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에서 보이는 황교안..유세장에 '태극기' 숫자 늘고, '성조기'도 재등장
서울의소리 | 입력 : 2022/02/27 [04:04]
"문재인 정권은 좌파독재 중단하라!" (황교안)
"좌파 사회혁명 세력들이 더 허위 반복의 세뇌공작을 계속 해댈 것이다."(윤석열)
묘한 기시감이다. 위의 말과 아랫말의 발언자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위는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의 광화문 집회 발언이고, 아래는 윤석열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의 현장 유세 발언이다.
윤석열 후보는 최근 전국 순회 유세에서 정권교체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지층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입'이 점점 황교안 전 대표의 입을 닮아가고 있다. 친북, 좌파, 반미, 운동권, 공산당, 사회주의, 좌익, 주사 등의 단어가 매 연설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2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단어들을 다시 공론장에서 왕성히 분출하는 셈이다.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집중 유세에 태극기 부대가 늘어가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뿐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재자에 비유하는 한편 현 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일부러'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는 '음모론'까지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광주의 복합쇼핑몰 유치를 민주당이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윤 후보의 입이 색깔론과 음모론에 치중하는 만큼, 그 앞에 모여 있는 '태극기'의 숫자도 확연히 늘고 있다. 성조기도 재등장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황교안 전 대표의 전철을 따라가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중도층 소구력 갖췄던 '정치 신인', 그러나
윤석열 후보와 황교안 전 대표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하나, 두 사람 다 정계 밖에 있다가 입문하게 된 '정치 신인'이었다. 윤 후보는 검찰총장 사퇴 때까지 26년 동안 검사로만 재직했던 인물이고,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장관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냈던 황교안 전 대표도 여의도 경험 없이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둘, 두 사람 다 본래 '중도 확장력'을 기대받았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탄압받았고,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관련 적폐 수사의 1등 공신인 윤 후보는 보수 진영의 '주적' 중 한 명이었다. 그랬던 그가 민주당 정부와 척을 지게 되며 그에겐 '진영 구분 없이 공정과 정의를 추구하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이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층과 진보층에게도 먹히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황 전 대표는 본인의 이념적 지향이 보수적인 것과 별개로, 신사적인 태도와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며 정치권 출신이 아닌 대선 후보의 '품격' 있는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받았다.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황 전 대표는 당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정계에 입문한 뒤 그의 입은 매우 거칠어졌고, 소위 '태극기'로 지칭되는 아스팔트 극우 세력과 긴밀하게 유착됐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에도 '정권심판'을 바라는 여론은 지금의 '정권교체' 요구만큼이나 상당했다. 하지만, 단순히 '반문연대'에 급급해 색깔론과 이념공세에 몰입했던 황 전 대표는, 당 쇄신에 실패하며 선거에서 참패했다. 유력 대선 주자였던 그의 지지율은 더 이상 여론조사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 앞에서 열린 수원 집중유세에 성조기도 보인다. ⓒ 국회사진취재단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주도하에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변모하면서, 가장 우선적인 해결 과제 역시 '태극기'와의 '거리두기'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인정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향한 적극적 복지 정책을 내세우고, 물리력을 동반한 장외 투쟁을 지양하는 등의 과정이 있었기에 국민의힘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의 당심 역시 이러한 민심에 호응했다. 지난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보수 본색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컷오프(경선 탈락)됐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재기를 꿈꿨던 황교안 전 대표 역시 4위 안에 드는 데 실패했다. 대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고, 박근혜씨 구속을 이끈 장본인이 보수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선택됐다.
그런데 막상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윤석열 후보의 행보는 중도층 산토끼를 향한 확장이 아니라 지지층 집토끼를 붙들어 놓는 데에 집중돼 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닦아 놓은 기조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악화일로 겪고 있는 중도층 표심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24일 발표한 조사에서 중도층의 38.8%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동안, 40.1%는 이재명 후보를 택했다(2월 20~23일 조사, 관련 기사: [2038명 매일 조사] 윤석열 41.9% - 이재명 40.5%... 1.4%p차 초접전). 같은 기관의 지난 20일 발표 당시 이 후보는 38.2%, 윤 후보는 39.4%의 중도층 지지율을 얻었다(2월 13~18일 조사, 관련 기사: [3043명 매일 조사] 윤석열 42.9% - 이재명 38.7%... 4.2%p 격차).윤 후보에 대한 중도층 이탈은 여러 조사에서 확인된다.
한국갤럽이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에서의 윤 후보 지지율은 전주 조사 대비 5%p 하락한 34%였다(2월 22~24일 조사, 관련 기사: [한국갤럽] 이재명 38%-윤석열 37%, 1주 만에 다시 초박빙). 이 후보가 이전 조사 대비 8%p 상승한 40%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전국지표조사(NBS)에서는 2월 3주차(2월 14~16일 조사)와 2월 4주차(2월 21~23일 조사)의 중도층 표심이 훨씬 더 선명하게 엇갈렸다. 2월 3주차 조사에서 윤 후보는 중도층에서 37% 지지도를 기록, 이재명 후보(28%)보다 지지를 더 많이 받았다. 하지만 2월 4주차 조사에서는 오히려 이 38% - 윤 32%로 중도층의 무게추가 이 후보 쪽으로 쏠렸다(관련 기사: [전국지표조사] 9%p → 2%p... 이재명·윤석열 다시 초접전).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입이 갈수록 황교안 전 대표의 입을 닮아가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를 향해, 이준석 대표는 안철수 후보를 향해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라며 "이 후보 쪽도 네거티브를 하고 있지만, 정치개혁이나 통합정부 등 포지티브한 에너지도 같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그는 "윤석열 후보의 경우 정치 경험이 없다 보니 자기정치에 취한 것 같다"라며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의 열광에 흥분하다 보면 말이 거칠어지기 마련인데, 이는 황교안 전 대표도 비슷했다"라고 짚었다. "캠프가 정치 신인인 후보의 메시지를 잘 관리해야 하는데,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 캠프 실무자도 같이 '태극기'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악영향을 주고 있다"라는 지적이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대표의 언행은 중도층 표심에 분명히 안 좋다"라고 꼬집었다. 윤 실장은 "유권자들은 기본적으로 싸우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 중에서는 여전히 단일화를 향한 요구가 높다"라며 "이 대표는 상대가 '기분 나쁘게' 말을 잘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단일화를 원하는 지지층에게는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라는 설명이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는 "윤 후보나 이 대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후보와 민주당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라며 "조롱과 비아냥 등 양 진영이 구사하는 언어의 수준과 품격이 지나치게 떨어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안 그래도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 하는데,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더 험한 말이 나올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핵심 지지층은 결집할지 모르지만, 합리적인 중도층은 도리어 투표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기본적으로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더 높은데도 윤 후보가 이를 다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중도층 중에서 정권교체를 원하는 이들의 투표 포기 심리가 커지면, 결과적으로 더 불리한 것은 윤석열 후보 쪽"이라고 짚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 결과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기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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