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v.daum.net/v/20221104193134030


이태원서 CPR도운 고등학생 "아직 트라우마 시달려…꿈 바뀌었다"

원동민 기자, 정세진 기자 입력 2022. 11. 4. 19:31수정 2022. 11. 4. 19:42


이태원역 추모 공간을 가득 메운 추모 쪽지와 흰 국화들. /사진=원동민 기자

이태원역 추모 공간을 가득 메운 추모 쪽지와 흰 국화들. /사진=원동민 기자


이태원 참사 7일째인 4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1시간 남짓한 사이 100여명의 시민들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모여들었다.


지난 며칠 사이 온도가 서서히 낮아졌다. 이날은 올 가을 들어 가장 쌀쌀한 날씨였지만 목도리와 코트를 입고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도 추모공간 앞에선 잠시 멈췄다. 손을 모으고 희생자들의 영정을 바라보거나 포스트잇에 글을 남기기도 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온 김진욱군(18)은 참사가 발생한 후 매일 이곳을 찾는다. 그는 참사 당일 코스프레로 경찰특공대 복장을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에 놀러 왔다. 해밀톤호텔 골목 근처에 있던 김군은 참사가 발생한 직후 도움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외침을 듣고 달려갔다. 다친 시민들을 옮기고 심폐소생술(CPR)을 도왔다. 밤을 꼬박 새운 김군은 다음날 오후 2시가 돼서야 경기도 양평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추모 쪽지. /사진=원동민 기자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추모 쪽지. /사진=원동민 기자


김군의 앳된 얼굴은 추모공간 앞에 서면 착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김군은 "환청도 들리고 환영도 보이고 과호흡도 오고 손발도 떨린다"며 "평생 기억할 것"이라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본래 김군은 기계공학과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그 시간, 그 현장을 경험한 뒤로 구급대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참사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구급대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두렵고 후회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추모객들은 제각기 이태원과 얽힌 사연이 있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서 온 회사원 김건호씨(29)는 국화를 사 들고 왔다. 김씨는 "참사가 난 당일 (오후) 10시에 퇴근했는데 다음날 친구들이랑 이태원에 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희생됐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사고였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남자친구와 한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서 왔다는 박소현양(15)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양은 "처음에는 가벼운 사고인 줄 알았다"며 "그런데 SNS를 통해 보니까 너무 무서운 사고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로 23살, 26살 언니가 있다"며 "이번 참사 희생자들이 언니 또래 20대, 30대들이라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를 하러 왔다"고 했다.


시민들은 떨어진 쪽지를 주워 다시 붙이기도 하며 애도에 동참했다.


그 옆에선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스님 3명은 추모소 옆에서 향을 피워 놓고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웠다. 희생자 명복을 빌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와서 알게 된 사이라고 했다.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는 국가 애도기간이 끝나는 오는 5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4일 오후 서울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 바닥에 붙어 있는 추모 쪽지. /사진=원동민 기자

4일 오후 서울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 바닥에 붙어 있는 추모 쪽지. /사진=원동민 기자


원동민 기자 minimini@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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