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1547

 

정진석의 대한제국 멸망론, 그가 빠트린 핵심 맥락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전쟁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군사 위협과 외교 압박이 있었다

22.10.12 13:24 l 최종 업데이트 22.10.12 13:24 l 김종성(qqqkim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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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 인력양성의 대전환! 강원도가 시작합니다>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 남소연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이 논란이다. 대한제국 멸망에 대해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고 한 그의 발언은 한미일 군사훈련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이를 '친일 국방'이라고 공격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하다가 나왔다. 정 위원장의 발언은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망하는 나라엔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런 약점도 없다면 망국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한제국이 문제가 많아서 멸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멸망의 책임을 망한 나라에만 돌리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인식은 흔히 가해국가에서 나타난다.

 

악질적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시대에 벌어진 침략

 

대한제국의 멸망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아프리카를 대대적으로 침략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발생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타민족 착취 방식인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물이었다. 남의 나라 영토를 빼앗고 현지인들에게 세금을 받아 국고를 늘리는 식의 고전적 침략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국민뿐 아니라 타국민의 노동력까지 가혹하게 착취하는 방식이었고, 타국을 자국 경제의 필요에 맞게 원료공급지나 상품판매지 또는 자본시장으로 개조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나라의 경제적 환경을 오염시켜 그곳 주민들의 자립을 곤란케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아프리카 민족들이 식민지배를 경험했다. 정 위원장처럼 '무능해서 망한 것'이라고 치부하면, 제국주의 침략의 재연을 막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국주의 가해국의 잘못을 밝히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정 위원장은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왕조를 집어삼켰다"라고 써놨다. 조선의 무능을 부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의 행위를 '국운을 건 무력제압' '쓰러져가는 나라를 집어삼킨 것'으로 표현했다. 이런 서술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쪽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제국주의가 인류에게 끼친 해악을 철저히 인식한다면, 일제의 대외 침략을 이런 식으로 서술하진 않을 것이다.

 

전쟁은 없었지만... 군사적 위협과 외교적 압박이 있었다

 

▲  고종과 원로대신들. 가운데 고종을 기준으로 왼쪽에 이용원, 김성근, 김윤식, 심상한, 이정로이고 오른쪽으로 김병익, 민종묵, 서정순, 이주영, 김영전이다. ⓒ wiki commons

 

'무능해서 망한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그의 글에 나타나는 또 다른 논리는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멸망시킨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다. 정 위원장은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라고 질문한 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고 자문자답했다. 지금의 한일군사협력이 일본군의 한국 주둔으로 연결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의식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일련의 늑약(조약)들을 통해 대한제국에 대한 권리를 확장해가는 방법으로 나라를 무너트렸다. 정 위원장의 말처럼 전쟁을 벌여 멸망시킨 것은 아니다.

 

1905년 11월 17일의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은 일본이 외교적 방식으로 대한제국을 쓰러트렸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1910년 한국 강점 뒤에 일본이 지주와 양반들의 기득권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쟁 승리를 통해 한국의 기득권 구조를 파괴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처럼 일본이 외교적 방식으로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어떤 경우에 상대국을 외교적으로 몰락시킬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일본 외교관들의 화술과 협박만으로 그것이 가능했으리라고 볼 순 없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는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1875년에 강화도 앞바다에서 군사 도발을 벌인 뒤 이듬해에 조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조약)을 강요해 조선 시장을 개방시켰다. 1882년에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자국민 보호를 명목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다. 1894년에 동학혁명(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 1882년과 1894년의 일본군 출병은 조선 정부의 요청이 없는 상태에서 단행됐다. 실질적으로 침략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군사행동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발언권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 외교관들이 목에 힘을 줄 수 있었던 건 군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  한일의정서(1904) 중 제4조에 해당하는 부분.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외교부 홈페이지 게재

  

지난 11일 오후 한 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난 정 위원장은 작금의 안보환경을 거론하면서 한일군사협력을 정당화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되겠어요? 자유주의 연대와 힘을 합쳐서 막아서야 될 것 아니겠어요?"라고 한 뒤 "우리가 중국하고 연합훈련을 합니까? 러시아랑 연합훈련을 합니까? 미국 아니면 일본하고 해야 될 거 아니겠어요?"라고 말했다.

 

제3세력의 위협에 대비한 한일군사협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1904년에도 있었다. 을사늑약 1년 전인 이해부터 그런 논리가 심화됐다. 

 

일본은 러시아의 위협을 명분으로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했다. 의정서 제4조는 일본군의 한국 진출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졌다.

 

제4조 : 제3국의 침해 혹은 내란으로 인해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 대일본제국 정부는 속히 임기응변의 필요한 조치를 행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가 행동하기에 용이하도록 충분히 편의를 제공할 것. 대일본제국 정부는 전항(前項)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필요할 때마다 수용할 수 있을 것.

 

러일전쟁은 일본이 도발한 것이었다. 일본이 운운했던 러시아 위협론은 상당부분은 일본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런 위협론을 부풀린 뒤 한일군사협력의 명분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같은 해 8월 22일, 일본은 제1차 한일협약(외국인 용빙협정)을 추가로 강요했다. 이 협약에 근거해 재정고문·외교고문뿐 아니라 일본인 군사고문까지 한국 내정에 간여하게 됐다. 1875년의 군사 도발과 1882년·1894년의 출병에 이어 1904년에 강요된 두 건의 조약은 일본의 군사적 지배를 가능케 만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이듬해 11월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이 강제됐다.

 

이 같은 구한말 역사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한민족의 운명을 얼마나 위태롭게 했는지를 알게 한다. 정 위원장의 역사인식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도 파악된다.

 

정진석이 빠트린 또다른 것

 

12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서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2022.10.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대화하는 여야 대표 12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서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2022.10.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대한제국의 멸망은 일본의 군사적 위협이 전제된 상태에서 외교적 방식에 의해 관철됐다.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정진석 위원장의 글에선 군사적 위협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또 다른 중요한 것도 빠져 있다.

 

군사적 침공이 아닌 군사적 위협를 받은 대한제국이 외교적 방식에 의해 멸망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집단이 있다. 일본의 위협에 맞서 군사적 대응을 하기보다는 일본과 친선하는 쪽으로 대한제국을 유도한 집단이다. 이민족이 침략하면 관군은 물론이고 민간까지 나서서 대항해온 한민족이 전쟁도 못 해보고 나라를 빼앗긴 데는 이 집단의 역할이 컸다. 을사오적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대한제국의 요직을 차지한 이들은 일본에 맞서 군사대응을 하기보다는 일본과 연대하는 쪽으로 국론을 몰아갔다. 일본이 군사적 방식이 아닌 외교적 방식으로 대한제국을 강점한 데엔 이들의 역할이 컸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일군사협력은 위험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일본이 군사적 위협을 구사했다는 점과 친일파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은 드러내지 않았다. 구한말과 대한제국 망국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맥락들을 결여하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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