소, 1999)

조선족 사이버 박물관 (http://history.zoglo.net/)

중국 해정 구획 (http://www.xzqh.org/html/show.php?contentid=4204




단동시 봉성시 시내이다. 도로 가에 아파트가 밀집해 있고, 아파트 1층은 주로 상가, 2층부터 주거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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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 답사 지역 자료  https://tadream.tistory.com/12571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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