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9795


"못해도 자신감 가져라" 윤석열 말에 화 난 아이들

[아이들은 나의 스승]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를 본 고교생의 소감

22.02.14 06:06 l 최종 업데이트 22.02.14 06:06 l 서부원(ernesto)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대선 후보들.

▲  유튜브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대선 후보들. ⓒ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홍진경이 잘못했네."

"자막 처리와 사후 편집 덕에 그나마 저 정도 아니었을까요?"


방송인 홍진경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의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후보 편을 시청한 아이들이 앞다퉈 내놓은 반응이다. 지난해 "저토록 무식해도 검찰총장에 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관련 기사 : "저토록 무식해도 검찰총장 오를 수 있다는 게 신기" http://omn.kr/1vnlz)고 혀를 내둘렀던 아이들은 냉소적이 반응을 쏟아냈다.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대개 흠결이나 분란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은 가려지고 장점이 부각되기 마련인데, 다시 또 구설에 휘말리는 게 황당하다고 했다. 그들이 애꿎은 유튜브 운영자를 탓한 것도 그래서다. 


윤석열 발언, 아이들은 놀라워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윤 후보가 고등학교 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기술고와 예술고, 과학고로 나눠야 한다는 발언에만 주목했지만, 아이들은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초등학생도 아는 구인, 구직 앱을 미래 기술로 소개할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분인데, 뭘 더 기대하느냐는 거다. 


아이들은 그가 참담한 우리 공교육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커녕 고민조차 해보지 않은 것 같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학교에서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해법인 양 말하는 그의 '진지한' 표정이 더 어이없다고 했다. 현행 교육과정도 모르는데 무슨 대안 타령이냐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한 아이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의 한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거쳐 검찰총장에 이른 뒤 이제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넘보고 있는 그에게 우리 공교육이 처한 현실이 몸에 와닿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하긴 오로지 검사가 되기 위해 '외길'을 걸어온 그의 이력은 애초 '고등학교 다양화'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한 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 속에서 '꿀을 빤' 그가 자신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공부를 하라는 건 '사다리 걷어차기' 심보다. 적어도 자신에겐 사법고시가 특성에 맞는 공부였다는 뜻일까. 


수직적 고교 서열화로 귀결된 다양화 정책


사실 '고등학교 다양화'는 그가 속한 정당의 뿌리 격인 민자당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한 1995년 '5.31 교육 개혁'이 원조 격이다. 당시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라는 기치 아래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세분화시켰다. 이는 이후 보수 정권 교육 정책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 


자사고와 마이스터고 도입을 골자로 한 이명박 정권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학교 교육 만족도를 높이고,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겠다는 취지로 전격 시행됐다. 이후 고등학교 체제는 국제고, 특목고, 자사고, 자공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일반고 등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보수 정권이 주도해온 '고등학교 다양화' 정책이 '수직적 고교 서열화'로 귀결되었음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고를 나와 로스쿨에 진학하고, 외국어고 출신 의대생이 적지 않았다. 또래들끼리 특성화고를 '소년원'으로 놀려대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고등학교를 다양화시킨다고 해도 대학 입시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는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특성에 맞게 공부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게 공교육의 공정"이라고 지적하는 건 가당찮다.


더욱 황당한 건, 다양한 교육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정시의 비율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수능 위주의 대입 전형이 고등학교 교육을 기출 문제 풀이 중심으로 획일화시키게 될 건 불 보듯 환하다. 획일화한 교육을 혁파하는 것이 공교육의 공정이라고 해놓고선, 입시 공정성을 위해 수능 위주의 전형이 바람직하다는 건 이율배반적 행태다. 


당최 앞뒤가 안 맞는 그의 발언들은 그가 교육 현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없다는 방증이다. 방송 내내 다양성, 공정, 자존감, 국격 등 온갖 좋은 의미의 단어를 늘어놓았지만, 아이들조차 횡설수설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아이들의 반문

 

홍진경의 ‘공부왕찐천재’ 유튜브에 출연한 윤석열 후보.

▲  홍진경의 ‘공부왕찐천재’ 유튜브에 출연한 윤석열 후보. ⓒ 유튜브

 

"홍진경이 잘못했다"고 눙친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예능 프로그램이라지만, 후보를 마냥 띄워주려다 보니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지기는커녕 변죽만 울리다 끝났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자신이 진행자였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거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 질문들에 뭐라 답변할까.


"사교육을 찾는 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목적 아닌가요?"

"필기시험이 음악, 미술의 재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면, 왜 대학에선 필기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걸까요? 또, 필기시험을 없애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텐데 대책은 있나요?"

"학교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가장 자존감이 낮다는데, 인수분해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수분해를 왜 배우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윤 후보는 복잡한 이차방정식을 간단한 일차 방정식으로 만들어 해(답)를 구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기서 질문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작 아이들은 인수분해의 필요성보다 왜 방정식으로 배워야 하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또 학교가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해서 사교육을 찾게 된다는 발언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기술인력을 양성한다는 특성화고에도 진학반이 생기고, 그들조차 사교육에 의존하는 건 오로지 대학 입시 때문 아니냐는 거다. 본말이 전도된 그의 주장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노래만 잘하고, 그림만 잘 그리면 됐지, 필기시험을 볼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발언에는 되치기로 맞섰다. 대입에서 필기시험을 폐지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면서, 그렇지 않아도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예체능 입시의 현실을 동시에 지적한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예술가를 꿈꾸면서도 명문대 진학에 목매단 현실을 직시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분노와 조롱


아이들이 가장 어이없어 한 건 "인수분해를 몰라도 자신감을 가져라"는 발언이다. '수포자'를 두 번 죽이는 꼴이라며 불쾌해했다. 수학은 대표적인 단계형 학습 교과로서 인수분해를 모르면 자연스럽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 현재 고등학생 중 과반이라는 '수포자'에게 수학 수업은 취침 시간이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는 건 격려가 아니라 조롱일 뿐이다. 


요컨대, 아이들은 그를 두고 '교육의 교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그들의 분노와 조롱 섞인 반응을 보노라니, 영상을 괜히 보여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선 후보의 치부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미래세대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향후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금언에 어깃장을 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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