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8683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왜 모이지 않는지 아시나요?
[주장] 세월호 유가족이 정부와 언론, 시민들께 드리고 싶은 당부 세 가지
22.11.07 13:26 l 최종 업데이트 22.11.07 13:26 l 유경근
이 글은 유경근 전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으로, 유 전 위원장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말]
▲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내외국인들이 직접 작성한 추모글과 그림이 붙어 있다. ⓒ 권우성
"혹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소식 좀 아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언제쯤 나올까?"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다. 당연히 나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경험에 비추어 얘기할 것들은 있다. 유가족들을 향한 게 아니라 정부, 언론과 시민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다.
2014년 5월,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수습 중이던 때, 먼저 돌아온 아이들의 부모들이 장례와 삼우제를 마치고 하나둘씩 안산 와스타디움에 모이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모인 부모들은 서로 몇 반 누구 엄마·아빠인지 통성명하면서 서로가 알고 있던 아이들 얘기도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럽게 생각을 꺼내기 시작했다.
결론은, 적어도 단원고 유가족들이라도 모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족 현황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기관들 모두 개인정보라 주기 어렵다고 발뺌했다. 어찌어찌 반강제로 받아냈고 일일이 확인을 했다. 가장 먼저 유가족 신분증부터 만들었다. 경찰(혹은 국정원과 기무사)은 물론 기자들도 가족을 사칭해 접근하는 경우가 진도에서부터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도 팽목항과 체육관에서 반 대표 등으로 뽑혔던 부모들이 임시로 임원역할을 맡아 가족회의를 거듭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 토론하고 또 토론했다.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하지만 쉼 없이 뻘짓을 하는 정부덕에, 진도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 생각에, 특히 함께 모여 엄마·아빠들을 내려다 보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차츰차츰 냉철하게 의견을 모을 수 있었고 나서야 할 때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한변협과 민변의 변호사들, 여러 시민단체와 엄마·아빠의 마음으로 뛰쳐나온 수많은 시민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 후에야 '가족협의회'의 초기 모습인 가족대책위가 만들어졌다. 그 후에도 여러 사건과 과정,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8년 7개월을 때론 싸우고 때론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
유가족은 자격이 아니라 신분이다
▲ 3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국가는 국민을 지키지 않았다'는 문구가 적힌 리본이 놓여 있다. ⓒ 권우성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9일째(6일 기준)이다. 어제 기사를 보니 대다수 희생자들의 발인을 마쳤다고 한다. 삼우제까지 마치려면 발인으로부터 이틀은 더 있어야 한다. 그러고도 적어도 며칠은 먼저 간 아이, 가족과 조용히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엄마아빠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안산으로 돌아온 뒤 장례와 삼우제를 마치고 적어도 하루이틀 이상 홀로 깊은 생각을 하다가 모이기 시작했다. "장례 다 마쳤으니 빨리 나가서 싸우자"하는 부모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단원고 학부모'라는 공통점, 즉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수 년 이상, 길면 유치원 때부터 10년 친구였기 때문에 한 달여 만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우리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주 중, 삼우제를 마치면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좀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목소리들이 하나로 모이는 데까지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정보가 없으니 유가족 간 연락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참사 후 워낙 많은 주장과 행동들이 있었으니 소외감과 당혹감도 클 것이다.
어찌됐든 분명히 유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할 것이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유가족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든 충분히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끝까지 다 들어야 하고 더 얘기할 때까지, 다 얘기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유가족의 판단기준은 오직 하나, 내 아이·내 가족의 희생이 헛된 희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판단기준은 하나여도 결론은 다를 수 있다. 이것도 우리는 인정하고 들어야 한다. 나만큼 내 아이·내 가족을 사랑하고, 나만큼 내 아이·내 가족 희생에 고통스러운 사람은 없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유가족답네, 아니네 할 분들은 없을 줄로 안다. 유가족은 자격이 아니라 신분이다. 망할 놈의 신분.
둘째, 거듭 얘기하지만 정부는 유가족·피해자 개별접촉을 중단하고 유가족·피해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모일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과 필요한 지원을 최대한 해야 한다. 언론은 이를 분명히 지적하고 실행되도록 취재, 보도해야 하며 특히 유가족·피해자를 서로 갈라치기 하려는 시도나 유가족·피해자는 물론 희생자들을 모욕하려는 시도가 있는지 세밀히 감시해야 한다.
셋째, 만일 정부가 안 하면 시민들이 도와야 한다. 모일 공간은 물론 필요한 지원까지. 단, 유가족·피해자들에게 어느 방향으로든 유도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요청이 있을 경우 매우 조심스럽게, 합리적으로 견해를 전하는 것은 유가족·피해자들이 더 깊은 고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수많은 시민들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에 참석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일단 여기까지만 말씀드려야겠다. 이후 이야기는 너무 앞서가는 것이므로... 오늘도 잠 못 자고 허망하게 떠나보낸 아이와 가족들 생각에 고통스러울 유가족과 눈만 감으면 더 생생해지는 참사현장의 아비규환 때문에 고통스러울 피해자들 생각에 답답하고 화가 난다.
"재미있게 놀고 와~" 인사했던, 용돈까지 쥐어주었던 내가 아이를, 가족을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가슴을 쥐어 뜯으며 자책할 엄마아빠들... 여전히 같은 자책을 하는 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유가족은 불쌍하다.
* '1029 참사'가 아니라 '이태원 참사'라 하는 이유는, 비록 '1029 참사'가 많은 고민 끝에 나온 이름인 것은 알지만 유가족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명칭에 대한 내 견해는 따로 올리겠으나, 내 견해와 다르다 하더라도 유가족·피해자들이 정하는 명칭을 따라 쓸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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