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tapa.org/article/Tsyv1
김진태, 낙선 후 세금으로 먹고 사는 법
박상희 2022년 10월 06일 20시 00분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이사장으로 있던 연구 단체가 설립 두 달 무렵부터 같은 당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 정책연구용역을 연거푸 따내며 세금 2천만 원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용역을 몰아준 의원은 4명. 이헌승, 박대출, 김태흠, 김용판 의원 등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다. 국힘 의원들로부터 용역을 따낸 단체는 김진태 지사가 21대 총선에서 낙선 후 정치적 재기를 위해 만든 단체로 김 지사의 ‘사조직’처럼 운영돼 왔다. 이 때문에 의원들의 입법·정책 활동에 쓰여야 할 국민의 세금이 낙선한 정치인의 재기를 위한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단체가 의원실에 먼저 연락해 제안하는 방식으로 연구용역을 수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연구 역량이 없었던 이 단체는 직접 연구를 수행하지 않고, 정책연구용역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용역을 줬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정책연구용역의 재하청’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작성된 결과보고서는 심각한 표절로 밝혀졌다. 내용이 부실한 보고서도 여럿 있었다.
‘야인’ 김진태를 위한 같은 당 의원들의 ‘세금 일감’ 몰아주기…표절에 용역 ‘재하청’까지
지난 21대 총선에서 낙선해 여의도를 떠난 김진태 당시 전 의원은 2020년 9월, 연구단체를 만들었다.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당시 김진태 전 의원의 정치적 재기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그런데, 설립 두 달 뒤인 2020년 11월, 연구 실적이 없다시피 한 이곳에 국회의원들이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을 맡기기 시작했다.
설립 1년여 만에 국회의원 4명이 김 전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에 정책연구용역 4건을 줬다. 정책연구용역 한 건에 5백만 원씩, 다 합쳐 2천만 원의 세금이 정치문화연구소에 지급됐다.
용역을 준 국회의원들은 이헌승, 김용판, 박대출 의원과 이후 충남도지사가 된 김태흠 전 의원이다. 김진태 전 의원과 함께 전부 국민의힘 소속이다. 낙선한 '정치적 동지'를 위해 현역 의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용역 일감을 몰아줬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에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을 줬던 전현직 국회의원 4명. 이헌승, 김용판, 박대출 의원과 김태흠 충남도지사.
김진태 전 의원을 위한 동료 의원들의 세금을 이용한 ‘일감 몰아주기’ 결과는 표절과 부실로 얼룩진 정책연구보고서였다.
뉴스타파는 이 연구단체가 내놓은 정책연구용역 결과보고서 4건을 다 살펴봤다. 표절 보고서가 한 건 나왔다. 또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극우적 시각이 반영돼 역사 왜곡의 우려가 있는 보고서도 2건 있었다.
특히 이 정책연구보고서 중에는 연구 수행자가 정치문화연구소 소속이 아닌 것도 있었다. 연구소와 전혀 관련 없는 교수와 박사과정 수료생이 연구용역을 수행한 것이다. 국회의원과 정치문화연구소가 계약한 정책연구용역인데, 정치문화연구소가 또다시 외부 교수 등에게 ‘재하청’을 줬던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취재 1단계 : 이헌승 의원의 표절 보고서
이 모든 취재의 자초지종은 한 개의 표절 보고서에서 시작됐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부산 부산진구을, 3선)이 2021년 10월에 수행한 정책연구용역 결과보고서다. 개발제한구역의 관리 방안을 연구해 썼다는 보고서인데, 다른 자료를 무단으로 베껴 표절률 72%가 나왔다.
전체 보고서 중 40%가량을 2019년 경기연구원이 낸 <경기도 개발제한구역 이용실태와 관리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그대로 가져와 채웠다. 나머지 20% 정도는 국토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정책발간물 <개발제한구역 훼손지 복구제도 개선 방안>을 베낀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참고문헌 목록까지 표절했다.
더구나 표절한 경기연구원 보고서와 국토연구원의 정책발간물, 둘 다 인터넷 포털에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자료이다. 인용이나 출처 표기는 하지 않았다. 이런 엉터리 표절 보고서에 세금 5백만 원이 들어갔다.
이런 엉터리 표절 보고서를 이헌승 의원에게 낸 곳은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였다. 이헌승 의원실이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소규모용역비 지급신청서에 쓰여 있는 계약 상대자다.
하지만 결과보고서 겉표지, 연구자로 추정되는 낯선 두 이름이 적혀 있다. 표지를 넘기니 “정치문화연구소 귀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리고 연구소에 “이 보고서를 연구용역의 최종 성과품으로 제출한다”고 돼 있다. 원래대로라면 ‘정치문화연구소’가 아닌 ‘이헌승 의원실’이 보고서의 제출처로 기재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헌승 의원으로부터 용역을 수주한 정치문화연구소가 거꾸로 용역을 발주한 곳으로 바뀐 모양새다.
정책연구보고서 표지 뒷장에 쓰여 있는 제출문. 정치문화연구소에게 보내는 글로, 이 보고서를 연구용역의 최종 성과품으로 제출한다고 적혀 있다. 장 모 교수와 오 모 씨가 실제 연구자다.
알아보니, 이 보고서를 쓴 두 사람은 정치문화연구소와 관련 없는 인물이었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장 모 교수와 그의 지도를 받았던 박사과정 수료생 오 모 씨가 실제 연구 수행자였다.
현재 장 교수는 한국주거환경학회 명예 회장, 오 씨는 이 학회 운영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학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오 씨의 연락처로 전화했다. 오 씨는 취재진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연락처를 통해 정치문화연구소가 연구용역을 의뢰해왔다고 설명했다.
◻ 오OO 씨 : 한국주거환경학회에 작년에는 (장OO 교수가) 이제 회장님으로 계셨잖아요. 자기네들이 연구 용역을 의뢰하고 싶다.
◼ 기자 : 여기 답변에서 장OO 교수님은 용역 금액은 잘 모른다고 답변을 해주셨기에…
◻ 오OO 씨 : 정치문화연구소에 좀 물어보시면 고맙겠습니다.
오OO / 제주대 겸임교수 (당시 장OO 교수 박사과정 수료)
이헌승 의원이 정치문화연구소에 정책연구용역을 맡겼는데, 정치문화연구소가 장 교수와 오 씨 두 사람에게 다시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황. 이 비정상적인 용역 하도급 구조에서 표절 보고서가 만들어졌고, ‘입법 및 정책개발비’라는 국민 세금 5백만 원이 낭비됐다. 이 5백만 원이 누구 손에, 얼마씩 쥐어졌는지도 알 수 없다. 장 교수와 오 씨 등에게 얼마씩 받았는지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헌승 의원이 정치문화연구소에 정책연구용역을 맡기고, 정치문화연구소가 장 교수와 오 씨에게 다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정책연구용역에서도 하청의 하청이 벌어진 것이다.
장 교수와 오 씨는 이후 서면 답변을 통해 “정책연구용역 결과보고서는 학술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표절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학술 논문과 달리 정책연구보고서는 선행 연구된 내용을 단순히 정리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해명이다. 그러면서 “출처와 인용 표기를 하지 않은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취재 2단계 : 연구용역 재하청 준 정치문화연구소, 대표자는 김진태
그렇다면 자체 연구 능력이 없는 정치문화연구소에 이헌승 의원은 어떻게 정책연구용역을 맡기게 된 걸까. 뉴스타파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이헌승 의원이 국회에 낸 용역비 지급신청서에 쓰여 있는 연구소 대표자 이름, 김진태. 바로 김진태 강원도지사다.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는 김진태 도지사가 2년 전 전직 국회의원일 때 만든 단체다. 21대 총선에서 떨어진 이후 5개월 만에 세웠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적힌 설립 목적은 “대한민국 정치문화에 관한 조사와 연구”다.
하지만 김 도지사는 이 무렵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문화연구소를 “제가 재기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소개했다. 또 연구소에 매달 회비를 내는 창립 후원 회원이 돼 달라고 홍보도 했다. 김 지사는 연구소 설립 3개월 만에 열린 행사에서 “뭐라도 한번 해보려고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런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지 뭐라도 좀 한번 해보려고 이렇게 만들게 됐습니다. 제가 선거에 떨어지고 나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운전도 직접 해야지, 문자도 다 보내야지, 사무실도 내가 다 만들어서 운영해야지 이렇게 하다보니까 어떤 이런 공간이 좀 필요했던 겁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 당시 정치문화연구소 이사장 (정치문화연구소 온라인 발대식, 2020.12.10)
김진태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사진. 당시 김 전 의원은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를 “자신의 재기를 위한 발판”이라고 소개하며 후원 회원 가입을 독려했다.
연구소 이사진은 김 도지사의 측근으로 채워졌다. 과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으로 박근혜 정권의 방송 장악을 주도했고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입방아에 올랐던 고영주 자유민주당 대표도 이 단체의 등기이사다. 2020년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서 고영주 대표는 김 도지사를 “검사 생활할 때부터 정말 아끼는 후배”라고 설명했다. 또 “(김 전 의원이) 정치문화연구소를 만드신다기에 보지도 않고 찬성하고 영광스럽게 이사 자리까지 주셨다”고 말했다.
김 도지사의 현역 의원 시절, 정책보좌관이었던 김용균 강원도 신임 대변인, 김진태 강원도지사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법률지원단장으로 일했던 강대규 변호사가 단체의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문화연구소는 김 도지사의 지역구였던 춘천과 서울 강남구 건물에 각각 사무실을 차렸다.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서울 주소로 찾아가 보니, 연구소가 있던 공간에는 이미 다른 회사가 입주해 있었다. 이 건물 경비원은 김 도지사와 인사를 주고받곤 했다며 “강원도지사 당선되고 바로 강원도로 갔다. 난을 하나 주고 갔다”고 기억했다.
남춘천역 인근에 연구소 분사무소도 가봤다. 불은 꺼져 있었고 사무실 문도 닫혀 있었다. 연구소를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김진태후원회의 회계 담당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는 지난 지방선거 기간에 후원회가 연구소 공간을 임시로 빌려 썼다고 말했다.
이 후원회 관계자는 “(김진태) 지사님 되고 바로 이거(연구소) 운영을 안 한다”고 했다. 연구소를 후원하는 회원들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묻자 “지금 다 회비 안 받는다. 회원이 없다”고 답했다. 실제 6월 1일 지방선거 이후인 6월 30일, 김 도지사는 이사장직에서 사임했다.
춘천의 연구소 사무실 앞에서 만난 김진태후원회 관계자. “강원도지사 당선 이후 연구소 운영을 안 한다”고 뉴스타파에 설명했다.
취재 3단계 : ‘김진태 사조직’ 정치문화연구소, 활로는 국회 정책연구용역
이처럼 정치문화연구소는 낙선 후 강원도지사 당선 전까지, 김진태 전 의원은 이 단체를 활용해 후원금을 모으고 지지 세력을 키우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체는 사실상 김 전 의원의 사조직으로 운영됐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발주하는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을 통해 받은 세금은 이 연구소가 찾은 자금줄 중 하나였다.
2020년 11월에 국민의힘 김용판(대구 달서구 병, 초선), 박대출(경남 진주시 갑, 3선) 두 의원이 이 연구소에 정책연구용역을 맡겼다. 2021년 3월에는 지금은 충남도지사인 김태흠 전 국민의힘 의원(충남 보령시서천군, 3선)이, 2021년 10월에는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정책연구용역을 이어 발주했다.
이헌승, 박대출, 김태흠 세 의원은 19대와 20대 국회 8년 동안 김 도지사와 동거동락한 사이다. 국민의힘 안에 친박계 인사들이다. 서울지방경찰청장 출신으로 초선인 김용판 의원은 2019년 당시 김진태 의원과 국회 정론관에서 회견을 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것과 관련, 그는 허위사실 유포를 주장했다. 김용판 의원은 김진태 의원이 동참한 이 회견을 통해 총선 출마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도지사와 가까운 4명의 의원들이,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김 도지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치문화연구소에 정책연구용역을 몰아준 배경은 더 있다. 뉴스타파는 연구소 사무국장과의 통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이런 거 연구하고 싶은데 좀 도와달라. 거의 다 국힘당(국민의힘)의 의원님들이시고. 그 (상임)위원회 (찾아서) 우리들 얘기를 좀 들어주실 만한 의원님들한테 부탁을 드린 거예요.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 사무국장
국회의원이 입법 및 정책 개발 활동에 보탬이 되려고 연구소를 찾은 게 아니라, 연구소가 거꾸로 국회의원을 먼저 찾았다. 자신들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역으로 제안해 정책연구용역을 따냈다.
사무국장의 말은 국회 연구용역 수행의 주객이 뒤바뀐 것이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국회의원은 자신이 추진하는 입법과 정책 활동에 도움될 만한 외부 연구자를 찾아 연구용역을 맡기는 방식으로 용역이 수행된다. 그런데 거꾸로 연구자가, 즉 정치문화연구소가 국민의힘 국회의원실에 먼저 전화를 걸어 연구소가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취재 결과는 세금이 투입되는 국회의원의 정책연구용역이 의원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연구소의 필요에 의해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연구소의 필요에는 세금을 타내기 위한 재정적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연구소) 사무국장으로 계시는 분이 국토교통 분야 쪽에 자기네들도 연구 범위를 확대하고 이렇게 키우고 싶다, 하여튼 이렇게 좀 계속 연락이 왔었어요. 사실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것들을 (의원실도) 계속 보고는 있었어요. 법안을 발의를 안 했을 뿐이지...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
이런 식으로 진행한 연구용역이 법안 발의 등 입법 활동에 반영될 리가 없었다. 세금 낭비는 물론 특정 정치인을 위한 정치자금으로 유용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취재 4단계 : 전문 연구자가 아닌 연구소 후원 회원들이 썼다
연구소 사무국장은 이헌승 의원실과 계약한 개발제한구역 관련 정책연구용역을 연구소와 무관한 외부 전문가에게 넘긴 이유도 해명했다. 연구소 역량으로 할 수 없는 전문 분야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머지 3건의 정책연구보고서도 전문 연구자가 아닌 연구소 후원 회원들이 썼다고 말했다.
◼ 기자 : 그럼 회원 중에 이 연구는 제가 할게요, 이렇게 손 든 거예요?
◻정치문화연구소 사무국장 : 그게 잘못된 겁니까? 아주 아주 전문 있는, 허가 받은 사람만 연구할 수 있는 거예요?
◼ 기자 : 그럼 오OO 씨(정치문화연구소 회원)는 대학원생이세요?
◻ 정치문화연구소 사무국장 : 네.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 사무국장
정치문화연구소 회원이자 대학원생이라는 오 모 씨가 수행한 국회 정책연구용역은 2건이다. 하나는 KBS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분석했고, 또 하나는 자영업자에 대한 각국의 코로나19 지원책을 조사한 연구용역이다. 한 명의 연구자가 교집합 없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주제를 동시에 수행한 것이다.
결과보고서의 내용이 부실한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박대출 의원이 발주해 오 씨 등이 작성한 <KBS시청자위원회 회의의 방만 운영 분석 (29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극우적 시각에 따라 쓰여졌을 뿐 아니라 역사 왜곡에 가까운 문장도 여럿 포함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을 “북한에 동조한 인물”이라고 표현한 게 일례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박영심 할머니의 영상 기록을 두고 “할머니가 북한에 있고 북한 당국에 의해 움직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용판 의원실의 정책연구보고서에서 발견된 오점. 4·19 혁명을 4·16 운동이라고 잘못 썼다.
김용판 의원실이 맡겨서 써낸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중 선거권 확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4·19 혁명을 ‘4·16 운동’이라고 잘못 쓴 게 눈에 띈다. OECD 국가의 선거 연령을 표로 정리해 제시했는데, 출처는 ‘법무부 자료’라고만 표기했다. 구체적인 자료명과 작성자, 작성일자 등은 따로 없다.
‘성인 연령’을 나라들마다 일괄 특정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민법과 형법 등 법마다 성인 연령의 기준도 다를뿐더러, 유사한 척도인 음주 연령과 흡연 연령, 혼인 연령 등도 나라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이거는 연구 용역을 했다라고 볼 수가 없는, 아니 500만 원짜리 연구 용역이면 500만 원의 값은 아니어도 한 100만 원 정도, 뭔가 하여튼 의정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대학생 리포트 수준도 안 되는 그런 걸 500만 원짜리 정책 연구 용역의 결과물이다라고 인정할 수가 없죠.
하승수 변호사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국회의원들, 죄송하고 황당하지만 국고 반납 약속은 안 해
뉴스타파는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에 정책연구용역을 발주해, 세금 2천만 원을 집행한 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연락해 해명을 요청했다. 정책연구보고서의 표절 또는 부실을 알고 있었는지, 연구용역을 맡길 때 정치문화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진태 전 의원이라는 점이 고려됐는지 물었다.
이번에 정치문화연구소로부터 표절 보고서를 받은 이헌승 의원은, 5년 전에도 표절 정책자료집을 발간한 사실이 뉴스타파 보도로 드러난 바 있다. 2013년 10월에 이 의원 이름으로 발간된 <철도 폐선부지의 관리제도 개선방안> 정책자료집이, 단어 몇 개만 고쳤을 뿐, 석사학위 논문을 통째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던 것.
이헌승 의원실 “당황스럽고 황당하다”
이헌승 의원실 보좌관은 2017년 뉴스타파 보도 이후 이 의원도 표절 여부를 신중하게 봤다면서 “당황스럽고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정책연구용역 의뢰하는 과정에서 김진태 전 의원이 연구소 이사장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 기자 : 연구용역비 지급신청서 쓸 때 거기 이제 단체 이름 써 있고 대표자 이름 쓰잖아요. 근데 그 (대표자) 김진태가 그 김진태 (전 의원)인 거는 인지를 못하셨다는 거예요?
◻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 : 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
김용판 의원실 “죄송하다”
김용판 의원실 측은 공직선거법, 선거권 확대와 관련한 정책연구용역인 만큼 정치인 출신이 맡으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진태 전 의원이 정치문화연구소를 만들고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다만 사실과 다른 내용 등이 정책연구보고서에 포함된 것은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확하게 이게 어떤 부분이 오류인지는 전문가가 저희가 아니니까… 그 부분은 저희가 잘못한 거니까 그거는 죄송합니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 보좌관
박대출 의원 '묵묵부답'
박대출 의원은 뉴스타파가 관련 질문을 하려고 하자 전화를 중간에 끊었다. 박 의원실 쪽에 연락하고 질의서도 전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국회를 찾아 연락했지만, 수화기 너머 박 의원실 관계자는 “다시 연락주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회신은 없다.
◼ 기자 : 저희가 지금 본청으로 좀 가도 될까요?
◻ 박대출 의원실 관계자 : 그 내용을 지금 아시는 분이 지금 다들 안 계셔서… 일단 그러면 메일로 좀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 기자 : 제가 메일로 질의서를 보내드렸고, 이 연구보고서라는 거는 아시겠지만 의원님 사이트에 다 공개돼 있는 거예요.
박대출 의원실 관계자
김태흠 충남도지사 “기억나지 않는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의원일 때 정치문화연구소에 정책연구용역을 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김진태 전 의원과의 친분이 연구용역 계약에 작용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 기자 : 연구 수행한 이 기관을 어떻게 선정하게 되셨는지 좀 그런 게 궁금해서…
◻ 김태흠 충남도지사 : 내가 모르겠는데, 500만 원 이런 것은 의원한테 보고를 않고 보좌진들이 할 수 있거든. (김진태 전 의원이) 나하고 친분이 있고 하니까 (보좌진에게) 연락이 와서 맡길 수도 있었겠지. 추측해 보니까 그렇잖아요.
김태흠 충남도지사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뉴스타파의 연락을 계속 받지 않았다. 강원도에 질의서도 전달했지만 “표절인 줄 몰랐음”이라는 내용의 짧은 문자 메시지가 대답의 전부였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표절인 줄 몰랐음”
이헌승과 김용판, 박대출, 김태흠까지 전현직 국회의원 4명 모두 공식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또 세금을 “반납하겠다”고 밝힌 이들도 없었다.
동료의원들로부터 용역을 받는 수혜를 입은 김진태 강원도지사에게도 입장을 들으려고 강원도에 질의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표절인 줄 몰랐음”이라는 내용의 짧은 문자 메시지만 보내온 상태다.
시민단체 “비정상적 연구용역” “재하청 내역도 사무처가 받아내야”
정치문화연구소의 김진태 이사장과 친분 관계에 있는 동료 의원들이 벌인 세금 오남용 행위.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는 정상적인 연구용역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4명의 국회의원이 지원해 준 건 연구용역이라고 보기 어렵죠. 사실은 그냥 재정 지원을 해 준 거죠. 친분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연구 영역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고 또 실제로 필요한 연구 용역이라면 모르겠으나, 연구용역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도 안 되고. 그냥 형식만 서류만 꾸며 국회사무처 예산만 받아내면 된다, 이건 뭐 말이 안 되는 거죠.
하승수 변호사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뉴스타파는 국회사무처에도 질문을 던졌다. 소규모용역비 지급신청서에 기재된 계약 상대자가 연구를 수행하지 않고, 제3자에게 다시 연구용역을 줘도 되는지 물었다.
국회사무처는 “해당 의원실이 별도의 제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연구용역의 재하청을 사실상 용인하는 식의 답변이다. 이이 대해 뉴스타파와 예산 감시 협업을 진행 중인 시민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재하청하면 안 되죠. 본인 연구소가 쓸 수 있는 역량이 안 되면 쓰지 마셔야죠. ‘우리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하는 걸 증명하고 싶으시면 재하청 과정의 계약서 그리고 예산 집행 내역 다 제출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국회사무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연하 /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국회사무처는 연구용역의 재하청을 사실상 용인하는 식의 답변을 보내왔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에게 정치문화연구소는 그의 말대로 재기를 위한 발판이 됐다. 연구소와 함께 전직 국회의원에서 민선 8기 강원도지사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고, 김 도지사는 지난 7월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문화연구소가 국회의원들로부터 따낸 정책연구용역, 그 결과보고서는 정작 의원들의 입법 및 정책 개발을 위한 발판이 되지 못했다. 세금 2천만 원이 들어간 정책연구보고서 4건이 국회의원의 입법과 정책 개발로 이어진 구체적인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뉴스타파는 김태흠, 박대출, 김용판, 이헌승 의원 등 21대 의원들이 수행한 정책연구용역의 지출 증빙 서류 원본과 결과 보고서 497건을 <뉴스타파 머니트레일>에 공개한다. 의원 이름을 검색하면, 얼마의 세금을 투입해 어떤 주제의 용역을 수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작진
영상 취재 이상찬, 정형민
편집 정애주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데이터 최윤원
리서처 강유진, 홍채민
공동 기획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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