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6879


서울시장님, 폭우 3일 뒤에 급 토목사업 발표라니요

[주장] 대심도터널은 검토 끝에 백지화된 건데... 민관 조사단부터 꾸려 합리적 대책 만들어야

22.08.13 18:40 l 최종 업데이트 22.08.13 18:40 l 김동언(dtuksim)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폭우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폭우로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오세훈 서울시장님, 최근 며칠간 폭우에 마음고생이 크셨지요. 시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저는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입니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일을 겪지만, 집중호우 피해는 늘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하천의 생물다양성을 풍성하게 하도록 습지를 보호하고 자연성을 회복하자고 외치지만, 자연은 가끔 이렇게 무정하게 인명을 앗아가는 등 피해를 입히곤 하니까요. 


지난 며칠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로 전역에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일 오후에 향후 대책을 발표하셨는데, 상당히 놀랐습니다.  


강남 등 6개소 지역에 깊은 지하공간인 대심도(大深度) 빗물터널 건설 재추진, 빗물펌프장 건설 등 총 3조 원 규모 토목사업 계획이 그 대책의 골자였지요. 3일 만에 어떻게 재빠르게 3조 원 토목 건설계획이 나온 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대심도 터널은 면밀한 검토 끝에 백지화됐던 것인데, 이를 다시 하겠다니요(관련 기사: 폭우 대책으로 10년 전 중단됐던 '대심도 터널' 다시 꺼낸 오세훈).


서울시가 '전광석화'처럼 내놓은 대책...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그 내용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시장님의 이런 판단의 근거는 신월빗물터널이 있는 양천 지역에 침수 피해가 없었고, 강남의 시간당 처리능력이 85mm에 불과해 이것이 대규모 침수피해로 이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기상청 관측 자료를 근거로 서울환경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8일 저녁 침수가 시작된 것은 시간당 30mm도 내리지 않았던 오후 8시께부터였습니다. 과연 언제부터 어느 지역에 침수가 시작됐는지를 면밀히 따져보고, 배수 체계가 잘못된 곳은 없는지 먼저 검증한 뒤 대책을 낼 필요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날, 신월빗물터널이 있는 서울 양천 지역의 비의 양은 시간당 60mm를 넘지 않았고, 일일강수량은 186mm를 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온 양천과 350mm 이상의 비가 내린 강남역 일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만약 시간당 95mm의 빗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직경 7.5m)이 완공됐다면, 강남역 일대에 피해가 적었을까요? 이보다 터널 직경이 큰 대심도 빗물터널(직경 10m)이 있었다면, 이번 같은 피해가 없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과거 사례를 살펴봅시다. 서울시가 2015년 3월에 발표한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에 따르면, 폭우 시 상습침수 원인을 ▲항아리 지형 ▲강남대로 하수관로 설치 오류 ▲반포천 상류부 통수능력 부족 ▲삼성사옥 하수암거 시공 오류의 4가지로 판단하고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이때 대심도 빗물터널의 경우 유입부인 강남역 인근 진흥아파트 일대가 저지대라서(EL 12m), 홍수 때 한강 수위가 상승(EL 15.74m)하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검토한 바 있습니다.


서울시는 그러나 7년 전인 2015년에 계획한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에 따른 대책을, 2022년 아직까지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폭우에 신월빗물터널 용량의 절반밖에 채우지 않았을 정도로 성능 시험 또한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시간당 100mm에 근접할 정도의 폭우를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2019년 7월 신월빗물터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3명 노동자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1390억 원의 예산을 썼습니다. 반포천유역분리터널을 건설하는 과정에도 인명 사고가 있었고, 640억 원 예산이 더 들어갔습니다. 2015년 계획에는 350억 원 정도로 예상했었지요. 결과적으로 공사 과정에서 예산도 더 들고, 공사 기간도 늘어난 셈입니다.


2015년에 나왔던 대책이 아직도 완료되지 않았다면, 이번 폭우 뒤 아무리 큰 예산을 들여 내일 당장 공사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10년이 지나도 이번 폭우와 같은 비에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담한 전망을 하게 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 재난의 심각성을 정부 관계자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공감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30년 빈도' '50년 빈도' 우려 따위의 이야기가 쓸모가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기후 재난의 특성은 예측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사전에 감당하기 위해 매번 더 많은 토목사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아마도 국제사회와 약속한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은 요원해질지 모릅니다. 차라리 때마다 문제가 되는 강남 등 배수체계 전반에 대한 조사단을 민관 공동으로 구성하고, 차분한 조사를 거친 뒤 대책을 내놓는 게 합리적일 것입니다.


예측 어려운 기후재난, 졸속 아닌 장기 대책 필요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집중호우로 목숨을 잃은 가족 3명의 빈소가 차려진 10일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이 총무부장으로 활동했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조합원이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집중호우로 목숨을 잃은 가족 3명의 빈소가 차려진 10일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이 총무부장으로 활동했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조합원이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면밀한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듯한 서울시의 이번 대책은, 그저 '토건족'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한 졸속대책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서울시가 대책 발표를 한 다음날부터 토목 관련 주가가 올랐다는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집중호우로 실종된 분들도 아직 못 다 찾았지 않습니까?


한편 지난 8일 아침,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로 3천만 관광시대 연다"는 제목으로 보도참고자료를 냈더군요. 시장님이 싱가포르에서 본 낙조가 참 아름다웠나 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 3만 석 규모의 수상예술무대 등 '다양한 한강변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거기서 밝히셨다는 소식을 봤습니다.


하지만 시장님, 오세훈 시장님을 떠올리는 한강의 랜드마크는 세빛섬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습니까? 세계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나, 으리으리한 수상예술무대가 없어도 한강의 낙조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한강르네상스 하면 사람들은 토목 사업만 떠올리지만 사실, 본격적인 한강자연성회복 사업을 시작한 것은 오세훈 시장님이잖아요. 서울환경연합을 비롯한 여러 시민환경단체가 세빛섬과 같은 토목사업을 혹독하게 비판했으니 말이지요.


한강의 매력을 더하는 길은, 인위적인 뭔가를 더하거나 짓는 게 아니라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하고 살려나가는 방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에는 콘크리트 아래에 신음하고 있는 공간이 여전히 많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와 3만석 규모의 수상예술무대 등 다양한 랜드마크 계획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한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서울시청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강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와 3만석 규모의 수상예술무대 등 다양한 랜드마크 계획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를 발표한 가운데, 11일 오전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서울시청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덧붙이는 글 | 필자 김동언씨는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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