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tapa.org/article/sfXzb


대통령이 KBS 사극 편성에 관여할 수 있나?

박상희 2022년 01월 20일 15시 09분



공영방송이 PPL 못한다고 5년 동안 사극 한번 안 찍는 게 말이 돼?그리고 왜 뉴스는 사건 사고만 나올까요? 공영방송이면 시청률 신경쓰지 말고 국제 뉴스도 좀 해야지.KBS에 쌓인 수많은 영상 자료도 크리에이터나 국민들에게 제공했으면 좋겠어요.수신료의 가치를 국민에게 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책본부장 대화 / 유튜브 채널 ‘윤석열’ <KBS,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2022.1.12)


‘KBS,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께 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1월 1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42초짜리 영상. 이 영상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주제로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세 가지를 제안한다. 


유튜브 채널 ‘윤석열’ <KBS, 수신료의 가치를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영상에 등장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책본부장. (출처 : 유튜브 채널 ‘윤석열’)


▲현재 방영 중인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처럼 사극을 의무적으로 만들게 하고 ▲국제 뉴스를 KBS 뉴스 9과 같은 메인 뉴스에 30% 이상 편성하게 하며 ▲KBS가 방송 제작과정에서 획득한 비디오 등 콘텐츠를 관리하는 영상 아카이브를 시민들에게 오픈 소스(open source) 형태로 공개하라는 것이다. 


“후보님! 추진할까요?”라고 묻는 두 사람에게 윤석열 후보는 “좋아, 빠르게 가!”라고 말하며 이 내용들을 공약화했다. 


방송법 위반 사항…‘대통령 임명’ KBS 이사회도 편성 개입 불가


하지만 공영방송일지라도 사극을 의무 편성하게 하고, 메인 뉴스의 일정 비율 이상을 국제 뉴스로 꾸리라는 공약은 현행 방송법상 불가능하다. 방송법 제1조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제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하고 있다. 방송법 제4조 4항에 따라 제정된 KBS 방송 편성규약에는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해 취재 및 제작 책임자와 실무자 대표 등으로 구성한 편성위원회를 운영한다고 적혀 있다. 


윤석열 후보 캠프의 KBS 관련 발언이 나온 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성명을 통해 “방송법에 따라 편성 침해의 논란이 큰 얘기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윤 후보에게 “편성 자율성 보장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이 담긴 방송법 개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선대본 내부에서도 해당 공약을 두고 편성 침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 임명 인사로 꾸려진 KBS 이사회도 편성에 개입할 수 없다. KBS 이사회는 방송법 제46조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비상임 이사 11명으로 구성된다. 이사회의 역할은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 방송의 기본 운영계획 등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이다. KBS 이사회 운영 규정 제4조 3항에는 “이사는 직무 수행 과정에서 취재·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및 임직원의 인격과 명예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물론, KBS 이사회를 통한 편성 개입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10월 6일 이사회에서도 류일형, 김종민 이사 등이 KBS 라디오 프로그램 <주진우 라이브>의 진행자인 주진우 전 기자와 고정 패널인 안민석 의원의 적절성 여부를 지적하며 라디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1년치 패널 명단을 제출하라고 제작진에게 요구했었다. 6일 뒤 열린 국정감사에서 KBS 부사장 출신의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신보도지침’이라고 비판했다. 양승동 당시 KBS 사장도 이사회의 제작 자율성 침해를 인정했다. 


2015년 이인호 이사장 시절에는 이사회가 KBS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와 <훈장>, 이승만 정부 관련 보도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식으로 개입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KBS 방송 편성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청와대 인사가 처벌받은 사례도 있었다. 2014년 4월 해경의 세월호 구조 과정을 비판한 뉴스가 보도되자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영방송까지 전부 이렇게 (정부를) 짓밟는다.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한 번만 더 녹음 좀 더 해달라”고 말해 문제가 됐다. 6년 뒤 대법원은 ‘방송 편성에 관한 간섭 행위’로 판단한 하급심 유죄 판결을 수용해, 이 전 수석에게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된 원심을 확정했다. 


KBS 방송 편성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출처 : KBS)


윤석열 후보 측에서는 “편성에 직접 관여하는 대신, 방송사에 일종의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디어스의 최근 보도(1월 13일)에 따르면, 박민영 국민의힘 선대본 청년보좌역은 “방송법에 따라 편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지만,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거나 하는 방식의 ‘하우투’는 고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국민의힘의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남북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면 가산점을 주겠다’는 방통위의 ‘방송평가 개선안’을 지적한 바 있다. 김 의원은 한상혁 방통위원장에게 “(편성에) 가점과 감점을 주는 것은 언론의 편성 자유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었다.


방통위, KBS 편성 계획 합의하는 ‘공영방송 협약제도’ 추진


방통위는 앞으로 KBS와 공영방송의 책무를 규정한 ‘협약’을 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재허가 제도에서 벗어나 KBS의 뉴스 프로그램이나 대하드라마 등의 편성 계획을 함께 논의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사례를 예로 들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어떤 채널에서 특정 프로그램을 몇 시간 이상 편성할지와 같은 구체적인 의무를 정부와의 연간 협약서에 적시하고 있다. 협약은 10년 주기로 체결하며, 영국 정부와 BBC 사이 의견을 조율하는 실무 협의에만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협약 체결 이후에는 BBC가 약속 이행 실적을 담은 연차보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방통위는 2022년에 방송법을 개정해 이와 유사한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익명을 요청한 미디어 전문가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KBS 측에서는 (편성) 간섭이라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합의해 국민들에게 공표하는 것”이라며 “지금의 (재허가) 제도보다 진일보한, 더 투명한 것이고 KBS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BS “영상 아카이브 공개 시작됐다”


이 외에도 국민의힘 선대본에서 언급한 KBS의 문제점, 즉 국제뉴스가 타 방송에 비해 적다거나 사극을 만들지 않는다는 주장, 영상 아카이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KBS의 국제 뉴스 보도는 다른 방송사에 비해 적지 않다. KBS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 9’에선 국제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같은 국제시사 프로그램이 1994년부터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가장 최근(1월 15일)에도 한국 언론 최초로 미얀마 난민캠프를 취재한 내용을 보도했다. ‘오미크론 비상’에 걸린 미국, 대규모 유혈 시위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카자흐스탄 등을 특파원들이 현지에서 취재해 다루기도 했다. 국제시사 프로그램이 아예 없는 MBC와 SBS, JTBC 등과 비교된다. <시사기획 창>, <시사직격> 등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비롯한 국제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2016년 <장영실> 이후 5년 만에 편성된 KBS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포스터. (출처 : KBS)


‘KBS 사극’도 계속 있었다. 2021년 12월에 시작한 <태종 이방원>이 2016년 <장영실> 이후 5년 만에 찾아온 ‘대하사극’인 것은 맞다. 그러나 2021년에 나온 <달이 뜨는 강>, <연모>도 각각 고구려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시대극 <오월의 청춘>도 있었다. 


다만 원희룡 정책본부장의 말처럼, 대하·정통사극 특성상 PPL(간접광고)을 받기 힘들다보니 제작비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KBS 측도 뉴스타파의 질의에 “2021년 5월 수신료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의견 가운데 정통사극 부활을 원하는 요구가 많았다. 시청자들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전격적으로 제작을 결정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6일 KBS는 대하·정통사극과 같은 고품격 콘텐츠 제작 등을 이유로,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3800 원으로 인상하자는 수신료 금액 조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KBS 뉴스는 사건·사고만 나온다”는 지적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자극적인 사건·사고 영상 위주로 뉴스를 제작해 시청률을 올리려는 보도 전략을 경계하자는 뜻으로 해석한다”면서도 “KBS가 자극적인 사건·사고 보도에 매몰돼 있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벌어진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를 예로 들며 “사건·사고 중에도 집중 보도가 필요한 사안이 있다”고 말했다. KBS는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난 1월 11일 관련 리포트를 맨 앞에 3꼭지 배치했고 지금까지 후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KBS의 영상 아카이브 프로젝트 일환으로 2021년 5월 20일 방송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다큐 인사이트>의 '오월의 기록' 중 한 장면. KBS가 보유한 5·18 민주화운동 미공개 영상들을 당시 공개했다. (출처 : KBS)


“영상 아카이브 공개는 이미 시작됐다”는 게 KBS 입장이다. KBS는 자사가 보유한 5·18 민주화운동 영상자료를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5·18기념재단 등 3개 단체와 1월 11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KBS 측은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공익적 활용을 돕기 위해 가능한 범위에서 KBS가 보유한 영상의 개방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제작진

취재 박상희

디자인 이도현

웹출판 허현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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