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1051322001


추궁 말고 추모만?···역풍 맞은 ‘관제 애도’

입력 : 2022.11.05 13:22


정부, 참사 책임론 통제하며 ‘애도의 탈정치화’ 시도

112 신고 녹취록 공개, 시민들 분노·질문 ‘분수령’ 돼


[주간경향] “지금은 추궁의 시간이 아닌 추모의 시간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전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한 뒤 비판 여론이 커지자 대응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 발언이 이후에도 계속 회자한 건 윤석열 정부의 속내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에 참사 책임이 있는지 따져서 밝히겠다는 식의 애도는 ‘정치적 의도’가 있어 불순하다는 프레임을 만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 프레임이 잘 작동하면 참사 원인·책임에 대한 질문을 하려는 이들이 자기검열을 하게 되므로 국가가 일정 기간 공론장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애도의 탈정치화 시도는 ‘관제 애도’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애도는 ‘왜 참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진공 상태의 ‘순수한 애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프레임은 지난 11월 1일 이태원 참사 전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에 국가가 응답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라는 점이 뚜렷해졌다. 시민들은 자기검열 없이 분노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순수한 애도’와 ‘정치적 애도’를 갈라치기하려는 시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다. 정당한 정치적 애도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면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거대한 역풍에 직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관제 애도’의 그림자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 하루 뒤인 지난 10월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이날부터 11월 5일 자정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국가애도기간 지정은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두 번째다. 2014년 세월호 때와 달리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가급적 행사와 축제를 자제해달라는 지침에 따라 각종 민관 행사가 줄줄이 취소 혹은 연기됐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반영한 ‘이름짓기’도 진행됐다. 행정안전부는 사고 명칭을 ‘참사’가 아닌 ‘사고’로 통일하고, ‘피해자’ 대신 ‘사망자’ 혹은 ‘사상자’로 쓰라는 지침을 전국 지자체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합동분향소 명칭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로 정해졌다. 이례적으로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라는 지침도 나왔다.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지난 11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브리핑에서 “가해자나 책임 부분이 분명한 경우에는 희생자,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번 사고는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중립적인 용어로서 사망자, 부상자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행안부의 ‘언어규율’이 정부 책임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국가가 내린 지침서를 보면, 이태원 ‘참사’를 ‘사고’라고 부르라고 한다. 왜 그러한 언어 규제를 하는 것인가. 이 두 개념에 근원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참사(disaster)’는 자연재해가 아니라면, 인재를 의미한다. 즉 그 인재를 야기한 책임의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고(accident)’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우연히 또는 실수해 사고를 겪게 된 것이기에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적이고 사적이다. 이태원 ‘참사’라고 할 경우, 그 참사가 야기된 책임 소재를 규명해야 한다. 참사를 ‘사고’라고 하고, 참사의 희생자를 사고에 의한 ‘사망자’라고 하는 것은 은밀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그 어떤 책임소재나 원인 규명에 대한 문제 제기와 질문을 봉쇄하겠다는 분명한 정치적 왜곡이다.”


지난 11월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실물센터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11월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실물센터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권도현 기자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도 지난 11월 1일 페이스북을 통해 관제 애도를 비판했다. “슬픔과 분노의 방향을 정하고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만드는 건 이 시간을 지나는 모두의 몫이다. 그 몫을 모아내 공동체의 의지로 다듬는 것이 민주국가에서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애도할 기간도, 장소도, 방식도, 사건의 명칭도, 성격도 정부가 정하고 그걸 따르라고 한다. 참사로부터 이틀의 시간 동안 정부가 한 사고 수습은 대부분 이런 걸 정하고 발표한 일이다.”


문화예술계에선 ‘애도 계엄령’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퀴어 아티스트 ‘히지 양’은 지난 11월 2일 트위터에 “공연 하나는 자진해 취소했고, 다른 하나는 서울시의 권고 하에 취소돼 이번 달 수입의 70%가 사라졌다. 예술가와 공연인의 활동은 ‘노는 것’이나 ‘애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고 생계수단”이라고 적었다. 이어 “창작은 예술가에게 추도의 방식이기도 하다. 국가는 강요된 애도기간으로 예술가를 목 조르는 기만을 중단하라”고 했다.


고려대 학생 임현창씨(23)는 지난 11월 2일 학내에 ‘강요된 침묵으로 애도할 수는 없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그는 대자보에서 “애도는 내가 아끼던 무언가의 상실이라는 상황을 마주할 때 이를 내 마음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다. 그 전제로서 내가 맞닥뜨린 상실에 대한 이해와 납득이 수반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며 “그렇기에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진심으로 애도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합당한 답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일 국회 행안위 이태원 참사 관련 긴급 현안보고가 여야 간사 합의로 현안 질의 없이 진행된 것도 논란이 됐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현안 질의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항의하면서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용 의원은 “이곳에 정쟁하러온 국회의원들 아무도 안 계실 거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참사를 대하는 태도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저 추모만 하라고 이야기하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 대체 왜 행안위가 들러리를 서야 하나”라고 따져물었다.


지난 10월 30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 인근 상점에 희생자를 애도하며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10월 30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 인근 상점에 희생자를 애도하며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면피성 발언 되풀이, 왜?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 책임론 확산 차단을 위해 면피성 발언을 되풀이했다.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싹튼다면 참사 원인을 따지는 질문에 “정치적 선동”이라며 딱지 붙이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애도’와 ‘정치적 애도’를 갈라치기하는 것과 정부의 책임 부인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뒤 위기에 몰렸던 상황을 이번에 또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도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 직후엔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상황이 ‘관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지난 10월 30일 페이스북에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는 글을 올렸다. 진영론에 입각한, 정파적이고 섣부른 주장이라는 반론이 커지자 남 부원장은 해당 글을 게시한 지 약 30분 만에 삭제했다. 이에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아무리 정치병자들이라도 사람 도리는 버리지 맙시다”라며 비난했다.


경찰도 시민사회에 자기검열 분위기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경찰청이 지난 10월 31일 작성한 대외비 문건 ‘정책 참고자료’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부 진보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로서 정부 책임론이 확대될 경우 정권 퇴진운동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 만한 대형 이슈라며, 내부적으로 긴급회의 개최 등 대응 계획을 논의 중. 다만 아직 국민 여론의 향방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고, 사고 수습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정권 책임을 내세웠다가 역풍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당분간 상황을 주시하며 신중 검토 방침.”


정부의 빗장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을 시작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이태원 참사 하루 뒤인 10월 30일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방어적 태도를 취하다 보니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장관은 하루 뒤인 10월 31일 전날 발언이 논란이 되자 “정확한 사고 원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섣부른 예측이나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 해명을 통해서도 윤석열 정부가 ‘애도의 탈정치화’ 프레임을 짜려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실은 “이 장관의 발언은 현재 경찰에 부여된 권한이나 제도로는 이태원 사고와 같은 것을 예방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엄호에 나섰다.


기존 프레임에 균열이 일어나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유사한 내용의 해명은 계속됐다.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은 지난 10월 31일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MBC에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이건 축제가 아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1월 1일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책임을 묻는 질문에 농담식으로 답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총리는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동시통역 기기 음성 전송에 문제가 생기자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라며 웃었다.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11월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 시민사회 여론동향 문건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11월 3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태원 참사 시민사회 여론동향 문건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불순’했던 건 되레 윤석열 정부


지난 11월 1일 오후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정부의 빗장이 해체되고 애도의 탈정치화 프레임이 무력화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4시간가량 전부터 압사 위험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신고전화가 잇따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녹취록을 보면 참사 당일 오후 6시 34분 첫 신고자는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 (경찰이) 통제를 좀 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요청했다. 이후에도 오후 10시 15분 참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난리가 나서 막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8시 9분) “사람들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사고 날 것 같다”(8시 33분) “사람들이 거의 압사당하고 있다. 아수라장이다”(8시 53분) 등의 신고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위험을 사전에 정확히 알아차린 반면, 경찰은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또 “국가가 없었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녹취록 공개 시점 전후로 여권 인사들의 사과가 이어졌지만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애초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애도를 불순한 의도가 있는 정파적 주장 혹은 선동으로 몰아간 결과 윤석열 정부가 오히려 사태를 키운 형국이다. 다양한 애도의 방식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려고 한 게 근원적 패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 같은 군중 압착(crowd crush)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군중이 좁은 공간에 밀집하는 상황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이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제한된 경찰력, 공공자원을 어떻게 배치할지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경찰은 처음에 주최자가 없는 다중 운집은 대비 매뉴얼이 없다고 설명했다. 당장 주최자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위험 관리를 했어야 한다는 반론에 직면했다. 또 경찰이 지난 11월 1일 이태원 참사 당시 군중을 고의로 밀었다는 의혹을 받는 ‘토끼 머리띠’ 남성을 조사한 것도 “희생양 찾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낳았다.


결국 가장 ‘불순’한 것은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묻는 정치적 질문이 아니라 이 질문에 ‘불순한 선동’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한 윤석열 정부였지 않을까. 다시 강남순 교수의 말이다.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지금은 오로지 ‘애도만 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애도의 방식을 규정하는 이 ‘국가애도기간 설정’이야말로 지극히 노골적인 ‘애도의 정치화’의 전형이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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